▲큰스님들이 남긴 삶의 화두노마드북스
J형. 오랜만에 편지를 적습니다. 메일이 보편화되어 손쉬운 만큼 마음도 더 많이 전하자 싶었는데 마음뿐, 연하장 띄우고 이렇게 다시 가을입니다. 늘 바쁘고 정신없으면서도 한번씩 그리운 것은 오롯이 마음을 적어 보던 편지입니다. 편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 가을입니다.
'무얼 하며 살아가나?' 요즘, 그간 다소 어수선했던 마음을 돌아 볼 서간집 한 권을 읽었습니다. 인터넷에 입맛들인 후 늦은 밤에도 쉽게 물러나지 못하던 습관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마음 뚝 떼어 물러나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큰스님들이 남긴 주옥같은 삶의 화두들
서간집 <산사에서 부친 편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큰스님들이 수행 중에 틈틈이 주고 받았던 편지글 130여 편을 모은 것입니다. 큰스님들이 남긴 주옥같은 삶의 화두들을 통하여 돌아 볼 틈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만 온 그간을 돌아보았습니다.
사람이든 일이든 제게 머물러 있는 인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선뜻 줄 수 있으며 얼마만큼 배려하며 바라보아 줄 수 있는가?' 오랜만에 많은 생각도 해보았던 계기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머리글에 "색이 바래고 때론 쥐똥이 묻은 편지, 찢은 도포자락이나 죽순 잎, 그리고 나무껍질 등에 씌어진 글…"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승과 제자, 구도의 길을 함께 가는 도반(같이 공부하는 벗)으로서 인연이 얼마나 소중했으면 입고 있던 도포자락을 찢어 마음을 적어 전해야만 했을까? 죽순 잎에, 혹은 나무껍질에라도 담아 전하고자 했던 순간순간의 작은 깨달음들, 서로를 바라보아주고 이끌어 줌. 그 깊이는 어느 만큼일까?
J형. 비록 속세의 잡다한 욕망에 등을 돌리고 참선과 고행을 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그들이지만 한편으론 끊임없는 세속적인 번뇌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부단히 일었다가 스러지는 정한이야 사람이니 어찌 할 수 없는 것임에야. 그럼에도 부처의 가르침에 부단히 다가가려는 그들의 고행과 깨달음을 향한 푸른 발원을 보았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사람의 본성으로 잠시나마 흔들렸다가 되돌아오기를 되풀이하는 그들의 살가운 속내였습니다.
그러나 샛별처럼 반짝이는 구도의 발원은 동시에 속가의 어머니에겐 불효였습니다. 속가의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간병을 위해 산을 내려가는 벽안스님의 편지에는 출가수행자이기 전에 늙은 어머니의 자식으로서 절절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지금 비록 깨달음에서 멀어질지라도 어머니에 대한 도리를 그나마 다하려는 그 마음이 제 마음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이렇다한 그 무엇 하나 못하고 마음 속에서 늘 아린 친정어머니가 몹시 그립기도 하였습니다.
"원래 중놈은 그리움이란 헛된 망상을 버려야만 함에도 시름시름 앓는 어머님을 두고서 밤마다 이렇듯 가슴이 미어져오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나 봅니다. 그렇다고 피안(彼岸)행 열차를 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 남은 어머니에 대한 죄를 사하는 길이니 부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속세의 인연'-벽안스님이 경봉스님에게)
그렇습니다. 눈 푸른 납자(중)가 되어 구도의 길을 가지만 속가의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데 어찌 무심할 것이며, 나 몰라라 참선에만 들 수 있을는지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한 채 얻은 깨달음을 어찌 제대로 된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얻어진 깨달음으로 극락에 간들 그것이 무엇일 수 있으랴. 무릇 종교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지 종교를 위한 종교가 아님을, 종교인으로서 참된 자세를 보았습니다. '나에게 종교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