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가 부드러운 풀을 찾는다

[데일리차이나] 중국 유명 인사들의 나이를 초월한 사랑들

등록 2005.10.27 09:12수정 2005.10.27 16:53
0
원고료로 응원
1957년 35살의 젊은 나이로 ‘약한 상호작용에 의한 패리티(parity, 반전성) 비보존(非保存)의 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중국 출신 과학자(미국 국적) 양전닝(楊振寧)이 작년 11월 5일, 54살 연하의 대학원생인 웡판(翁帆)과 약혼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작년 12월 결혼할 당시 양전닝은 82세, 웡판은 28세였다. 양전닝은 웡판에 대해 “하늘이 나의 청춘과 영혼을 되돌려 주며 내린 마지막 선물”이라고 평하면서 청춘은 나이가 아닌 정신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82세의 양전닝이 28살 연하와 결혼한 것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 포털사이트 Sina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82세의 양전닝이 28살 연하와 결혼한 것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 포털사이트 SinaSina
칭화(淸華)대학에서 노벨상반 학생들을 지도하는 양전닝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포탈사이트 시나(Sina)의 게시판에서 한 네티즌은 사랑과 결혼도 ‘실사구시’정신에 입각하여 자기에게 필요한 조건을 선택하는 것이라며 양전닝은 ‘젊음’을, 웡판은 ‘명예와 부’를 선택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고 주장했다. 부녀관계처럼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감정이지 결코 나이가 아니라는 등 양전닝의 결혼을 지지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네티즌도 적지 않았다.

아이디가 kats인 네티즌은 ‘늙은 소가 부드러운 풀을 찾는다(老牛吃嫩草)’는 말로 양전닝을 비꼬면서 그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리정다오(李政道)는 미국의 만류와 최고 대우의 제안을 물리치고 중국으로 돌아와 조국을 위해 일생을 바쳤는데 양전닝은 늘그막에 돌아와 중국인들에게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양전닝의 결혼 이후 중국 대학생들이 ‘사랑’에 대해 자유로운 생각을 발표하는 사이트(tw.bbs.talk.love)에는 나이차가 많은 사람과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와 있다. 대체로 결혼에 대해 대단히 개방적인 의견들이 많다. 중국의 유명주요 인사 가운데 양전닝처럼 ‘왕니엔리엔(忘年戀, 나이를 잊은 사랑)’의 경우가 적지 않다.

베이징 쏭칭링꾸쥐에 있는 쑨원과 쏭칭링의 결혼 사진
베이징 쏭칭링꾸쥐에 있는 쑨원과 쏭칭링의 결혼 사진김대오
1915년 10월 25일, 중국과 타이완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孫文)은 당시 49살이었는데 여비서로 일 하다던 22살의 쏭칭링(宋慶齡)과 일본 도쿄에서 결혼했다. 쑨원의 혁명자금을 지원했던 쏭루야오(宋如耀)가 바로 쏭칭링의 아버지였으니 그녀는 바로 아버지의 친구와 결혼한 셈이다.

1927년, 40살의 장제스(蔣介石)는 쏭칭링의 동생 30살의 쏭메이링(宋美齡)과 네 번째로 결혼했다. 1928년, 징강산(井岡山) 시절 35살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당시 19살이던 혁명투사 허쯔전(賀子珍)과 세 번째로 결혼했으며 1976년 9월 9일, 83세 마오쩌둥의 임종을 지킨 것은 32살의 세 번째 애인 장위펑(張玉鳳)이었다.


1928년, 중국현대문학 최고의 작가인 47살의 루쉰(魯迅)은 17살 연하의 제자 쉬광핑(許廣平)과 두 번째로 결혼했다.

1944년, 중국현대문학 최고의 여작가로 뽑히는 당시 23살의 장아이링(張愛玲)은 15살 연상인 괴뢰정부의 관리로 중국의 매국노로 불리는 후란청(胡蘭成)과 결혼했으며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에는 30살 연상인 미국 작가 페르디난드 레이어(Ferdinand Reyher)와 두 번째 결혼을 하기도 했다.


1943년 발표된 중국 '인민문학'의 대표작가 자오수리(趙樹理)의 소설 <샤오얼헤이의 결혼(小二黑的結婚)>에 보면 결혼은 계급투쟁과 혁명의 부산물처럼 묘사되고 있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많은 지식인들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노동자, 농민 등 무산계급과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사례도 많았다.

그런데 개혁 개방 이후 자본주의적 문화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중국인들의 결혼관에 많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계급적 가치로 저울질되던 결혼이 이제는 경제적인 가치로 선택되는 느낌이 강하다. 중국인들은 비교적 개방적인 결혼관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결혼을 부와 권력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대체로 너그럽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왕니엔리엔(忘年戀, 나이를 잊은 사랑)’이 자칫 ‘왕리엔훈(忘戀婚, 사랑을 잊은 결혼)’으로 변질되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유효하게 존재한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근현대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국정넷포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근현대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국정넷포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4. 4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5. 5 미쉐린 셰프도 이겼는데... '급식대가'가 고통 호소한 이유 미쉐린 셰프도 이겼는데... '급식대가'가 고통 호소한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