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갯벌, "너는 내 운명"

갯벌에서 그레 끌며 살아가는 부안 계화도 어민들

등록 2006.01.11 10:19수정 2006.01.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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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얼었다는 말은 좀처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갯벌도 쉬 얼지 않습니다. 다만 물이 적게 들고 나는 '조금'에는 육지와 가까운 갯벌들은 얼기도 하고,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눈도 쌓입니다. 갯벌의 겨울 풍경은 여름철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언 갯벌을 깨뜨리며 경운기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갯벌로 들어섰습니다. 평소 같으면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한 길이라 아스팔트 길보다 익숙하게 질주하겠지만 얼고 눈이 쌓인 갯벌길이 예사롭지 않은 모양입니다.


경운기를 운전하는 한 어민이 내려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이럴 때는 걸어가는 사람이 더 빠른 모양입니다. 그레를 한 손에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경운기를 앞지르며 갯벌로 들어갑니다. 아마도 겨울에는 경운기를 타고 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준
김준
'그레'는 계화도(전북 부안) 어민들에게 생명줄과 다름없습니다. 새만금 갯벌이 숨을 쉬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금 물길이 열려 있는 2.7km와 이제는 막혀 버린 군산 쪽 4공구 방조제도 물길을 터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막혀 버린 4공구를 어민들은 '숨통'이라고 하고, 신시도 일대 작은 물길 2.7km는 '생명줄'이라고 합니다. 숨통은 막히고 생명줄에 기대어 사는 새만금 갯벌은 그레에 기대어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계화도 어민들과 똑같은 운명입니다.

허리 굽혀 자연에 상처 주지 않는 사람들

1월 7일 오후 4시 20분. 낮 물때라 오전 11시 무렵 갯벌에 들어간 어민들이 하나 둘 살금마을 갯벌 입구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입구에는 승용차부터 트럭까지 몇 대의 차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여름철과 가을철에는 어민들이 이용하는 경운기가 드나들기 어려울 정도로 길 양쪽에는 외지 차들이 주차합니다.


주민들뿐 아니라 외지에도 전문적으로 갯벌을 드나들며 조개를 캐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처럼 복장을 갖추고 그레를 들고 갯벌로 향하는 모습은 외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든 땅 한 뙤기라도 마련하려고 애쓰던 옛날, 농민들에게 '문전옥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갯벌이 그렇습니다. 어민들에게 갯벌은 농민들의 문전옥답에 해당합니다.


배를 타고 먼 바다까지 가지 않아도 쉽게 일을 할 수 있고, 아이들 학비는 물론 생활비와 반찬거리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갯벌이었습니다. 갑자기 손님이라도 들이닥치면 조새나 호미를 들고 갯벌로 가거나, 갯골에 쳐 두었던 그물이면 훌륭한 찬거리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김준
김준
그 갯벌을 두고 어민들이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 '양식'이었습니다. 양식은 자연이 주는 대로 거두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듯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기르는 어업'이라고들 합니다.

욕심이 과하면 자연은 인간에게 해를 주는 모양입니다. 새만금 갯벌은 일찍부터 '생합(백합)'의 산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아직까지 생합을 양식해 시장에 유통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부분적으로 생합 양식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생합으로 한 몫 잡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집단 폐사하고, 바지락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섬이었던 계화도는 건국 이래 최대의 간척사업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육지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섬진강 댐 건설로 인한 수몰민들이 계화도와 돈지 등에 이주하면서 새로운 마을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입니다.

계화도 어민들의 문전옥답 '갯벌'이 정말 문전옥답으로 변해 수몰민들에게 분양될 때도 이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많은 갯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갯벌의 생명줄이 위태롭습니다. 내년 3월이면 갯벌의 8천여 년의 생명줄이 끊기는 모양입니다.

김준
갯벌과 대화하는 사람들

계화도 사람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계절에 관계없이 물때에 따라 두어 시간에서 반나절이 훨씬 넘도록 갯벌을 누벼 그레를 끌며, 허리 굽혀 자연과 대화합니다.

눈 쌓인 갯벌에 '그레'만 들고 나섭니다. 이들에게는 정년도 없습니다. 허리 굽혀 그레를 끌 힘만 있으면 갯벌은 그들을 받아 줍니다. 단지 생합만 캐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하러 서울에 올라간 자식, 몇달 전에 시집간 딸, 이웃집 부부싸움, 시어머니, 동네 일 등 가정 일에서 마을 일까지 온갖 이야기를 갯벌과 나눕니다.

갯벌은 그들의 상담 선생님입니다. 그러고 나면 막힌 속도 뚫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루에 몇만 원씩 일당도 받아 옵니다. 이게 어디 농민들의 문전옥답에 비하겠습니까.

눈이 많이 온 겨울 계화도 매봉에서 하리로 내려오는 골목길이 시끄럽습니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나는 어른들도 크게 야단을 치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한쪽에 연탄재로 길을 만들고 아이들이 누워서 비료포대 썰매를 타는 길은 그대로 둡니다. 동네에 이렇다 할 놀이기구가 없는 탓에 이보다 신나는 일이 없습니다. 어른들도 그렇게 놀았기 때문입니다.

김준
어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경운기에 그레와 생합을 담을 망을 싣고 갯벌로 향하고 아이들의 신명나는 소리는 그칠 줄 모릅니다. 여름철에나 쓰는 햇볕을 가리는 모자가 이곳 어민들에게는 사시사철 이용됩니다. 몇 겹으로 껴입은 옷에, 모자를 쓰고 그 위에 두 눈만 내놓고 수건과 보자기로 머리를 감싸면 갯벌로 나가는 복장이 됩니다.

여기에 면장갑과 고무장갑을 끼고, 두꺼운 양말을 신고 장화까지 신습니다. 계화도의 갯벌은 모래갯벌이라 많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레와 망태를 짊어지면 모든 준비가 끝나고, 그레질을 할 갯벌로 운반해 줄 경운기만 기다리면 됩니다.

그렇다고 그냥 얻어 타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차비'가 있습니다. 경운기를 한 번(왕복) 이용하는 데 5천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갯벌에 들어서는 경운기는 덜컹거리며 정해진 길을 질주합니다. 갯벌에도 경운기가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간혹 갯벌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동차나 경운기를 가지고 들어왔다간 그대로 갯벌에 묻히기 십상입니다.

김준
김준
그레질은 주로 여성들이 많이 합니다. 최근 방조제가 막히면서 생선이 잡히지 않자 남자들도 그물을 던지고, 김 양식을 하던 사람들도 그레를 들고 갯벌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반반씩 될 정도로 남자 그레꾼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몰려들어 생합 등 조개류를 많이 잡게 되면 갯벌의 균형 상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민들의 삶의 균형이 무너지면 생태계도 무너지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지난해 말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두 번째 법정싸움이 마무리되었습니다. 1심 판결을 뒤집고, 새만금 사업을 추진하라는 판결이 났습니다. 전라북도와 농업기반공사는 축포를 쏘아 올렸지만, 새만금 갯벌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크게 실망하고 상고할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살금마을 입구로 할머니 한 분이 왼팔에 그레를 끌어안고, 망태를 지고 갯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장갑에 고무장화 그리고 누비 방한복에 방한모자와 수건까지 둘렀습니다. 언뜻 보아도 칠순은 넘었을 것 같습니다. 그레도 힘겨워 보이는 할머니가 망태까지 짊어진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물길이 막히고 생합이 사라지면 저 할머니는 어디로 가야 할까 걱정됩니다. 바다만 쳐다보고 살아온 계화도 사람들, 이렇다 할 땅 뙤기도 없는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갯내음을 맡고 평생을 살아온 그들에게 그레 대신 삽과 괭이를 들고 논과 밭으로 가라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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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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