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누드, 문제 있나요?"

[활동가와 차한잔 ⑪] '문화지대 장애인이 나설 때' 박지주 대표

등록 2006.08.10 20:55수정 2006.08.1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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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살 박지주. 그에게는 남편과 8개월 된 아들 늘찬이가 있다. 그리고 그는 장애인이다.


a '문화지대 장애인이 나설 때'의 박지주 대표.

'문화지대 장애인이 나설 때'의 박지주 대표. ⓒ 김솔지

초등학교 때 앓은 척수결핵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지체장애1급 장애인 박지주씨는 스물일곱에 고향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 올라왔다. 장애 때문에 중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그는 스물네살부터 검정고시를 준비, 독학으로 중고등 과정을 마쳤고 마침내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바다 너머 육지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모교인 숭실대가 장애인 편의시설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며 2001년 대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리고 "학교 측은 박씨에게 25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물론 이 판결로 대학이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장애인도 대학사회의 일원임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전 박지주씨는 또 한 번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바로 지체1급 장애인 이선희씨의 누드를 기획한 것 때문. 여성 연예인들이 앞다퉈 누드를 촬영하던 때라 장애인과 성을 상업화 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난 4일 박지주씨를 만났을 때도 2년 전 그 이야기를 제일 먼저 꺼낼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 누드가 왜? 우리에게도 욕구가 있어요

- 섹스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꺼내기 어렵고 민망한 주제인데 어떻게 해서 이선희씨와 장애인 누드를 찍게 됐나요?
"원래는요... 선희씨 어머니가요 선희씨의 아픔과 고통을 보여주기 위해 누드를 찍자고 하셨어요. 이렇게 휠체어에 앉아서 꾸며진 모습 말고요, 이면에 깔려 있는 상처, 고통 그리고 해방을 보여 주려고요. 그리고 장애인의 아픔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그 어떤 욕구가 있다는 걸 제대로 표현하자고 한 거죠.


장애인 결혼식이나 행사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를 하는 분이 자원하셔서 선희씨의 동의 하에 찍었지요. 사진 찍어주신 분의 부인도 장애인이셨고요.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3시간 동안 아주 고생하면서 찍은 거랍니다. 그 누드는 장애인의 성에 대해 말하는 '장애인 성 향유를 위한 성 아카데미'의 포스터이기도 했어요."

- 아픔을 표현하려 했다는 건 이해되지만 성 향유 아카데미 자체가 일반적으로 담론화하기 힘든 주제라는 생각은 여전히 듭니다.
"아니, 섹스가 뭐예요? 여자에게는요, 섹스는 설거지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단지 욕구를 해소하거나 아이를 갖기 위해서 하는 행위를 가지고 섹스라고 하면 안 되지요. '교감'이지요. '오늘 네가 좀 힘들었구나'하면서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거나 안아 주는 것, 그리고 저녁에 과일 깎아 먹으면서 알콩달콩 이야기하는 거요.


그것부터가 섹스의 시작 아닌가요? 결국은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다'는 거죠. 이건 장때에 실리는 만화의 주제와 비슷한 맥락이에요. 나도 선거하고 싶다, 나도 연애하고 싶다, 나도 쇼핑하고 싶다... 그만큼 못하는 것들, 관심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이죠."

a 박지주씨의 또 하나의 기쁨은 8개월 난 아들 늘찬이. 한 인터뷰에서 지주씨는 임신했을 때 잘 생각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무척 서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지주씨의 또 하나의 기쁨은 8개월 난 아들 늘찬이. 한 인터뷰에서 지주씨는 임신했을 때 잘 생각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무척 서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김솔지

- 여성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오아시스>라는 영화, 좋아하세요?
"저 그거 할 말 많아요. 어떻게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나요? 그리고 여자 주인공 공주는 자기 주체성 없이 수동적으로 행동하잖아요. 우리 여성 장애인들도요, 주체성이 있고 생각이 있다고요."

- 한국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정도인가요?
"지금 한국에 등록된 장애인은 160만명이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나라의 장애인 수를 인구의 10%로 보고 있어요. 그럼 대략 한국의 장애인은 500만 명을 향해 간다고 볼 수 있죠. 잘 안 보이죠? 주변에... 그래요, 그만큼 많은 장애인들이 집 내지 재활원에서만 지낸다는 얘기죠."

- 다른 얘기지만 저도 상처 받았어요. 너무 딱딱하게 '인터뷰는 30분만'한다고 하셔서 말이죠.
"껄껄. 상처받지 마세요. 제가 마음이 아프잖아요. 다른 게 아니라 인터뷰마다 전 항상 같은 소리를 하는데 언론에서는 원하는 방향으로만, 자극적으로 쓰려고 하니까 별로 맘이 내키지 않았던 거죠. 제가 지향하는 바는요, 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운동을 좀더 문화적으로 해보자, 이거거든요. 그래서 만화를 시작했고, 칼럼도 마찬가지죠. 이런 활동을 널리 알리려고 인터뷰를 하지만 결국 제 기사의 대부분은 누드, 섹스만 집중 조명한 내용이에요."

"장애인의 일상다반사, 만화로 그려요"

a 장때에 연재되고 있는 <대한민국 장애여성 이야기(대장성)>의 14화 '나는 39살에야 결혼했다' 1부(3).

장때에 연재되고 있는 <대한민국 장애여성 이야기(대장성)>의 14화 '나는 39살에야 결혼했다' 1부(3). ⓒ 장때

지금 그는 '문화지대 장애인이 나설 때(이하 장때)'라는 문화단체를 꾸려 활동하고 있다.

아직 장때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를 홈페이지(http://www.jangddae.org)에 연재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는 상태다. 무성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여성 장애인들, 장애를 대하는 비장애인들의 잘못된 태도 등 장애인들이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차별들이 만화의 소재다.

가까운 미래에 장때는 장애인단체를 방문해 장애인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주거나 노래나 연극, 춤 등 각종 문화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오는 15일부터 29일까지는 제주에서 시작해 광주, 부산, 대구, 대전, 천안을 거쳐 서울에 닿는 '장애여성 전국순례 인권선언 대장정'도 추진하고 있다.

-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장때 만화는 계속 나가고 있고요. 캐리커처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복지관이나 장애인 시설에 가서 그분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거지요. 왜 하필이면 캐리커처냐고요? 캐리커처에서 나오는 순간적인 이미지를 통해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게 끌어내려고요."

- 장때를 꾸려 나가면서 힘든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일단은 재정상의 문제가 많죠. 여러 가지 기금을 통해 후원 받는 것도 있지만요,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빚을 내서 진행하고 있어요. 힘들죠. 그런데 제가 성격이 원래 그래요. 남들이 꺼려하는 일이라도 소신이 있으면 일단 밀어붙이고 보지요.

그리고 장때 만화를 그리시는 만화가님들이 비장애인들이시거든요. 시각 차이랄까? 이해는 하지만 완전히 장애인의 입장에서 그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죠. 그래서 자주 워크숍도 하고 대화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의견 좁히는 데 수개월 걸렸지요."

"먼지도 생김새가 달라요"... 장애·비장애도 마찬가지

- 장애 때문에 지치거나 화날 때 있지 않나요?
"지금도 욕창이 생길까봐 특수 제작된 방석에 앉아요. 그래도 나쁘지 않아요. 결핵 때문에 장애인이 되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데 그게 장애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됐죠. 그래서 갑작스레 장애인이 된 사람보다는 편해요. 또 어릴 적에 집안 사정 때문에 몸이 불편해도 고물을 주우러 다니기도 했는데 그 덕에 지금은 쓸 만한 물건을 잘 발견하게 됐죠. 유모차나 어항, 심지어 가구 중 일부도 그렇게 마련한 거예요."

- 참 긍정적이세요.
"삶의 내용은요, 선택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에 안주하거나 집착을 보여서는 안 되지요. 있잖아요, 사람이 아주 바닥으로 끝까지 추락하면 말이죠, 남은 길은 올라가는 것뿐이에요. 느리더라도 이루고 싶은 일이 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다운 거예요.

조금밖에라도 가진 게 없다면 그 조금이라도 가진 것에 행복해야 해요. 쓸 데 없이 투덜거려서는 안 돼요. 그냥 지금의 자기 존재를 사랑해야 하지요. 너는 지금 현실에서 무얼 해야 행복하니? 난 이렇게 해야 마음이 행복해. 그러면 그 꿈을 향해 가는 거예요. 꿈이 있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바로 이거죠."

수북이 쌓여 있는 먼지조차도 생김새가 다르다고 말하는 박지주씨의 목표는 하나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 이야기를 사회를 향해서 한 방향으로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눅조차 익숙해져 얼굴에 어둠이 깔린 장애인들에게도 같이 하자고 말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장애인이 나설 때'임을 박지주씨는 알고 있다.

a 박지주씨의 발. 그녀의 발은 땅을 디디고 설 수 없지만 그녀의 정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 세상 앞에 당당하다.

박지주씨의 발. 그녀의 발은 땅을 디디고 설 수 없지만 그녀의 정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 세상 앞에 당당하다. ⓒ 김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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