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도두리에 솔부엉이 사진관 열렸네

400일 넘게 미군기지 반대 투쟁중인 마을에 웃음꽃 핀 까닭

등록 2005.10.17 16:25수정 2005.10.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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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촛불행사장 안에 세워둔 액자들. 대부분이 영정 사진으로 사용할 거지만 여느 영정 사진처럼 근엄한 모습이 아닌 다들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다.

촛불행사장 안에 세워둔 액자들. 대부분이 영정 사진으로 사용할 거지만 여느 영정 사진처럼 근엄한 모습이 아닌 다들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다. ⓒ 평화바람

a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신다.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신다. ⓒ 평화바람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며 힘든 싸움을 하고있는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도두리. 지난 15일 저녁 410일째인 촛불 행사장 안에는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주한미군기지 문제를 주로 다뤄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노순택씨와 유랑단 평화바람은 지난 5일 대추분교에서 미군기지확장에 반대하는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솔부엉이 일일 사진관' 문을 열었다. 그날 찍었던 사진을 지난 15일 주민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대추리와 도두리는 미군기지확장 재배치 문제로 3년이 넘는 긴 싸움을 하고 있다. 주민분들은 400일이 넘도록 매일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평생을 살아온 땅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형편이라 얼굴에 새겨진 주름만큼 가슴에도 걱정이 배어 있다.

a 민병대 할아버지와 오정환 할머니.

민병대 할아버지와 오정환 할머니. ⓒ 평화바람

a 송재국 아저씨와 강연석 아주머니.

송재국 아저씨와 강연석 아주머니. ⓒ 평화바람

이날 사회를 맡은 대추리4반 김택균씨는 "사진을 받으시려면 앞에 나와서 말 한 마디씩은 하셔야 합니다, 여기 사진 중에 새신랑 새신부가 있어요, 오늘은 그 분부터 불러봅시다"라며 제일 먼저 대추리1반 민병대 할아버지와 오정환 할머니를 불러냈다. 두 분은 부끄러운지 계속 웃기만 하시다가 짧게 "투쟁!"이라고 외치며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강연석 아주머니와 송재국 아저씨가 앞으로 나오셨다. 사진을 나눠드리기 전 솔부엉이 도서관 입구에서 먼저 전시를 했는데, 두 분의 사진은 유독 다정한 모습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사진을 받아든 송재국씨는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싸움에서) 우리가 꼭 이겨야 하겠지만, 져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하는 사람이나 지금 정부나 그런 빌어먹을 놈들에게 '정말 앞으로는 촌민이라고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겠다, 정말 정치 잘해야겠다'는 그런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싸우겠습니다"라며 강하게 말했다.


이어서 사회자는 사진의 주인공들을 하나씩 불러냈다. 다들 쑥스러워하면서도 한 마디씩 하고는 사진을 찾아갔다. 할 말이 뭐 있냐며 손사래치는 할머니께는 사회자가 직접 다가가서 마이크를 건네고, 사정이 있어 촛불 행사에 나오지 못한 분들은 친척이나 옆집 사는 분들께 사진을 건네고 말을 시켰다.

도두리에 사시는 한 아저씨가 사정이 있어서 계시지 않자, 같은 동네사는 여동생 분을 대신 불러냈다. 동생 분은 "오빠는 왜 안 와가지고… 내가 고생하네요"라며 이야기 대신 노래를 부르고 들어가셨다.


a 사진 주인공이 안 오셔서 같은 동네 사는 친동생이 대신 나와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찾아간다.

사진 주인공이 안 오셔서 같은 동네 사는 친동생이 대신 나와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찾아간다. ⓒ 평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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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바람

할머니들은 자신의 사진을 받아들고는 "아이고 이 주름 좀 봐, 못 생겼네"하시다가도 옆에 앉은 할머니가 "이게 본래 생긴 건데 뭐, 이쁘구만"이라고 한 마디 해주자 사진을 다시 쳐다보며 벙글거리신다.

주민들은 사진을 보며 즐겁게 웃고는 있지만 미군기지확장 반대싸움으로 많이 지친 상태다. 평생을 일궈온 농토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밤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땅을 지키는 소중한 얼굴을 담는 솔부엉이 일일 사진관은 오는 23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대추초등학교에서 한 번 더 열린다. 이날은 대추리·도두리 주민분들이 모두 모여 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을 함께 찍을 예정이다.

a 410일째 촛불행사.

410일째 촛불행사. ⓒ 평화바람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단원으로 올 2월부터 팽성읍 대추리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단원으로 올 2월부터 팽성읍 대추리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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