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휘청 에어버스... 유럽 하늘은 난기류

에어버스A350 누르고 보잉787 날았다

등록 2006.04.14 17:56수정 2006.04.17 17:35
0
원고료로 응원
a 에어버스가 보잉의 고속중형기 787기에 대항해 기존 A330기를 개량해 선보인 A350기

에어버스가 보잉의 고속중형기 787기에 대항해 기존 A330기를 개량해 선보인 A350기 ⓒ 에어버스


에어버스가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에어버스 컨소시엄의 3대 축 중 하나인 영국의 BAE 시스템이 지난 8일 20%에 달하는 지분을 EADS(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에 팔아넘기겠다고 밝히고 사업에서 손을 뗀 것. 여기에다 독일 측 파트너인 다임러 크라이슬러 그룹 역시 7.5%에 달하는 EADS의 지분을 20억 유로에 매각하기로 하는 등 에어버스의 장래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이 대주주들이 지분 매각에 나선 것은 그간 값이 많이 오른 EADS의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에어버스의 속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대주주들의 주식 매각은 이들이 에어버스의 장래를 그리 밝게 보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실제로 경영실적을 보여주는 핵심지표인 비행기 수주량에서 에어버스는 2006년 4월 기준 1050대를 확보하는 데 그쳐 1150대를 수주한 보잉에 뒤지고 있다. 보잉이 마진이 높은 고속의 신형 중형기 787기를 298대나 팔아치우며 총 84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동안 에어버스는 경쟁기종인 A350기를 100여대 파는 데 그쳤다.

747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여객기 A380의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지난 몇 년간 언론의 각광을 독차지하던 에어버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신기종 대신 어설픈 개량.... 보잉의 실수를 따라한 에어버스

흥미로운 사실은 에어버스가 보잉이 10여년 전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며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지난 1994년 에어버스가 보잉 747기을 능가하는 초대형 여객기를 개발하겠다고 나서자 보잉은 "무려 800여명이 넘는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메가플레인의 수요는 제한적"이라고 반박하고 대신 고속으로 장거리를 순항해 최종 목적지에 신속하게 도착할 수 있는 787기 개발에 전념했다.

그러나 A380기에 대한 항공사들의 반응이 범상치 않은 것에 놀란 보잉은 경쟁 신 기종을 개발하는 대신 기존 747기의 동체를 길게 늘인 747X기라는 개량형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a 보잉이 747기 동체 길이를 늘여 탑승객 수를 늘린 개량 모델 747X기.

보잉이 747기 동체 길이를 늘여 탑승객 수를 늘린 개량 모델 747X기. ⓒ 보잉

하지만 A380기의 막대한 수송능력과 경제성에 매료된 항공사들에게 동체를 길게 늘인 것에 불과한 보잉의 개량모델은 차가운 외면을 받았고 곧 계획 자체가 무산되고 말았다. 신제품 대신 어설픈 개량 모델로 대응하다 결국 기회를 놓치고 만 것.

에어버스가 고속중형기 시장에서 저지른 실수도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초대형기 시장에서 에어버스에게 시장을 넘겨준 보잉은 대신 고속중형기 개발에 올인했고, 탄소복합재료를 사용한 가벼운 동체와 획기적인 운항거리를 자랑하는 787기는 항공사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에 에어버스는 787기에 대항할 신기종을 개발하는 대신 기존 A330기를 약간 개량한 A350기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고속중형기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787기에 비해 눈에 띄는 혁신도 없고 동체에 이곳저곳 땜질식으로 기능을 추가한 A350기는 시장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다.

여객기 리스를 전문으로 하는 ILFC 측은 에어버스가 올해 여름 이전까지 A350기에 대한 전면적 재설계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보잉에 향후 물량을 빼앗길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에어버스, 다시 날아오를까

에어버스의 이런 소극적 대응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A380기 개발에 이미 회사의 자원을 소진한 상황에서 또 다시 신기종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여력이 없었던 것.

에어버스 측은 EU에 손을 벌려 A350기 개발을 위해 저리의 특별 차관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미 미국과 심각한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던 EU로서는 섣불리 이런 요구에 응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에어버스로서는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 A380기를 하루라도 빨리 시장에 내놓아 항공여행객을 사로잡고 이를 통해 신규 수주에 탄력을 받아야 하지만 이것조차도 지금 여러 기술적 난관에 부딪혀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 항공에 납품될 첫 A380기는 계획대로라면 이미 상업운항을 시작했어야 하지만 기술적 문제로 빨라야 올해 말에나 운항이 가능할 예정이다.

세계 민항기 시장의 양대 거인이 벌이는 일진일퇴가 어떤 형국으로 풀려갈 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비즈니스의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것. 인생과 마찬가지로 비즈니스의 세계 역시 교훈은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a 영국 브라우턴 공장에서 조립 중인 A380기의 주 날개. 1만3천명의 노동자들이 이 조립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영국 브라우턴 공장에서 조립 중인 A380기의 주 날개. 1만3천명의 노동자들이 이 조립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 에어버스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민관 합작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에어버스 사업에서 영국 측 파트너인 BAE시스템이 발을 빼자 유럽에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유럽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국익을 챙겨 온 영국의 얄미운 행동에 유럽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다. 에어버스는 영국이 정치·외교적으로 유럽 대륙과 불편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당당한 일원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업이었는데 결국 발을 빼고 만 것.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사설에서 경제논리로 볼 때 영국에 설치한 에어버스의 날개 조립 설비를 철수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이런 가능성이 신문지상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이번 사안의 정치·외교적 파장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에어버스의 초대형 여객기 A380의 주 날개는 BAE시스템의 영국 공장에서 조립된 뒤 육로 및 해로를 통과하는 복잡한 운송과정을 거쳐 프랑스 뚤루즈의 최종 조립공장으로 보내진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영국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장기적으로 주 날개 조립라인이 프랑스로 이전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복잡한 운송작업에도 불구하고 굳이 공장을 영국에 지은 것은 사업의 핵심 파트너인 영국 측을 배려한 정치적 결정이었는데 이제 그런 구속장치가 사라져 버린 것.

에어버스의 향후 행로에 관심이 더 쏠릴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