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엔 목련꽃이 피었어요

등록 2006.03.22 11:01수정 2006.03.2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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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엔 목련까지 피고 있어요.
남녘엔 목련까지 피고 있어요.서종규
고등학교 시절이었던가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음악 시간이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제법 폼을 잡아가면서 불렀던 가곡이 '사월의 노래'였나요? 분명 '사월의 노래'였어요. 알고 있기로는 박목월의 시에 김순애님이 곡을 붙인 노래였지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 박목월 시 <사월의 노래> 중에서


하얀 꽃이 고개를 내밀었으니 얼마나 환해지겠어요.
하얀 꽃이 고개를 내밀었으니 얼마나 환해지겠어요.서종규
봄을 맞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생명이 가득하였으면 좋겠어요.
봄을 맞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생명이 가득하였으면 좋겠어요.서종규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문득 눈을 들어 보니 하얗게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이 있었어요. 아차! 하는 마음에 고개를 내밀었죠. 하얀 미소, 바로 목련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니까요. 그러니까 4월이 아닌 3월 중순에 목련꽃이 피어난 거예요.

지난주엔 교정에 핀 개나리를 보았답니다. 채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교정이 온통 노랑 물결로 출렁거리고 있어요. 그 노랑 물결 틈새에 하얀 꽃이 고개를 내밀었으니 얼마나 환해지겠어요. 카메라를 챙기지 못해 안달이 났답니다. 결국은 쉬는 시간에 외출을 하여 가지고 온 사진기에 목련의 하얀 미소를 담기 시작했어요.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문득 눈을 들어 보니 하얗게 미소짓고 있는 얼굴이 있었어요.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문득 눈을 들어 보니 하얗게 미소짓고 있는 얼굴이 있었어요.서종규
오래 전부터 교정에 있던 목련은 청소년들에게 많은 꿈을 갖게 해 주었답니다. 특히 여학생들이 목련꽃 아래에서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과 하얀 꽃잎을 헤아리며 서성거리기 시작하면 교정은 봄의 낭만에 젖어 들었지요.

그런데 3월 중순에도 가끔은 꽃샘추위가 있잖아요. 금년엔 아직 추위가 없어서 하얀 목련의 아름다움이 그대로이지만, 꽃샘추위가 다가온 어느 해에는 하얀 목련 꽃잎이 모두 벌겋게 말라죽어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답니다.


3월인데도 남녘에 목련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개나리가 먼저 피더니 목련이 뒤따르더군요. 그 모습이 봄의 생동감으로 다가오네요. 아울러 교정에 심어진 청매화나 홍매화도 꽃을 틔우기 시작했어요. 교정이 온통 꽃 천지로 변하였다니까요.

청소년들의 마음에 생명의 희망으로 자라는 하얀 목련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청소년들의 마음에 생명의 희망으로 자라는 하얀 목련이 되었으면 좋겠어요.서종규
원래 목련은 4월에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줄기 끝에 한 송이씩 달린대요. 이 때문에 목련꽃이 떨어지고 나면 줄기 끝에 뭉툭하게 잘린 것 같은 자국이 남아요. 그리고 북쪽을 향해 꽃을 피우는 목련은 임금님을 향하는 충절을 상징하기도 한답니다.


서양에서는 흔히 목련의 꽃을 팝콘에 비유하며, 불교에서는 나무에 핀 연꽃이라는 의미로 목련(木蓮)이라고 부른답니다. 흔히 사찰의 문살 문양에서 볼 수 있는 6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은 목련을 형상화한 것이래요. 또한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제목 <뮬란>은 중국어로 목련을 뜻한다고 해요.

목련은 청소년들에게 많은 꿈을 갖게 해 주었답니다.
목련은 청소년들에게 많은 꿈을 갖게 해 주었답니다.서종규
우리 어머니께서도 목련을 좋아하셨답니다. 시골에 사셨는데, 봄에 한 번 도시에 나가셨던 기억 속에 하얀 목련꽃이 담장 너머까지 너울대는 모습이 너무 좋으셨나 봐요. 그래서 큰누나에게 하얀꽃이 너무 이쁘더라고 넌지시 부러워하셨대요. 누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는 꽃집에 가서 목련 한 그루를 사셨답니다.

어머니는 그 목련을 텃밭에 정성스럽게 심고 거름을 주셨고요. 어머니의 정성은 곧바로 하늘로 뻗어났나 봐요. 이듬해부터 하얀 목련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기만 하는 목련 나무는 어느덧 커다랗게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고 하네요. 동네 한가운데 집에서요.

불교에서는 나무에 핀 연꽃이라는 의미로 목련(木蓮)이라고 부른답니다.
불교에서는 나무에 핀 연꽃이라는 의미로 목련(木蓮)이라고 부른답니다.서종규
그런데 문제는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불평이었답니다. 집에 하얀 목련이 눈이 시리도록 피어도 도시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시골 사람들의 눈에는 반가운 모습이 아니었나 봐요. 재수 없는 꽃이라나요. 저승꽃과 비슷하게 생겼다나요. 동네 한 가운데에 하얀 꽃이 온 동네를 초상집 같이 만들고 있다나요.

비난의 화살이 어머니께 돌아오자 어머니는 목련 나무의 목 부분을 자르셨다고 하네요. 그래도 거름이 풍부한 땅인지라 이듬해에 또 온통 하얀 꽃이 만발하였고, 또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가슴 눌린 어머니는 결국 밑동 채 나무를 잘라내고,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께서도 목련을 좋아하셨답니다.
우리 어머니께서도 목련을 좋아하셨답니다.서종규
농촌이 황폐화되는 것과 목련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나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를 피하기 힘들어 잘라버린 목련으로 어머니의 마음엔 커다란 상처가 남아버린 것이지요. 그랬겠지요. 그렇게라도 풀어버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농촌이 아니었겠어요. 그러나 어머니 마음에 남은 상처는 매년 목련꽃이 필 무렵이면 꼭 다시 터지곤 한다니까요.

하이얀 목련 온 마을을 물결치니
보리농사 앗아간 재수 없는 흰 꽃이라고
귀를 찌르는 온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목 부분을 잘라 버리고
서럽도록 탐스런 목련꽃 한 이파리에 따라 마신
막걸리 한 사발에 취해 가슴 두드리던 어머니는 - 저의 시 <하이얀 목련> 중에서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서종규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에 목 놓아 불렀던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 든다'의 선율이 떠오릅니다. 교정엔 봄의 생기가 넘치네요. 목련꽃 아래에서 꽃을 쳐다보는 학생들의 얼굴도 보이고요. 사진을 찍는 선생님을 보고 옆에 와서 구경하는 학생도 있고요.

남녘에 개나리에 이어, 목련까지 피고 있어요. 그것도 꿈 많은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정에요. 늘 그렇듯이 봄을 맞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생명이 가득하였으면 좋겠어요. 결코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어버린 꽃이 아닌, 청소년들의 마음에 생명의 희망으로 자라는 하얀 목련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목련꽃 아래에서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과 하얀 꽃잎을 헤아리며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교정은 봄의 낭만에 젖어 들었지요.
목련꽃 아래에서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과 하얀 꽃잎을 헤아리며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교정은 봄의 낭만에 젖어 들었지요.서종규

덧붙이는 글 | 이 목련꽃은 3월 20일(월) 광주경신중학교 교정에서 찍은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목련꽃은 3월 20일(월) 광주경신중학교 교정에서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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