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송장으로 선산에 갈 수 없어 초분을 한 김씨.김준
초분을 쓰고 나서 탈육이 되고 난 후 좋은 날을 택해 이장을 하는데, 한식날이나 윤달이 든 달에 많이 한다. 가족의 개별적인 사정으로 이장이 어려울 경우 초분 상태로 이엉만 매년 교체하고는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초분을 하는 이유도 갖가지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행한 <초분>(2003)에는 그 이유를 사자의 운과 산운이 맞지 않거나, 풍수적인 이유로 묘를 쓸 수 없는 운이 유가족 중에 있을 때(집안 며느리 임신 등), 정월이나 2월 달에 돌아가셨을 때 땅을 건드리면 토지신이나 영등신이 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송장으로 선산에 갈 수 없을 때 초분을 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적당한 장지를 정하지 못했을 때, 집안에 좋지 않는 일이 자주 생길 때, 사망 당시 후손들이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일손이 없거나 먼 곳으로 가기 위해 임시로 가장을 할 때, 전염병이 퍼질 때, 초분이 자손에게 좋거나 효도를 다하는 것으로 믿는 전통 때문 등이다.
도초도의 또 다른 초분을 한 김씨는 진송장(산송장)을 조상 곁으로 모실 수 없다는 자손들의 믿음에 의해 초분을 해 모셨다. 2000년도에 송이도를 방문했을 때 10여기의 초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 정월달에 땅을 건드릴 수 없어서 초분을 했다. 정월이나 2월에 땅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어민들의 생업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때는 바람도 많고 해류도 바뀌는 계절인 탓에 어민들은 영등신이 내려와 미역씨도 뿌리고, 전복씨도 뿌리며 생업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다. 이 시기 부정한 일을 하게 되면 일 년 바다 농사를 망치게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사나운 바다에서 생업활동을 해야 하는 어민들에게 행여 좋지 않는 일이 생길 경우 영등신을 노하게 해서 생긴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자손들에게 좋지 않는 일이 생길 경우 초분을 하는 사례도 있다. 임자도에서는 매우 특이한 사례로 자식들에게 좋지 않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한국전쟁 기에 물에 빠져 죽은 조상의 넋을 건져 씻김굿을 하고 초분을 한 사례도 있다.
초분은 탈육이 되어 본장 또는 영장을 할 때까지 시신을 모셔두는 곳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탈골이 잘 될 수 있도록 마을에서 떨어진 양지바른 곳에 모시는 경우가 많다. 땅에 묻지 않고 아래에 돌을 깔고('덕대'라고 함) 그 위에 관을 놓고 짚으로 이엉과 용마름을 덮는다. 초분의 형태는 관의 길이 같이 길쭉한 모양을 하지만 영광 송이도에서 확인된 것처럼, 뼈를 추려서 본장을 하지 않고 정방형의 나무상자에 넣어 원뿔형태의 초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