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묘역 훼손 유감

[손석춘 칼럼] 누가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가

등록 2005.12.06 14:43수정 2005.12.0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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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ID국가유공자 회원들이 쇠망치로 비석을 부수고 있다(사진 제공: 파주시청).

HID국가유공자 회원들이 쇠망치로 비석을 부수고 있다(사진 제공: 파주시청).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말자. 수구세력이 늘 즐겨 쓴 수사다. 저들의 구린 과거가 드러날까 두려워서다.

하지만 과거의 재조명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문제다. 과거의 재평가도 미래지향적이어야 옳다. 그래서다. 반민족 행위를 저질러놓고 언죽번죽 독립운동을 했다든가 '민족지' 타령을 하는 일을 용납해선 안 된다. 외세와 빌붙어 제 겨레를 팔아먹는 부라퀴들이 앞으로도 활개 쳐서야 되겠는가.

남북관계를 둘러싼 원칙도 결코 다르지 않다. 미래지향적이어야 마땅하다. 다만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국가임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빨치산과 비전향 장기수의 무덤을 파헤친 '북파공작원'의 존재는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북파공작원, 남북대결체제의 '희생양'이었다. 대한민국은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쇠 했다. 오랜 세월 쌓여온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남북관계는 다르다. 더는 대결국면이 아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서 합의되었듯이, 남과 북은 '평화통일'의 길로 들어섰다. 상식이지만 짚어두자. 상식을 상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윤똑똑이들이 넘쳐 나서다. 평화통일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때, 평화통일이란 한낱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인정없이 평화통일은 불가능

a 국가유공자 가족이라고 밝힌 남자들에 의해 쓰러진 비석.

국가유공자 가족이라고 밝힌 남자들에 의해 쓰러진 비석. ⓒ 김준회

더구나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주체가 북이나 남일 가능성은 없다. 노무현 정부와 김정일 정부 두루 그럴 의지가 없다. 만 3년에 이른 한국전쟁과 그 뒤의 오랜 대결국면에서 우리 겨레가 얻은 핏빛 교훈은 무엇인가. 결코 전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그러나 보라. 여전히 상대를 부정하려는 집요한 세력이 있다. 수구정당과 수구언론이 그들이다. 지난 5월에 조성된 빨치산과 비전향장기수 묘역의 묘비가 갑작스레 논란을 일으켰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신문은 사설과 기사로 살천스레 비난했다.

그 결과다. 마침내 묘역마저 파괴되었다. '불굴의 통일 애국투사묘역'이나 '의사(義士)' 등의 문구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그 문구가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자극이 될 수는 있다. 굳이 그런 문구를 묘역 앞에 써놓아야 했는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엄연히 구분할 일이다. 그렇다고 묘역까지 파헤치는 야만이 용인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과거의 독재국가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이다. 묘역에 묻힌 사람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냈다. 더러는 고문으로 살해되기도 했다. 그들을 안장하고 그 앞에 그들이 스스로 자임해온 삶의 지표를 써놓는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는다. 강정구 교수의 인터넷신문 기고문으로 마치 나라가 결딴이라도 날듯이 소동을 피웠지만, 어떤가. 대한민국 안보는 이상 없다.

아니 정작 안보불안은 이 땅 안의 미군에서 비롯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보도했듯이 미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선제 핵공격 작전계획을 세운데 이어 실제 훈련까지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이 정작 무시하는 대한민국의 위기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의 안보가 불안하다면, 그 불안은 미국 조지 부시 정권의 위험한 불장난에서 연유한다. 정녕 대한민국의 안녕을 바란다면, 정치와 언론이 비판해야 할 과녁은 바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이다.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이 위기라면, 그 위기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데서 연유한다. 정녕 대한민국의 위기를 벗어나려면, 정치와 언론이 비판해야 할 과녁은 바로 현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다.

그러나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작전이나 민중 생존권은 공론화하지 않는다. 어쩌면 비슷한 운명이었을지 모를 '북파공작원'에 의해 '남파간첩'의 무덤마저 훼손되고 있다. 우리 '마음속의 38선'을 언제나 증폭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찬찬히 톺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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