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대 필화사건 일으킨 작품은 뭘까?

[서평] 당대의 삶을 해석해 놓은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을 읽고

등록 2005.11.17 19:15수정 2005.11.1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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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 노대환 지음
신병주 . 노대환 지음돌베개
소설은 허구, 즉 꾸며낸 이야기이다. 소설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현실에서 있음직한 것들을 하나의 형식을 빌려 풀어놓은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허나 소설 속엔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일상생활의 모습들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담겨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고전 소설을 통해 당대의 현실과 역사를 안다. 딱딱해지기 쉬운 역사를 소설 속의 내용을 알아간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새로운 소설 읽기에 맛을 더해 줄 것이다.


이번에 <고전 소설 속 역사여행>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흥미 위주로 읽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알아가며 내내 소설의 새로운 맛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어린이 동화책에서부터 중ㆍ고등학교 또는 국사교과서에 한 번쯤 언급되었던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장화홍련전>같은 우리 삶과 밀접히 연관된 소설에서부터 <허생전> <홍길동전>처럼 당대의 사회와 역사적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한 소설, 그리고 우리 독자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설공찬전> <전우치전> <은애전>과 같은 여러 작품들이 실려 있다.

저자는 이들 작품을 통해 조선 시대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실감 있게 재조명하며 동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당대 역사적 상황과 관련지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저자가 글의 첫머리에서 이 책을 ‘고전 소설을 통한 역사 읽기’를 시도하며 쓴 책이라고 말하듯, <고전 소설 속 역사여행>은 역사 뒷면에 감춰진 어쩌면 우리의 진짜 역사, 즉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보인 것들을 다시 해석해 놓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고전 소설 속 역사여행>은 단순한 소설 읽기가 아니라 소설 속에 숨겨진 역사를 파헤쳐보는 ‘역사 거꾸로 읽기’라 해도 될 만하다. 책에 수록된 몇 작품을 살펴보자.


조선 시대 최대 필화 사건을 일으킨 설공찬전

<설공찬전>은 설공찬의 혼령이 사촌동생 설공침에게 들어와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주로 충신, 반역자, 여인, 간신 등을 저승의 주요 인물로 등장시켰다. 성리학에 경도되었던 당시 조선 사회를 은근히 비판 풍자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 당시 집권층에선 그대로 둘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비록 이승에서 임금을 하였더라도 주전층 같은 반역자는 다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 는 내용이나, 중국 황제가 자신의 신하 애박을 염라왕에게 보내 다신이 가장 예뻐하는 아무개를 한 해만 저승에 잡아오지 말라는 청탁을 하자 염라왕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다 내 권한인데 어찌 거듭 내게 빌어 청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거부감을 나타낸 구절은 왕권의 권위를 암유적으로 돌려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저자(신병주, 노대환)는 염라왕을 현실 정치의 황제보다 우위에 두어 당시 집권층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점이 <설공찬전>을 금서로 가두어 놨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설공찬전>을 지은 ‘채수’는 34세의 나이에 대사헌에 이를 정도로 자질이 뛰어나 사람파의 기대주로 뽑힌 자인데, 이런 사람이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던 당시에 귀신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백성을 현혹하고 불교의 윤회 사상을 표현한 글을 발표해 당시 집권층의 심경을 불안하게 한 것도 금서로 지정된 요인이 아닌가 보고 있다.

1급 살인범을 석방한 정조와 은애전

과거든 현대든 살인범은 이유를 불문하고 중죄에 해당한다. 단군 이래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사형에 처하는 것을 대부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정조 때 1급 살인범을 석방하고 오히려 그의 뜻을 기리게 했다는 사실은 당시로는 충격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은애전>은 정조 14년 전라도 강진에 살고 있는 18살의 김은애라는 여인이 자신의 정절을 헐뜯고 비방하고 다닌 안노파라는 노인을 칼로 20군데를 찔러 처참하게 죽인 사건을 소설 형식을 빌려 쓴 글이다. 여기에 신여척이라는 살인 사건도 포함되어 있는데 정조는 이 또한 무죄 판결을 내려 후세에 알리도록 했다 한다.

그렇다면 정조는 왜 이런 살인범들을 벌하지 않고 석방은 물론 그들의 사건을 후세에 알려 본보기로 삼게 했는가.

정조는 살인도 중요하지만 그 살인 동기를 살펴 정상을 참작하여 두 살인범을 석방하였다. 은애라는 여인이 자신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정조는 이해했고, 오히려 유교 예(禮)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방편으로 삼았다는 것은 법 이전의 인간을 먼저 살핀 것이라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자식에게 줄 돼지고기를 술로 바꾸어 먹은 남편을 목 졸라 죽인 여인이 체포되었다. 그 여인은 결혼 후 줄곧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받아 왔고 딸아이는 성추행까지 당했다는 소식이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여인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여인은 아마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두고 조선 시대의 정조였다면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 이 사건을 소설의 형식으로 빌어 누군가가 쓴다면 어떻게 쓸까? 법이 만능인 시대에 <은애전>은 인간을 처벌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몇 까지 작품을 살펴봤지만 소설은 허구다. 그러나 그 허구 속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판타지가 아닌 이상 소설 속엔 그 시대의 생활상과 정치 사회적인 모습들이 소설이라는 이야기 구조를 통해 해학과 풍자 그리고 비극과 희극이라는 형태로 살아 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신병주와 노대환의 <고전 소설 속 역사여행>은 한 번쯤 읽어두면 소설 읽기의 새 맛을 알게 이끌어주는 책이라 하겠다.

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 - 개정증보판

신병주.노대환 지음,
돌베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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