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MP3플레이어.코원시스템 제공
뿐이랴, 초기에는 32~64MB에 불과하던 내 메모리용량도 최근에는 괄목상대할 만큼 늘어나 30GB(1GB=1024MB)를 자랑한다. 노래 한 곡의 평균 5MB이니 최대 6000곡의 노래를 내 안에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크게 플래시메모리형과 하드디스크형(HDD)으로 구분된다.
플래시메모리형은 날씬하고 작음 몸에 디자인이 세련된 것이 많아 한국 사람들이 선호한다. 하지만 용량이 적다. 하드디스크형은 다소 큰 몸집이 단점으로 지적되기 하지만, 상대적으로 용량이 커 외국인들이 좋아한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는 셈이다.
나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음질이 최고"라고 평가받는 코원시스템은 내수용 플래시메모리형과 수출용 하드디스크형을 각각 40%와 60% 비율로 생산해 연 1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외에도 레이콤과 삼성전자 등 20여 개 회사가 나와 내 친구들을 생산한다.
전세계를 통틀어 나의 시장규모는 3700만대.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49억 달러다. 한화 5조원 규모의 엄청난 시장이다. 한국에서는 코원과 레인콤, 삼성전자 등 3사가 전체 매출의 50% 가량을 차지하는 메이저 제조업체로 거론된다.
몸집큰 '탱크형' 워크맨부터 영화도 보여주는 PMP까지
이동하면서 음악감상이 가능하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소니가 개발해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워크맨은 내 조상 격이다. 자고로 음악이란 근사한 오디오 기기를 갖추고 집에서만 듣는 것이라는 인식에 일대전환을 가져온 제품.
워크맨은 그 탄생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1978년 소니의 녹음기기 생산부서는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다. 더 이상 이익 창출이 어렵다는 경영진의 판단 앞에 이들은 악전고투의 노력을 경주했고 그 결과물로 손바닥 크기의 녹음재생기를 내놓았다.
소니의 회장 모리타는 이 제품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마침내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의 대박 신화를 이뤄낸다. 이 제품이 바로 워크맨. 워크맨은 일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대화보다는 혼자만의 고독에 익숙한 뉴욕의 여피족과 입시와 주입식 교육에 찌들어 있던 한국의 중고교생들에게도 엄청난 사랑을 받는다. 지금으로 20여년 전인 1980년대 이야기다.
한국에서 나와 내 친구들이 사랑받는 건 민족적인 기질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노래 듣고 노래 부르는 것을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즐기고(당신 주위의 노래방들을 보라),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신만 가지지 못하면 견디기 힘들어하는 한국인의 성정. 그런 배경이 '엠피맨'이라는 내 큰형을 만들었고, 거리를 각종 MP3플레이어의 거대한 전시장으로 만든 게 아닐지.
워크맨이 내 조상이라면 나의 가장 진화된 형태는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다. 음악재생 기능과 보이스레코더 기능은 물론,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고, 이미지를 볼 수 있으며, 텍스트를 읽는 것까지 가능한 이 기기는 나의 진화가 과연 어디까지 가닿을 것인지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요사이는 PMP도 상용화단계에 이르러 지하철을 타면 나를 가진 대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코원 홍보실 측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출시한 'A2'라는 PMP는 40여만원이라는 고가임에도 한 달에 1만여대씩이나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개가 물어뜯어도 멀쩡한 한국 MP3의 맷집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자제품의 기술력과 품질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만만찮은 수준이란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나 역시 그렇다. 게다가 내 친구 하나는 튼튼함까지 갖춰 세계의 네티즌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지난 연말. 미국의 한 네티즌이 개가 물어뜯어 완전히 파손되기 직전의 상태까지 간 내 친구 하나의 사진을 전자기기 전문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다. 그 사연이 놀라웠는데 완파 직전까지 간 내 친구가 멀쩡히 작동했다는 것. 이 제품은 한국의 MP3플레이어 제조사가 만든 것이었다.
이 게시글과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내 친구의 튼튼함과 품질에 찬사를 보냈고, 이 사연은 태평양을 건너와 한국의 신문에까지 보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