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옹'과 함께 '3개국어' 수업을...

[자전거여행 현장보고-중국편 23] 8월 13일 구이양-쿤밍 10일차

등록 2006.08.20 16:04수정 2006.08.2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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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프랑스와가 먼저 '영어강의'를 시작

프랑스와가 먼저 '영어강의'를 시작 ⓒ 박정규

어제 만난 프랑스인 친구 프랑스와, 에릭과 함께 영어 선생님이 일하는 판센시 화샤중학교에 가서 얼결에 '일일교사'가 됐다. 프랑스어와 영어, 한국어가 뒤섞인 퓨전 외국어 수업.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부른 '오나라 오나라'에 반한 걸까?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의 '사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이마에 땀을 흘려가면서 사인을 하는 사이에 프랑스와는 다른 교실로 가 버리고 난 아직 20여 명이 더 기다리고 있다. 중국 학생들에게는 키 큰 프랑스 친구들보다는 같은 눈높이의 '한국인'이 더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2시간은 함께 수업, 1시간 참관, 2시간은 '콩글리시+한국어+중국어'를 뒤섞은 혼자 연강. 생각보다 좀 힘들었지만 굉장히 유쾌하고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하나 만들어서 굉장히 기뻤다.


a 선생님들. 맨 오른쪽부터 판센 화샤 중학교 영어선생님(즈보), 필자, 프랑스와, 에릭(키가 192cm). 영어선생님이 우리에게 숙식 제공 및 1일 외국어 강사의 기회를 주셨다.

선생님들. 맨 오른쪽부터 판센 화샤 중학교 영어선생님(즈보), 필자, 프랑스와, 에릭(키가 192cm). 영어선생님이 우리에게 숙식 제공 및 1일 외국어 강사의 기회를 주셨다. ⓒ 박정규


2006년 8월 13일 일요일. 구이양–쿤밍 10일차 / 맑음

06시 30분 기상.

영어 선생님이 함께 아침 먹은 후 학교로 가자고 하신다. 아침으로 무얼 먹기를 원하냐? 난 아무거나 상관없다. '에릭(키 192cm)'도 마찬가지. 하지만 '프랑스와('레옹' 주인공 장 르노 닮은 친구)는 '쿠키, 커피'를 원한다며, 작은 커피 팩을 흔들어 보인다. 일단 식당으로.

a 프랑스와(장 르노 닮은 친구)의 아침

프랑스와(장 르노 닮은 친구)의 아침 ⓒ 박정규

a 매운 걸 먹으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매운 걸 먹으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 박정규

우리는 중국식 면을 시켜서 먹고, '프랑스와'는 준비해 온 커피와 비스킷으로 아침을. 우리가 사진 찍으면서 천천히 식사를 하니까 '수업시간'이 다 되었다고 재촉하신다.


많은 계단을 올라가 드디어 교실 앞 도착. 조금 긴장된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모두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으로 반겨준다. 선생님이 프랑스와와 나에게 '영어수업'을 부탁하면서 에릭과 다른 교실로 가버렸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50분간 수업을 하라니…

다행히 프랑스와가 먼저 강단으로 올라가 자연스럽게 강의를 시작. 먼저 자신의 이름과 여행경로를 소개한 후 나도 지도를 그리며 여행을 소개한 후 강단 한쪽 편에서 프랑스와의 강의를 지켜보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제안하자, 바로 '3개 국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또 만나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등을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로 가르쳐 주자 다들 아주 즐거워한다. 이어서 질문시간. 한 학생이 '영어'로 질문을 하다가 말문이 막혀버렸는데, 한참 웃다가 다시 질문을 했다. 아마 배우는 즐거움 때문에 웃었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a 필자가 제의해서 3개 국어(프랑스, 영어, 한국어)로 수업을

필자가 제의해서 3개 국어(프랑스, 영어, 한국어)로 수업을 ⓒ 박정규

한 여학생은 아주 유창한 영어로 질문을 했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때문인지 많은 학생들이 질문을 했다. 질문 내용 중 일부, "왜 중국을 좋아하냐? 당신의 꿈은? 영어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나?" 등.

프랑스와: "중국은 프랑스와 아주 다르다. 다양한 문화, 아름다운 자연, 독특한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 좋은 아내를 만나 귀여운 아이와 행복하게 사는 것, 중국 여자와 결혼하길 원한다."(웃음)

"많은 영어 DVD, 영화, 노래 등을 자주 접하면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학생들인가 보다. 갑자기 노래요청을 한다. 먼저 프랑스와가 '프랑스 노래'를 하고, 뒤이어 나에게도 '한국노래'를 요청. 노래를 하려고 강단으로 올라가서 심호흡 한 번 하자, 학생들이 박수로 격려를 해준다.

a 아주 즐거워하면서 질문을 하는 학생

아주 즐거워하면서 질문을 하는 학생 ⓒ 박정규

노래를 시작하려는 순간, 교실 문이 열리면서 에릭과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문밖에는 다른 교실의 학생들이 복도를 가득 메운 채 우릴 구경하고 있다. 문 앞에서 '프랑스 친구들'과 '선생님'이 뭔가를 상의하고 있고, 난 강단 위에서 대기 중. '딩동' 벌써 50분이 지나 버렸다. 이번 시간은 모두 함께 수업하기로.

프랑스와가 에릭 소개를 한 후, 아주 키가 크다고 했다. 1m92cm라고 하자, 다들 놀란다. 내가 옆에 가서 같이 선 후 어깨까지 밖에 안 된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낙담하는 표정을(웃으면서) 지으며 돌아오자, 다들 웃는다.

프랑스와가 학생들 출신지 조사를 시작했다. 그 시간이 끝나자 학생들이 다시 '한국노래'를 요청한다. 기억력도 뛰어나다. 다시 강단으로 올라가 먼저 '오 나라~ 오 나라~(대장금)'를 한 소절 부르자 다들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거기까지 밖에 모른다고, 양해를 구한 후 내가 좋아하는, 가사를 끝까지 아는 것 중 하나인, 윤도현 밴드의 '너를 보내고' 시작. 중간 고음처리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노래가 끝난 후 다들 환호성을.

선생님에게도 노래를 권하자, 안 부르실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시작. 부끄러워 하시면서 짧게 마무리 하셨다. 이어서 에릭과의 질문시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딩동.'

a 유창한 영어발음으로 질문을 하는 학생

유창한 영어발음으로 질문을 하는 학생 ⓒ 박정규

다른 반 선생님이 오셔서 프랑스와와 날 데려가려 하자, 일제히 "NO~", 곧이어 많은 학생들이 메모지를 가지고 우리를 둘러싼 채 '사인 요청.' 영어교과서, 공책, 메모지, 영어사전 등 정말 다양한 곳에 '사인'을 했다.

이마에 땀을 흘려가면서, 사인을 하는 사이에 '딩동' 주위를 둘러 봤는데, 아직 20여 명이 더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와는 선생님과 이미 다른 교실로 가버린 상태. 중국 학생들에게는 키 큰 프랑스 친구들 보다는 같은 눈높이의 '한국인'이 더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팔이 조금 저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프랑스와가 간 교실을 찾아가려다가 찾지 못해 다시 그 교실로 가서 빈 자리에 앉아서, 에릭의 수업을 참관. 다시 '딩동', 선생님이 이번에는 한 사람 당 한 교실에 '수업'을 해달라고 한다.

혼자서 '영어수업' 을 하라니… 조금 긴장이 되어 남학생과 먼저 화장실로 갔는데, 잠깐 놀랐다. 20명의 학생들이 "개방형 화장실(칸막이가 없다)"에 일렬로 앉아서 오른손에는 '흰색 종이'를 든 채, 중요한 일을 보고 있었다. 다들 이야기 하며, 웃으면서. 아주 유쾌해 보였다. 그들 덕분에 긴장이 풀렸고, 교실로 출발.

교실 도착. 마침 쉬는 시간이라, 약간의 준비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50분간 수업을 한다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 "콩글리시+한국어+중국어" 수업을 나만의 방식으로 하기로.

'딩동' 수업 시작! 조금 떨리지만 즐거운 흥분 감이 느껴진다. ^^

먼저 학생에게 '중국지도'를 그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많은 학생들이 칠판의 3분의 1도 채우지 않는다.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건가? 그냥 내가 그리기로. 칠판의 반을 채워서 지도를 그리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중국지도에 내가 여행한 경로를 표시하고, 칠판 왼쪽에는 '중국이름, 영어이름, 한국이름'을 적고, 오른쪽에는 세계지도를 그려서 나의 여행계획을 설명 후 '나만의 수업 시작.'

수업방식, 가르치고자 하는 '한국어'를 먼저 '영어, 중국어'로 발음한 후, '한국어 표기와 발음'을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였고, 내가 중국 여행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중국 어'를 '한국어에 적용'한 내용들로 주로 구성.

'이름이 무엇입니까?'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세요' '어디 있습니까?' '얼마입니까?' '아빠' '엄마' '누나' '형' '동생' 등 기본적인 것들과 별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다른 학생과의 '행동' 등을 통해 보여주었더니, 반응이 뜨겁다.

a 70명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70명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 박정규

예를 들어, 내가 가지고 있던 물병을 학생에게 준 뒤,

나: "물 한 병에 얼마입니까?"
학생: "10Y(원래 1Y인데, 설정한 가격임.)"
나: "와 아~ 비싸다! 깎아주세요(가장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았다). 저 돈 없어요."
학생: "5Y"
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선생님과 함께 "사랑합니다, 결혼해주세요"를 예제를 통해 보여주었다. 선생님의 반지를 미리 받은 후, 강단 앞에서, 선생님께 '사랑합니다'라고 말한 후, '결혼해 주세요'라고 말한 후 반지를 끼워 주었더니, 여학생들이 난리가 났다.

그리고 다시 한국노래를 요청받았고, '너를 보내고(윤도현 밴드)'를 부른 후 학생들에게 노래 부탁했지만, 나서는 이가 없다. 함께 불러도 상관없다고 하자 선생님과 잠시 상의를 하더니 노래 시작. 일제히 '교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재미있어, 내가 잠시 '지휘를' 하자 다들 더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난 후 '교가'가 아니냐고 물어보니, '국가'라고 한다. '딩동' 눈 깜짝할 사이에 50분이 지나 버렸다. 선생님이 50분 더 가능하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문제없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종이 치고 수업 시작. 이번에는 선생님이 나가 버리셨다. 이번에는 '질문시간'을 많이 가졌다. 기억에 남는 질문을 하나 소개하자면, "세계 여행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먼저 세계지도를 그렸다. 그 안에 작은 원을 두 개 그려 영어로 '한쪽에는 나쁜 사람, 한쪽에는 좋은 사람'이라고 적은 후…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더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내가 이 여행을 통해서 그걸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 이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또 다른 목적은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 후 그것들을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동기부여 책'을 만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책'을 'See–Feel–Action' 하기를 바란다."

첫 번째 목적은 쉽게 이해했는데, 동기부여 하는 부분에 대해서 학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상황극(내 책을 읽기 전에 3시간 공부하던 학생이, 책을 읽은 후 10시간 씩 공부하게 되었다)'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해하지 못한 채 다른 이야기를 좀 더 하다가 '딩동' 수업 끝.

2시간은 함께 수업, 1시간 참관, 2시간은 혼자 연강. 생각보다 조금 힘들었지만, 굉장히 유쾌하고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하나 만들어서 굉장히 기뻤다. 충분한 준비를 하고 '강의'를 한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영어선생님 댁에 가니, 이미 친구들이 와있다. 프랑스와가 날 보더니 '슈퍼스타'란다. 내가 아니라고 하자 '굉장히 많은 여학생들이 너한테 싸인 받길 원했다. 너한테 이메일이 적힌 쪽지를 준 여학생도 있었지만 난 한 명도 없었다'고 웃으면서, 부러워하는 투로 말한다.

다들 수업 때문에 많이 배가 고픈 상태라 일단 식당으로. 식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 프랑스와는 '프랑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경제, 잡지, 여성지)'이고, 에릭은 '프로그래머'란다. 항상 '캠코더' 촬영을 하길래 '영화'를 만들거냐고 묻자, '다큐멘터리'를 만들 거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질문하다가, 필름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질문 후 재촬영을 했던 거였구나.

식사 후, 다시 영어 선생님댁으로 이동. 짐 정리 후 'good luck'을 외치며, 다시 서로의 길로 출발. 그렇게 '길'에서 만나, '길'에서 헤어졌다.

a 길에서 만나 길에서 헤어졌다.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길에서 만나 길에서 헤어졌다. 행운이 함께 하기를... ⓒ 박정규

우리가 일일 교사의 경험을 가졌던 곳은, 구이저우 판센시 화샤 중학교. 학생 수 3000명, 교사 200명, 한 반 70명. 여름방학 7일, 겨울방학 1달. 많은 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영어 단어장을 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거의 매주 일요일에도 5시간씩 수업을 하고 있었다. 더 많은 선생님과 더 많은 교실이 필요해 보였다.

오늘은 인근 마을에서 일찍 휴식을 취하고, 즐거웠던 하루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일정을 점검하기로….

a 박정규 중국 자전거 종단 코스도

박정규 중국 자전거 종단 코스도 ⓒ 박정규



a 얼큰하고 시원하다.

얼큰하고 시원하다. ⓒ 박정규


4. 섭취 음식

1) 식사
아침: 중국식 면(우동 면 발에 고기 건더기): 얼큰, 시원
점심: 훠궈(중국식 샤브샤브):
저녁: 류료우미펀(국수와 고기 또는 야채를 배합하여 냄비에 넣고 아주 센 불 위에 얹어서 익힌 다음 냄비 채로 내는, 토속요리. 얼큰, 시원, 담백)

2) 간식
- 배 2개, 떡꼬치 1개

5. 신체상태: 다리 근육통 조금(강의한다고 3시간 가까이 서 있어서 그런 것임)

6. 도로분석: 판센 시 '홍커우, 화샤 중학교' 앞에서 시작해 '훠푸'까지는 약간의 내리막과 평지 도로 10km 가량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 박정규 기자 홈페이지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http://www.kyulang.net/)에서도 그동안 올린 생생한 자전거 여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정규 기자는 중국여행을 시작하면서, 현지에서 배운 중국어를 토대로 여행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글 중에 표기한 중국 지명이나 중국어 표현들이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박정규 기자 홈페이지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http://www.kyulang.net/)에서도 그동안 올린 생생한 자전거 여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정규 기자는 중국여행을 시작하면서, 현지에서 배운 중국어를 토대로 여행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글 중에 표기한 중국 지명이나 중국어 표현들이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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