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대훈장(사진)은 순수 재료비만 1300여만원이다.한국조폐공사 제공
나와 내 형제인 동전, 그리고 지폐의 발행과 폐기는 한국은행에서 결정한다. 제조는 한국조폐공사가 맡고 있는데 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돈은 경산조폐창에서 만들어진다.
돈만이 아니다. 우표와 주권, 채권, 상품권, CD(양도성예금증서) 등 종이에 금액이 적힌 것은 대부분 경산조폐창에서 생산한다. 주민등록증과 공무원신분증, 여권, 동사무소 등에서 사용하는 수입증지 역시 경산조폐창이 만드는 품목들.
이 갖가지 품목들을 만들어 납품하는 원가를 알고 나면 누구나 한번쯤은 빙그레 웃게 된다.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의 납품가는 단돈 28원. 10원짜리 동전의 납품가가 38원이니 10만원짜리 수표의 원가는 10원 동전 원가보다 싼 셈이다. 1만원짜리 지폐의 경우는 70원, 나는 75원으로 납품가가 책정돼 있다.
한국조폐공사가 제작하는 것 중 최고가인 것은 대통령에게 수여하는 무궁화대훈장. 190돈이 넘는 금과 110여돈의 은, 여기에 루비 등의 보석으로 만드는 이 훈장은 순수 재료비만 1300만원이 넘는다. 납품가는 2000만원. 10만원권 자기앞수표를 71만5천여장 만들 수 있는 돈이다.
이제 내 이야기는 잠시 쉬고 당신들이 나, 아니 내 형제와 친구들에 관해 궁금해하는 것들을 답해주는 시간을 가져보자.
① 나와 내 형제인 주화와 지폐에 새겨지고, 그려지는 인물과 조형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지 궁금하다고?
"먼저 한국은행에서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인지 여론조사 등을 실시한다. 이후 원로학자 등으로 구성된 화폐제조자문기구가 적합성을 논의한 후 디자인과 서체 등을 결정해 제작에 들어간다"는 것이 1977년 한국조폐공사에 입사해 같은 직장에서 올해 정년을 맞은 박창식(디자인조각팀 부장)씨의 설명이다.
② 나와 오십원, 오백원짜리 주화의 테두리가 톱니모양인 이유가 뭐냐고?
톱니바퀴형의 둘레는 고대주화가 가지는 특징 중 하나다. 최초의 금속화폐 재료는 금과 은이었다. 불량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 주화들의 테두리를 조금씩 깎아내 위조동전을 만들고 불로소득을 꾀했는데, 톱니형 주화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덧붙여 내 몸에는 110개의 톱니가 새겨져있고, 500원에는 120개가, 50원에는 109개가 새겨져있다.
③ 이제까지 만들어진 나와 내 형제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냐고?
답을 말해주기 전에 일단 '놀라지 마시라'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싶다. 현재까지 만들어진 주화 6종의 총 개수는 약 160억9646만2천여 개. 이중 나 100원짜리의 개수는 65억개에 육박한다. 매년 나와 5종의 동전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만도 400억원에 이른다.
내 친구 좀 서랍에서 묵히지 말자, 지폐도 괴롭히지 말자
여기서 부탁 하나 하자. 나를 포함한 소액의 동전들이 시중에 유통되지 못하고 각 가정의 저금통과 책상 서랍 등에 널브러져 건 국가적 손실이다. 이것들을 대신하기 위해 매년 동전을 만들어야 하고, 그 제작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엄청나다.
도소매점과 자동판매기 등에서는 매일 나와 내 형제들을 필요로 한다. 거스름돈으로 받은 주화를 쌓아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건 잔돈 계산을 편리하게 해주고, 동전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애국의 길이다. 허니, 동전 쓰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라.
덧붙이는 당부는 내 친구인 지폐를 깨끗하게 사용해달라는 것이다. 한해 동안 훼손돼 쓰지 못하게 되는 지폐는 9억장. 5톤 트럭 194대를 동원해야만 실을 수 있는 양이다. 이런 형편이기에 동전과 마찬가지로 지폐 생산비용 역시 무시 못할 거액임이 불문가지.
종이가 아닌 100% 면섬유로 만들어진 한국 지폐는 외국에 수출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난데 그 사용자들인 한국인이 거기에 낙서를 하고, 함부로 구겨서야 되겠는가? 지폐에 인쇄된 세종대왕과 율곡, 퇴계가 더 이상 실망하지 않게 하자.
또 한 가지 당신들이 흥미로워할 이야기를 들려줄까 한다. 150원 동전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답은 '있다'다. 경산조폐창에서만 사용하는 특수한 동전인데 그 크기는 1원짜리보다 조금 작다. 색깔은 황색. 아래 사진에서 내 옆에 함께 포즈를 취한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