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이 날뛰면 피하는 게 상책이죠

가을과 함께 찾아오는 손님, 말벌

등록 2006.09.30 17:37수정 2006.10.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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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가 마당 위를 낮게 날아다닙니다. 가을 햇살이 따갑게 쏟아져 내립니다. 여름내 위세를 떨치던 풀들도 윤기를 잃고 바스러져 갑니다. 모든 것들이 결실을 향해서 바쁘게 움직입니다.


바삐 움직이는 것들 중에는 벌도 있습니다. 봄을 지나 여름 내내 잘 안 보이던 벌들이 가을이 되면 자주 눈에 띕니다.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이 되면 벌이 눈에 잘 보입니다.

"벌이닷! 땡삐다, 땡삐!"

관리기 밑에 있던 말벌의 벌집입니다.
관리기 밑에 있던 말벌의 벌집입니다.이승숙
작년 추석에 시댁에 갔더니 벌초하다가 벌에 쏘인 이야기로 온통 화제였습니다. 집안사람들이 문중 산소를 벌초하러 갔다가 그만 땅벌 집을 건드리고 말았답니다. 한창 벌초하고 있는데 누가 다급하게 소리치더랍니다.

"벌이닷! 땡삐다, 땡삐!"

얼핏보니 노란 뭉치가 확 피어오르더랍니다. 다들 혼비백산해서 피했지만 미처 대피를 못한 사람들 몇이 벌한테 쏘여서 결국에는 병원까지 갔다 왔답니다.


경상도 말로 '땡삐'라고 부르는 '말벌'은 정말 독합니다. 한 방 쏘이면 쏘인 부위가 퉁퉁 붓고 가렵습니다. 벌을 타는 사람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까지 다녀오는 소동을 치렀나 봅니다.

추석날 아침에 차례 지내고 산소에 성묘하러 가서는 땡삐집 찾는다고 또 한바탕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땅 속에 있는 벌집이 눈에 쉽게 띄겠습니까. 그래서 벌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추적해서 벌집을 찾았습니다.


우리집 화장실 문에 자리잡은 벌들

우리 집은 오래된 시골집입니다. 흙과 나무로 지어진 집이라서 그런지 해마다 벌이 집을 짓습니다. 사랑채, 기와지붕 어딘가에 벌집이 있습니다. 추녀 끝머리 어딘가에도 벌집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바깥 화장실 섀시문 손잡이 구멍에도 벌집이 있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일입니다. 딸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일을 보고 있는데 바깥에 있던 아들아이가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누나, 나오지 마! 여기 벌 있다."

이 구멍마다 말벌이 살았겠죠?
이 구멍마다 말벌이 살았겠죠?이승숙
화장실 출입문 근처에 노란 벌들이 들락날락하는 게 보였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드나드는지 멀찍이 서서 가만 지켜봤더니 세상에나... 섀시문 손잡이 구멍으로 벌들이 들락거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화장실 안에서는 공포에 질린 딸아이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영준아, 벌 갔니? 벌 다 날아갔어?"
"누나, 가만 있어. 나오면 안 돼."

벌꿀을 딸 때 벌을 쫒기 위해서 연기를 쐬는 걸 보긴 했지만 그런 게 갑자기 집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살충제를 써서 벌들을 퇴치하기로 의견을 맞췄습니다. 아들아이가 그래도 남자라고 엄마랑 누나는 가만 있으라 그러면서 자기가 나섰습니다. 그리고 모기를 쫒기 위해서 구비해 놨던 살충제를 문손잡이 구멍에다 냅다 쏴주었습니다.

"야, 이 놈들아. 맛 좀 봐라. 여기가 어디라고 집을 지어?"

벌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좌충우돌했습니다. 구멍 안에 있던 놈들은 나오려고 허둥대다가 살충제의 공격으로 땅에 떨어졌고 밖에 있던 놈들도 좌충우돌하면서 설쳐댔습니다. 한동안 우리 집 마당에서는 서부 활극이 벌어졌습니다.

이제는 관리기 아래까지... 벌들과의 전쟁

올해라고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가을바람이 선들대자 다시 벌들이 보입니다. 꿀벌들이라면 무서울 게 없겠지만 말벌들은 무서운지라 벌이 보이면 집 안으로 도망가기 바쁩니다. 올해는 가만 보니 기와를 얹은 사랑채 지붕 어딘가에 벌집을 지었더군요. 그곳이라면 그래도 봐줄 만하니 그냥 두었습니다.

말벌집이 있는 관리기 밑을 향해 약을 분사하고 있습니다.
말벌집이 있는 관리기 밑을 향해 약을 분사하고 있습니다.이승숙
시골로 이사 와서 처음엔 멋모르고 텃밭 농사를 제법 많이 지었습니다. 그때 땅을 갈기 위해서 중고 관리기를 사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밭을 많이 줄였습니다. 그래서 관리기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대충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밭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관리기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농기구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아는 분이 관리기를 가지러 왔습니다. 그래서 창고에 있던 관리기를 트럭에 옮겨 실으려고 꺼낼 때였습니다. 관리기 밑에서 노란 뭉치가 확 피어오르는 것이었어요. 몸이 가늘고 유난스레 노란 빛이 나는 벌이 한 무리 날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엇, 벌이잖아!"
"큰일 났네. 에프킬라 없어요? 이거 안 없애면 관리기 못 움직여요."

에프킬라를 뿌리자 벌들이 한동안 왕왕대더니 나중엔 조용해지더군요. 땅바닥엔 노란 벌의 사체가 우두둑 떨어져 내렸고요. 벌한테는 안 됐지만 관리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어요.

덤비지 마세요, 피하는 게 상책

이 벌은 몸이 가늘고 길며 유난히 노란색을 띠었습니다. 무슨 벌일까요?
이 벌은 몸이 가늘고 길며 유난히 노란색을 띠었습니다. 무슨 벌일까요?이승숙
말벌의 세력은 그 해 여름에 비가 얼마나 왔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합니다. 장마가 길어서 일벌들이 집을 잘 짓지 못하면 새끼를 많이 번식시키지 못해서 말벌집도 작고 세력도 약합니다. 하지만 장마가 짧고 비가 적게 온 해에는 말벌들의 세력이 커진답니다.

말벌은 참나무와 밤나무의 수액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우리집 근처에는 아름드리 참나무가 여러 그루 있고 그리고 밤밭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집 근처엔 말벌들이 많이 있나 봅니다.

벌이 보이면 무조건 피하고 볼 일입니다. 긁어부스럼이라는 말처럼 벌집을 쑤셔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말벌처럼 독하게 달려드는 벌들은 그저 피하는 게 가장 상책입니다. 구설이 오를 일엔 애초부터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은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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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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