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길 파헤치지 말고 턱이나 낮춰라"

[5.31지방선거 민심탐방] 장애인들 "어떻게 투표하고 정보를 얻으란 말인가"

등록 2006.05.02 17:33수정 2006.05.0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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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대부분 후천적인 장애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들. 그들에게는 5·31지방선거일의 투표권 행사가 비장애인처럼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투표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고 하는 그들. 장애인들의 눈에 비친 5·31지방선거의 모습 및 앞으로 선출될 일꾼들에게 장애인들이 바라는 점에 대해 들어보았다.

a "갈 곳 없는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이 절실하다. 그래도 우리는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오는 편이다."[오성규(35)]

"갈 곳 없는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이 절실하다. 그래도 우리는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오는 편이다."[오성규(35)] ⓒ 양산시민신문

오성규 "선거? 별로 관심 없다. 투표는 하러 가겠지만 투표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다. 선거에 관심 없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정치에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 한 표로 뭔가 특별히 바뀐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 않다. 그동안 공약만 번지르르하게 내걸었지, 제대로 실천한 게 얼마나 되나. 그나마 우리 장애인들을 위한 공약은 단 한 건도 본 적이 없다. 우린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선거에 장애인은 없다

김병태 "선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부재자 투표를 신청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현실적으로 투표하지 말라는 것과 똑같다. 나처럼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은 그나마 낫다. 시각장애인들이나 청각장애인들은 어떻게 투표를 하라는 말인가. 후보들에 대한 정보는 또 어떻게 얻으란 말인가.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의 공약과 정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논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전에 기본적인 선거권조차 확실히 보장받지 못한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귀원 "선거철만 되면 그들은 부쩍 친절해져 각 단체로 몰려온다. 하지만 선거철이 지나면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눈에 띄느냐. 절대 찾아볼 수 없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에 관심을 보이며 신경 써 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박영하 "얼마 전에 있었던 '장애인의 날'에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명함을 돌리는 것을 목격했다. 적어도 '장애인의 날' 행사장에 장애인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왔다면 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뛰고 싶은 거냐고. 자신이 속해있는 지역구의 이익? 자기만족?"


a "가까운 동네 공원이 생기면 동네주민들이 나올 거고 계속 만나게 되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자연스럽게 깨질 것이다."[김병태(40)]

"가까운 동네 공원이 생기면 동네주민들이 나올 거고 계속 만나게 되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자연스럽게 깨질 것이다."[김병태(40)] ⓒ 양산시민신문

김병태 "다리가 이렇게 되고 나선 투표를 해본 적이 없다. 투표를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실망스런 일이 잦다 보니, 어떤 인물이 선출되건 관심 밖이다. 정당에도 별 관심 없다. 처음에는 야심 차게 하는 것 같지만 곧 흐지부지되는 모습을 너무 자주 목격했다. 최소한 자신의 정치적 소신만이라도 제대로 갖춘 사람을 보고 싶다."

서홍식 "한 쪽 팔이 없으면 불편한 점이 너무 많다. 하지만 팔다리가 불편해보지 않으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 비장애인들은 알 수가 없다. 자치단체장이나 시·도의원 선거에서는 출마하는 사람들은 물론 뽑히는 사람도 모두 비장애인이다. '우리가 불편한 점을 그들이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글쎄. 누구나 피치 못할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나도 장애인이 될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비장애인도 언제든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얘기하고 싶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나 공약도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장애인에 대한 배려, 지금부터 시작하라

a "비장애인도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나 공약도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서홍식(25)]

"비장애인도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나 공약도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서홍식(25)] ⓒ 양산시민신문

오성규 "우리나라에 장애인 복지라는 게 있나. 매달 얼마 안 되는 돈이 장애인수당이라는 명목으로 나오지만 기초생활대상자에게만 나온다. 나도 중증장애인이지만 10원 한 푼 받은 게 없다. 일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 강좌에 나오는 것이 전부다.

사람에게 일이 없다는 게 어떤 것인가. 사람들을 제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게 어떤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란 말인가. 그래도 우리는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오는 편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박영하 "외출하려고 해도 너무 힘들다. 길을 나서 봐라. 턱없는 길이 거의 없다. 예전에 비해 일반인들의 시선은 좋아졌지만, 그들이 우리를 도우려고 해도 턱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도 난감하고 도움을 받는 나 역시도 미안해진다.

a "조금만 눈높이를 바꾸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박영하(25)]

"조금만 눈높이를 바꾸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박영하(25)] ⓒ 양산시민신문

연말에 남는 예산 써서 없앤다고 멀쩡한 길 파헤치지 말고 턱이나 좀 없애라. 조금만 눈높이를 바꾸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김병태 "신설된 보건소 시설이 좋다고 들었다. 우리 같은 척추장애인은 물리치료를 정기적으로 받는 게 좋다. 하지만 막상 받으러 가면, 거동을 못하는 사람을 침대에 눕히기 위해 물리치료사 외에 한 명의 도우미가 더 필요하다. 그런데 도우미가 없다. 이용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도우미가 없으니 가기가 꺼려진다."

오성규 "장애인의 날 행사를 보면서 참 형식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차라리 우리끼리 모여 손뼉치고 노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마치 들러리가 된다는 느낌 밖에 받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바란다

김병태 "앞으로 뽑히게 될 시장이나 의원들에게 장애인들을 위한 공약을 내걸어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a “선거가 끝난 후에도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관심을 가지고 신경 써 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김귀원(35)]

“선거가 끝난 후에도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관심을 가지고 신경 써 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김귀원(35)] ⓒ 양산시민신문

하지만 한 가지, 우리가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은 하고 싶다. 하다못해 가까운 곳에 동네 공원이 생기면 거기 나가서 바람을 쐴 수 있을 것이다. 동네 주변이라 주민들이 나올 거고 계속 만나다 보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자연스럽게 사라져 친근해지지 않을까 싶다."

박영하 "혹시 장애인을 위한 공약을 내거는 사람이 있다면, 투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턱이라도 없애 준다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그를 지지하게 될 것 같다. 그만큼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전무후무했다는 것이다."

김귀원 "이번부터 의원들은 의정비도 받게 되었으니 자질을 갖춘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 시민을 위해 열심히 잘한다면야 그 돈이 뭐가 아깝겠는가.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반신반의 상태다. 그 돈을 받을 만한 자격이 되는 의원이 얼마나 될지."

서홍식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겠지만 돈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당선되어야 한다. 그게 다 우리가 낸 세금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양산시민신문 선거보도팀

덧붙이는 글 양산시민신문 선거보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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