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야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 글쓰기

등록 2006.10.06 11:14수정 2006.10.0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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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에는 책이 흔치 않았다. 집에 있는 책이라고 해야 아이들 교과서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귀했다. 그래도 우리 집에는 다른 집에는 없는 책이 좀 있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할아버지를 위시해서 아버지, 그리고 장가 안 간 막내 삼촌까지 전부 다 책읽기를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돋보기 안경을 콧등에 얹고 호롱불 심지를 밝혀 책을 읽으셨다. 그 시절의 책들은 다 세로쓰기였는데 손가락으로 읽는 줄을 짚어가며 읽지 않으면 읽던 줄을 놓치기도 하였다.

밤마다 할아버지 책 읽으시는 소리가 방 밖으로 흘러 나왔다. 그 소리는 단조로웠지만 어찌 보면 가락을 붙여서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세로줄로 쓰여진 옛날 책입니다. 종이 질도 좋지않고 글자도 작아서 읽기에 불편합니다.
세로줄로 쓰여진 옛날 책입니다. 종이 질도 좋지않고 글자도 작아서 읽기에 불편합니다.이승숙
엄마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언니와 나를 보며 한 편으론 기분이 좋으면서도 또 한 편으론 걱정 아닌 걱정을 하셨다.

"가시나가 책 좋아하마 게을러서 살림 몬 산다."

엄마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 자매는 걸레질하고 방 치우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책을 좋아해서 그런 걸까 나는 글 쓰는 것도 좋아했다. 텔레비전 보는 것보다 책 보는 게 더 재미있고 책 보는 것보다 글 쓰는 게 더 재미있다. 그래서 내 하루의 많은 시간이 책 보는 것과 글 쓰는 것에 바쳐진다.

칠팔 년 전부터 나는 글을 썼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내 일상들을 썼다. 시골로 이사 오자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글이 술술 나왔다.


내가 쓴 글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의 북돋움이 없었다면 나는 글쓰기에 대한 매력을 그리 오래까지 가지지 못했을 것도 같다.

독서삼매경에 빠져버린 아이들입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버린 아이들입니다.이승숙
남편은 내 글을 아주 좋아했다. 내가 쓰는 글의 맨 처음 독자이기도 했던 남편은 항상 나를 북돋워 주었고 용기를 심어 주었다. 그 다음으로 내 글을 좋아했던 사람은 그 당시 중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내 외사촌 오라비였다. 우리 둘은 사촌 간이기도 했지만 중학교 동창생이라서 친구이기도 했다.

내 외사촌은 늘 나더러 그랬다.

“나중에 같이 중국을 두루두루 여행하고 책 한 권 내자. 너의 감성과 나의 중국 지식이 합쳐지면 아주 멋진 작품이 나올 거야.”

비록 꿈일지라도 그 생각을 하면 늘 기분이 좋았다. 중국통인 내 외사촌이 안내하는 여행이라면 보통의 관광여행과는 다를 것 같았고 또 그것이 나와 잘 맞을 것도 같았다. 그래서 내 글쓰기는 든든한 후원자들 덕분에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나아갔다.

그렇지만 내가 쓰는 글은 그냥 나 혼자만의 글이었지 남에게 보여줄 만한 글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고 전문가들만이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작가 성석제씨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의 책을 한 권 사서 봤는데 글이 너무 쉬웠고 읽기에 편했다. '아, 글이란 게 별로 어려운 게 아니네. 사소한 이런 거도 다 글감이 되네'란 생각이 들었다. 성석제씨가 주변의 소소한 일들을 가지고 쓴 글들을 보면서 나도 내 주변 이야기들을 이렇게 쓸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성석제 씨의 글은 읽기에 너무 쉽고 편해서 그냥 술술 나갑니다.
성석제 씨의 글은 읽기에 너무 쉽고 편해서 그냥 술술 나갑니다.이승숙
물론 성석제씨의 글을 낮게 평가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성석제씨를 높게 평가한다.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은 그렇다고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아는 것을 남이 알기 쉽도록 전할 수 있다는 거, 그게 바로 진짜 아는 거란 말도 있다. 그렇듯이 성석제씨처럼 쉽게 다가오도록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성석제씨의 소설과 잡문들을 읽으면서 나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전작주의자의 꿈>이란 책을 쓴 조희봉씨는 이윤기 선생의 글을 좋아해서 선생의 모든 글들을 다 읽었다고 한다. 전작주의란 어느 한 작가의 작품 전체를 읽어내는 것을 말한다. 그 작가가 쓴 모든 글들, 일테면 잡문까지 모두 다 읽어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전작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성석제씨의 작품은 되도록 다 구입해서 본다. 어떤 책은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두고 아무 때고 불쑥불쑥 빼서 보곤 한다.

'그래, 글이란 게 이런 거야.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게 글이야. 술술 읽히고 그냥 스며드는 게 좋은 글이야. 일부러 어렵게 비틀지 않고 누구나 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바로 좋은 글이야.'

올 봄 <오마이뉴스>를 만나면서 내 글쓰기는 또 한번 도약했다. 누군가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 전의 내 글쓰기가 혼자 하는 말이라면 지금의 내 글쓰기는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와 비슷하다.

좋은 글이란 바로 이런 글이다란 것을 가르쳐 주는 권정생 선생님의 자필 원고입니다.
좋은 글이란 바로 이런 글이다란 것을 가르쳐 주는 권정생 선생님의 자필 원고입니다.이승숙
모든 시민을 저널리스트로 만든 <오마이뉴스> 덕분에 나도 목표를 가진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남편은 지금 내가 쓰는 글쓰기 방식보다는 과거의 내 글쓰기 방식을 더 좋아한다. 예전 글들에서는 나만의 색깔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많이 희석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오마이뉴스>가 바라는 글을 나도 모르게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오마이뉴스>는 수필성 글보다는 시사성과 현장성이 가미된 글을 더 선호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나도 은연중에 그 쪽으로 나아가게 된 것 같다.

나는 애써 쓴 내 글이 '잉걸'로 남아도 별로 마음 상해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내 글이 <오마이뉴스>와 잘 맞지 않아서 잉걸로 남았겠지 생각하고 편하게 넘겨 버린다. 그냥 사라지는 글도 많은데 그래도 <오마이뉴스> 덕분에 글이 남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글을 쓴다.

돌이켜보니 나는 뭔가에 매료되면 폭 빨려들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3~4년 정도의 주기를 두고 어떤 것에 매료되었다가 싫증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글쓰기는 나와 함께 평생을 갈 동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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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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