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받는 쌀... 소비자는 반성해야 한다

[릴레이 기고 ⑤] 김영숙 부산푸른바다생협 이사장

등록 2005.10.28 15:18수정 2005.10.2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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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산물을 살리기 위해 제주부터 서울까지 걸어올라오는 '소달구지 대장정'이 지난 1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된 '쌀협상 비준동의안'은 농민의 한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이 글은 릴레이기고 다섯번째로 김영숙 부산프른바다생협 이사장이 보내왔다. <편집자주>
올해로 3년째 해마다 남녘땅 순천에서는 사라져가는 우리 밀을 살리기 위한 밀축제가 개최돼 왔다. 우리 땅에서 우리 밀을 찾는 것이 특별한 사람의 별난 소비가 돼버린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밀은 농민들마저 외면해버린 농작물이었지만, 소비자가 스스로 소비처가 되면서 밀농사는 다시 시작됐다. 이제 국내 밀 자급율을 1%정도로 올려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쌀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곳에서 우리쌀 지킴이로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란 말이다.

10월 30일 여의도에서 전국에 있는 소비자, 생산자, 시민들이 모여 스스로 우리쌀 지킴이가 되고자 '우리쌀지키기·우리밀살리기 소비자 일만인 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우리 농업문제가 농민만의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같이 고민하고 풀어 가야할 문제이기에 우리 소비자가 나서는 것이다.

a '우리쌀 지키기, 우리밀 살리기'를 위한 소달구지 대장정단이 경남 고령군 고령읍내로 향하는 모습.

'우리쌀 지키기, 우리밀 살리기'를 위한 소달구지 대장정단이 경남 고령군 고령읍내로 향하는 모습. ⓒ 추진본부 제공

농업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소비자가 반성해야

5천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쌀이 위기에 처했다. 농업의 희망이 사라지려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나는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다. 쌀이 나오기까지는 여든여덟번 손이 가야 한다는 것과, 여름 뙤약볕에서 얼굴 검게 그을려가며 수고한 사람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쌀과 농업이 천대받고 농민이 하찮게 여겨지는 풍조가 생겼다. 경악할 일이다. 우리 소비자는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농사꾼이었고 지금도 농사꾼으로 묵묵히 우리의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우리는 이분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지금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이제는 WTO협상안이라는 것이 순박한 시골농부들은 잘 알아듣기도 힘든 말과 논리로 우리농업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쌀 수입개방이 현실이 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 소비자의 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하루 먹는 농산물이 50~60여가지나 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수입농산물을 먹고 있고, 그것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대개의 경우 우리 농산물인지 확인하려 하지도 않고 길들여진 습관대로 수십 가지에 달하는 수입농산물을 먹고 있다. 이렇듯 자의든 타의든 소비자들은 우리 농산물을 이용하지 못하고 지켜내지 못한 책임이 있다.

우리 농업, 우리 쌀을 지키겠다는 의지들이 사회적으로 뭉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약속들을 만들어내고, 소비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먹거리를 국내산 농산물로 이용하며 적어도 쌀만큼은 우리 쌀을 이용하겠다는 구체적 실천을 할 때 우리 농업의 희망은 살아날 것이다.

어차피 먹을 밥, 기왕이면 우리 쌀로 밥 해먹고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미래를 물려주자.

a '소달구지 순례단'의 대전중간보고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 고사리 손들도 '우리 쌀 지키기'에 나섰다.

'소달구지 순례단'의 대전중간보고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 고사리 손들도 '우리 쌀 지키기'에 나섰다. ⓒ 심규상

날로 초췌해지는 순례단, 우리 농업같구나

얼마 전 땅끝에서 서울까지 걸어가는 순례단에 소비자조합원들과 아이들 등 17명이 합천에서 성주까지 합류하여 걸었다. 우리 일행에는 수술을 앞둔 정민이도 기꺼이 참여해 함께 걸었다.

대부분 6살에서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들을 이끌고 소달구지와 함께 걷는 길을 하루 동참한 이 때 참 느낀 점이 많다. 우리 농촌마을을 지날 때 이 풍요로운 들판을 언제까지나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농업이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받아야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외딴 논에도 벼는 누렇게 익어 추수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읍내를 지날 때 연로하신 어르신들의 환영의 박수를 받았는데, 젊은이가 없는 우리 농촌의 현실에 다시 한 번 가슴아파해야 했다.

순례단과 같이 걷는 모든 시민들이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서로 아끼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걸었음에도 여간 힘든 길이 아니었다. 순례단은 날이 갈수록 의복도 초라해지고 얼굴도 초췌해져갔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런 순례단의 모습이 마치 우리 농업의 현실인 것만 같았다.

우리 쌀을 살리려는 순례단의 길이 많은 소비자들의 의식을 일깨웠을 것이고, 나 또한 참으로 유익한 하루를 보내었고 각오를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 우리 소비자가 떨쳐 일어나야할 때로구나'하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정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소비자들이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우리 쌀의 미래가 보였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소비자 1만인 대회 성사뿐 아니라 우리 쌀도 지킬 수 있고, 우리 농지도 지킬 수 있고, 우리 농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강한 신념과 의지가 생긴다.

a '우리쌀 지키기 우리밀살리기 소비자 1만인대회 추진본부'가 지난 20일 대전에서 '소달구지 순례단 중간보고 대회'를 열고 있다.

'우리쌀 지키기 우리밀살리기 소비자 1만인대회 추진본부'가 지난 20일 대전에서 '소달구지 순례단 중간보고 대회'를 열고 있다. ⓒ 심규상

우리쌀 지키기, 정부는 못 해도 소비자는 할 수 있다

지난 22일 우리 동네에서 거리축제가 열렸다. 거기에 우리 쌀을 지키자고 시민들에게 서약을 받기 위해 나섰다. 유기농 쌀로 떡하고, 우리밀로 호떡 반죽하여 거리로 나갔다.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우리 쌀이 위기이고 우리 농업이 위기인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작은 실천과 노력이 농민들에게 큰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소비자 1만인대회'를 앞두고 우리 쌀과 우리 농업 지키기의 중요성을 알리고 희망을 키우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다. 소달구지 순례, 거리캠페인, 서약운동 등 집에서 내 식구의 안전과 건강만을 챙기던 소비자들이 거리로, 농촌으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소비자 1만인대회는 이러한 소비자, 시민들의 우리농업 지키기 운동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농업을 지키는 희망둥이가 되어 우리의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일에 끝까지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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