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는 불가능한가

[릴레이 기고 ④] 안인숙 한국여성민우회 생협 조직팀장

등록 2005.10.28 17:44수정 2005.10.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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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언론에서 중국산 김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중국산 수입농산물이 언론을 타는 일도 잦아졌다. 그것도 대형 사고로 말이다.

포르말린에 절인 장어, 말라카이트 그린으로 키운 민물고기, 항생제로 칠갑한 돼지고기, 납으로 버무린 김치, 게다가 기생충알까지 나왔다니…. 화가 난 시민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도대체 한국에 살면서 이렇게 먹을 게 없다니, 이게 패닉 아냐!"

수입산, 특히 저가품을 의미하는 중국산 농산물은 이전에도 심심찮게 등장해서 시장을 뒤숭숭하게 만들곤 했다. 지역에서도 '어떤 학교에서 중국산 김치를 사용했다더라'는 식의 확인하기 어려운 말들이 유령처럼 흘러 다니기도 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 누구도 먹을거리의 안전성 측면에서 밥상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매체에서 기사가 사라지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우리나라 식품산업과 식품정책에 대해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총체적인 해결책 없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일시적으로만 대응하는 대책과 변명에 오히려 짜증만 늘 뿐이다.

이젠 김치마저... 믿고 먹을 음식이 없다

a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 미생물팀 연구원들이 21일 오후 식약청 실험실에서 중국산 김치의 기생충 검사를 하고 있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 미생물팀 연구원들이 21일 오후 식약청 실험실에서 중국산 김치의 기생충 검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20년 사이 서구적인 식생활이 뿌리를 내린 결과 아동에게서 아토피성 질병 등이 창궐(신생아 50%, 경희의료원 설문, 2005년 10월)하고, 성인들 역시 그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가운데서도 마늘과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김치는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며, 한국인의 건강을 지켜주는 발효식품이라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왔다. 그런데 바로 이 김치가 문제가 됐으니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외식이나 학교급식 확대로 가정 밖 식사가 증가했으며 시중 음식점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 김치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한낱 '반찬'에서 일어난 해프닝이 아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김치가 반찬에 불과할지 몰라도, 국가적 차원에서는 국민 건강을 지켜주는 감초같은 존재였다.


김치를 직접 담그겠다는 소비자들의 바쁜 발걸음 속에서 배추가격은 이미 3배 이상 급등했다. 올해 김장 비용은 작년보다 5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중국산 김치 먹느라 쓴 돈도 아까운데, 돈을 더 들여 김치를 먹어야 한다니.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는 '개인'이 '돈'으로 해결해야 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수입농산물 뿐 아니라 구제역, 광우병, 조류독감 등도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도 철새의 이동경로를 따라 발생위험지역이 예고되고 있으며, 그 지역도 확대될 것으로 연일 보도되고 있다. 동물에게서 발병하는 전염병이 인간에게도 옮겨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살기 힘든 상황으로 가축들을 내몰았기에, 바이러스가 돼지 안에, 소 안에 있지 못 하고 사람에게로 튀어나왔단 말인가' 하는 자탄의 한숨마저 나온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열에 약하므로 식용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문득 작년에 카메라 앞에서 '삼계탕'을 먹던 고위 공직자들의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은 몇몇 다국적 제약업체의 즐거운 비명 속에서 국내 축산생산기반은 흔들리고, 자영업자들은 실질적 실업을 견뎌나가는 대단한 공황상태가 아닐 수 없다.

소금은 산자부가, 축산물은 농림부가, 식수는 환경부가?

우리 땅에서 식품안전에 관한 논란은 기사거리를 찾는 대중매체에 화제거리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한 것인가? 관련 공무원들의 노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등 관련 보도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종합적인 식품안전대책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책임자와 정책결정자의 직무유기의 혐의가 있다. 식품안전사고를 양심없는 한탕주의에 빠진 보따리상인이나 상인들 탓으로 돌리기에는 이미 비슷한 사고가 너무 많이 반복돼 왔다. 정책적인 대안을 요구하는 시민의 의식 또한 높아져 있다.

따라서 해마다 늘어가는 수입농산물을 관능검사나 10% 미만의 샘플 검사로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안전 문제와 관련해 소금은 산업자원부에서, 축산물은 농림부에서, 식수는 환경부에서 책임지는 구조가 문제이다. 재배공장은 농림부가, 매장판매는 식약청이 관리하는 식으로는 식품관리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11개 부처가 30여개의 식품관련법령을 유기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다면, 이런 사건사고들이 비일비재하게 반복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후 약방문이 결코 좋을 것이 없지만,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다면 소를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a 지난 2003년 12월 조류독감이 발생한 한 양계장에서 방역요원들이 닭을 수거하는 사이 닭장을 탈출한 닭한마리가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지난 2003년 12월 조류독감이 발생한 한 양계장에서 방역요원들이 닭을 수거하는 사이 닭장을 탈출한 닭한마리가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 이화영

농장에서 식탁까지, 먹을거리는 안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table)' 포괄하는 먹을거리에 대한 안전개념을 담은 '식품안전기본법'을 하루 속히 마련하자. 기본법은 모든 식품관련법의 상위법으로서의 위상을 지닌다.

그와 함께 관련 하위법들을 정비해 나가자. 또한 현재 식품관련 각 부처의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각 기관을 총괄할 수 있는 행정기구의 법적 근거도 마련해 가자.

식품은 가계지출의 20%를 넘는 중요 지출항목의 하나인데도 제도와 법으로 막을 수 있는 식품사고를 되풀이 하는 것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이다. 국민의 건강을 둘러싼 '식품'에 대한 포괄적인 철학이 없는 미봉책 남발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무기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재 계류 중인 식품안전기본법이 활발한 논의를 거쳐 높은 수준의 법안으로 만들어질 것을 기대한다. 식품의 생산과 소비 전 과정을 포괄하면서,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동·식물의 건강과 복지 및 환경의 보호까지를 담아내는 근본법이 탄생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식품안전기본법에는 우리나라 농업을 유지하는 것이 식품안전의 출발이라는 이념이 반드시 담겨야 한다. 쌀을 비롯한 한국인의 기본 식품, 즉 식량의 국내자급기반 마련 방안까지 포괄하는 장기적인 안목이 담긴 법안을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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