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민족혼', 공자인가 루쉰인가

[데일리차이나] 루쉰 사망 69주년에 즈음하여

등록 2005.10.20 17:17수정 2005.10.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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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루쉰공원(홍커우공원)에 있는 루쉰상
상하이 루쉰공원(홍커우공원)에 있는 루쉰상김대오
"말 없이 누워 때때로 찾아오는 고통스런 생각과 마주한다. 이런 것이 죽음이라면 죽음은 꼭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최후의 진통이 평온한 것이 아니라 해도 내 일생에 한번 일어나고야 말 일이라면 나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1936년 10월 19일 새벽 5시 25분,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주자인 루쉰이 상하이에서 병사했다. 루쉰은 유언에서 빨리 자신을 묻고 잊어버리고 그 어떤 추모사업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비판 세력들을 향해 '그대로 나를 미워하라. 나도 단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라며 죽는 순간까지 굽힘 없는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었다.

루쉰의 유언과는 반대로 루쉰의 장례식에는 8천 명의 자발적 추모객이 운집했으며 중국인의 봉건 중화사상을 깨우친 루쉰을 '민족혼'으로 추앙했다.

그리고 마오쩌둥이 루쉰을 반봉건, 반식민지 상태 중국의 문화혁명을 이끈 위대한 문학가요, 사상가요, 혁명가라고 평가하면서 루쉰은 지금까지 중국정부차원의 숭배와 추앙을 받아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루쉰이 죽자 민족시인 이육사가 조선일보에 <루쉰 추도문>(1936.10.23-10.27)을 발표하며 루쉰을 민족계몽과 항일투쟁을 위한 지식인의 전범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런데 최근 중국정부가 공자의 사상을 중국사회주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거론하면서 '중국의 민족혼이 누구냐' 하는 문제가 루쉰과 공자를 둘러싸고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중국의 포탈사이트 'Baidu'에는 '루쉰의 타도 얼마나 쉽고 빠른가—공자가 민족혼이다!(打倒魯何其快哉—孔子才是民族魂!)'라는 글이 실렸는데 여기에 대한 댓글이 488개나 붙어 있다.


산동성 취푸(曲埠)에 있는 공자의 묘.
산동성 취푸(曲埠)에 있는 공자의 묘.김대오
ID가 '천천(辰晨)'인 네티즌은 '루쉰과 공자, 누가 민족혼인가?(魯迅和孔子,誰是民族魂?)'라는 글에서 공자는 '충'과 '효' 등 인간의 도리와 국가의 기본 질서 등을 확립한 진정한 중화민족문화의 창시자라고 말하며, 만약에 루쉰이 '민족혼'이라면 공자는 '하나님'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루쉰의 거칠고 저급한 언어와 문장을 논하지 않더라도 루쉰은 홍위병의 우두머리일 뿐이며 문학을 정치에 복무하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였다.

반면 ID가 '왕위엔화(王元化)'인 네티즌은 루쉰이 <광인일기> 등에서 공자의 유교로 대표되는 봉건 예교가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食人)'문화라고 비판하며 철저하게 반(反)봉건을 외쳤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정신승리법에 도취하여 스스로의 병폐를 깨닫지 못하는 중국인을 각성시키기 위함이었지 결코 중화민족정신을 훼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한편 ID가 '궈팅(郭挺)'인 네티즌은 공자는 춘추전국시대, 루쉰은 5.4운동 전야의 격동기라는 각기 다른 시대적 상황에서 중화민족의 혼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한 영웅이라며 루쉰과 공자 모두가 민족혼이라고 양시론적 입장을 폈다. 공자가 없었다면 루쉰의 비판정신도 없었을 것이며 루쉰이 없었다면 공자도 지금처럼 재조명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공자와 루쉰은 '스뿌리앙리(勢不兩立, 쌍방의 원한이 깊어 양립할 수 없다)'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관계이고 둘 다 모두 위대한 중화정신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이번 민족혼논쟁을 지켜보면 과거에 비해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아주 커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공자의 동상 앞에서 베이징의 젊은 부부들이 이혼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처럼 중국은 지금 급격한 자본주의 상업문화의 도입으로 인한 부작용을 공자의 전통사상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루쉰도 비판적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근현대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국정넷포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근현대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국정넷포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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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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