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입에 들어간 납 김치, 표백 쌀...

[릴레이기고 ③] 허선주 한국생협연합회 편집위원장

등록 2005.10.25 18:07수정 2005.10.2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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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산물을 살리기 위해 제주부터 서울까지 걸어올라오는 '소달구지 대장정'이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된 '쌀협상 비준동의안'은 농민의 한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이 글은 릴레이기고 세번째로 허선주 한국생협연합회 편집위원장이 보내왔다. <편집자주>
남편이 지방근무를 가게 되자 아들 녀석과 저, 단 둘뿐인 저희 가족의 살림살이는 너무도 간편해졌습니다. 빨래, 집안청소, 밥상 차림까지 일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지요.

주말가족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아들 녀석이 제게 묻더군요.

"엄마, 요즘 밥상이 왜 이래? 왜 맨날 반찬이 두 개뿐이야?"
"뭐? 왜 반찬이 두 개야? 여기 김치도 있고, 김도 있고, 생선도 있잖아. 국도 있구만."
"이런 거 말고. 왜 아빠만 오면 맛있는 거 해주고 나한텐 안 해주는 거야?"
"그대신 밥이 맛있잖아. 따끈하고 고슬고슬하니."
"치~이, 그런 거 말고. 아빠만 챙기지 말고 나한테도 신경 좀 써줘~."


남편과 함께하는 밥상과 단 둘만의 밥상이 조금 차이난다는 것을 눈치챘나 봅니다. 자기 밥상에도 신경 좀 써달라는 아들 녀석의 항변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어디 그게 단지 반찬의 가지 수 때문이었을까요? 남편이 오는 날이면 식탁에 앉아 한 주 동안 일상의 자잘함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면서 먹지만, 아들 녀석과 단둘이 앉는 밥상에서야 단촐하단 이유로 어떻게 하면 간편하고 간단하게 한 끼 밥상을 때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외식이 잦아진 것도 이런 속마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내 속내를 아들한테 들킨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납 김치·표백제 쌀·기생충알까지... 우리 농산물이 역시 안전


더군다나 우리가 즐겨 사먹는 김밥 중에는 중국에서 수입한 찐살을 햅쌀처럼 보이기 위해 표백제까지 사용해 유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사먹은 김밥을 다 게워내고 싶어집니다.

그뿐인가요? 중국산 김치에서 납이 검출되고 최근에는 기생충알이 검출됐다는 소식까지 들려옵니다. 이 김치가 백화점·할인매장·식당으로 유통돼 우리 식탁으로 올라오고, 외식하러 간 식당에서 우리 입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24일 충남 홍성에서 예산까지 가는 소달구지 순례단에 참여해 아들 녀석과 함께 걸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어 보이던 그 길에서 아들 녀석은 마침내 제 허리를 감싸 안고 울었습니다.

눈물을 보인 것도 속상한데 '힘들면 뒤따라오는 차를 타고와라'는 말까지 친구들 앞에서 듣자 11살짜리 아들 녀석의 자존심이 무너졌나 봅니다. 땟물이 흐르는 손으로 눈물까지 훔쳐내며 "그래도 끝까지 걸어서 갈 거야, 차를 타고 싶지는 않아"라고 하더군요.

힘든 여정을 잘 마치고 집에 온 아들 녀석이 이것저것 묻던 끝에 "그럼 엄마, 아까 그 생산자 아저씨들 진짜로 땅끝에서부터 걸어온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당연하지"라는 제 대답에 아들 녀석은 "많이 아프겠다"고 하더군요. 시선을 떨어뜨리면서 툭 내뱉는 한마디가 제 귀엔 마치 생산자분들의 고단함까지도 다 이해한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건강한 '밥 한 끼'는 오뉴월의 뜨거운 태양과 대지를 적시는 비바람, 농촌을 지키며 힘들게 농사짓는 농부의 수고로움이 없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내일은 세상에서 가장 뜨스운 밥 한 끼를 해서 맛나게 먹어야겠습니다. 이 '밥 한 끼'가 이처럼 많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들 녀석과 이야기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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