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 생산공장의 모습.신도리코 제공
나와 내 할아버지, 아버지의 탄생에 가장 혁혁한 전공을 세운 사람은 프랑스인 루이 다게르. 그는 1837년 은판 위에 물체의 모습을 고정시키는 사진술을 발명했다. 그 기술은 필름 대신 은염을 씌워 사물을 촬영할 수 있게 했고, 그 '은염사진 기법'은 서류복사를 가능케 했다.
이 복사기술은 1924년에 획기적 전환기를 맞게 된다. 감광지를 이용해 현상과 복사를 가능케 한 내 시조 '디아조 복사기'가 생겨난 것이다. 1938년에는 미국인 체스터 칼슨이 현대화되고 세련된 할아버지 '정전식 복사기'를 발명했지만, 어떤 회사도 이 발명품의 특허권을 사려하지 않아 골머리를 싸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결국 칼슨의 발명특허권은 할로이드라는 회사가 사들였는데 그 회사는 내 친구들을 수백만 대 생산하는 굴지의 회사 제록스가 됐다.
위조지폐 제조 등에 악용하는 사람 있지만, 예술가들의 사랑 받기도
사무실 사람들이 모여 새로 온 내 친구녀석을 살펴보고 쓰다듬느라 정신이 없다. 아, 정든다는 것의 무상함이여. 하지만, 어쩔 것인가. 나보다 더 충실해 내가 해온 역할을 수행할 친구의 무병장수를 빌어줄밖에.
사라질 날이 가까우니 태어나던 날이 생각난다. 내 탄생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필요했다. 보다 더 효율적이고, 발전적인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밤새 이어지던 '제품기획 회의'는 내 탄생의 서곡이었다.
기획이 확정되면 '개발 단계'로 넘어가는데 여기서 테마실시계획서와 제품설계개발계획서 등이 작성된다. 본격적으로 내 몸이 만들어지기 위한 도면이 그려지는 전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설계 단계'에서도 지속적인 평가회의와 대책수립 회의가 이어진다. 나를 만들어온 전문가들은 사용자의 입장에 서서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