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독학' 10개월, 캐논 변주곡도 거뜬

[친구처럼 피아노 사귀기 ①] 어렸을 때 '베토벤'이었던 친구들은...

등록 2006.10.24 16:39수정 2006.10.2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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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만국 공통의 언어요, 모든 예술은 음악을 동경한다는 말도 있는데, 나처럼 음악을 즐기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나에게 음악은 대개 잡음과 일치한다. 나는 히딩크 감독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멀티플레이가 되지 않아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한다(사실 이것때문에 내가 체격조건은 되는데 여자 축구 선수로 뛰지 않는 이유이다).


어쨌든 내가 시간 나면 하는 한 가지 일은 대개 독서다. 그리고 독서를 할 때 음악은 내게 집중을 막는 잡음일 뿐이다.

남편은 음악을 좋아해 집에 있을 때 오디오 스위치를 자주 켜는데 5분을 넘기지 않고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시끄러우니 꺼줘!"

악보 보기를 콩나물 시루자루 보듯 했던 나

상태가 이런 나이니 내가 연주하는 음악이란 생각도 해 본 일이 없다. 학교 다닐 때는 음악시험이면 실기건 이론이건 벌벌 떨었고, 친구들이 거의 다 잘 부는 리코더도 내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바로 아래 동생은 기타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고, 막내 동생은 아마추어 밴드에서 드럼을 하건만 내 눈에는 그런 동생들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는 작은 교회에서 찬송가 반주를 했는데, 내 눈에 그 친구는 여자 베토벤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 친구는 베토벤 소나타를 내 앞에서 쳤는데 '여자 베토벤'의 피아노 위에 펼쳐진 남자 베토벤이 작곡했다는 소나타 악보는 어지러운 채소가게의 빽빽한 콩나물 시루 그 자체였다.

이런 내가 지금은 피아노로 '캐논'도 치고,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도 연주하고, '오버 더 레인보우', '로망스''예스터데이' 등 치고 싶은 곡들을 아래층에서 올라올 때까지 칠 수 있다. 물론 반주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아르페지오도 가능하고, 왈츠반주도 오케이다.


그뿐인가? 곡에 맞게 변형반주도 한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는 현재 피아노를 배운지 10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책을 스승 삼아 혼자 배웠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물론 내가 연주하는 악보 중 치기 쉽게 편곡된 것도 있을 것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편곡된 것인지 원곡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렸을 때 '베토벤'이었던 친구들, 지금은?

그런데 이상한 일은 어려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던 내 친구들은 엄마가 된 지금 대부분 피아노를 못 친다. 내가 "너 어려서 배웠잖아" 하면 "그때가 언젠데, 피아노 안친 지 오래 돼서 악보 보는 법도 잊어버렸어", 이렇게 대답한다. 아직까지 악보 보는 법을 잊지 않은 친구는 "그때만큼은 못치지"한다.

시간이 흘렀는데 발전은 못할망정 퇴보하는 이 상황. 내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사태를 우리집 근처에 사는 한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 왈, "음악시험을 안 본 지 오래 됐잖아."

아하!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던 친구들이 피아노를 즐기기 위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 음악시험을 위해 피아노를 배웠구나. 그래서 음악시험을 안 보게 되면서 악보도 더 이상 볼 일이 없어지고, 급기야 잊게 된 것이로구나. 하기야 무인도에서 혼자 살면 말도 잊어버린다고 축구공인가 농구공인가를 상대로 말을 하던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피아노를 나 자신을 스승이자 제자 삼아 가르치는 겸 배워보니 피아노는 재미있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던데, 이런 피아노를 왜 친구들은 멀리 하게 되었을까?

내 머리로는 궁금증을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또 다시 우리집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친구 왈, "피아노 배우고 싶어서 배웠나? 엄마가 배우라니까 배웠고, 그만 배우라고 해서 그만 뒀지."

그렇지! 우리나라 아이들이 피아노를 접하는 과정이 그렇지. 일단 일정한 나이가 되면 (대개 7세 정도) 엄마가 손을 잡고 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데리고 가서 등록을 하고 피아노 가방을 받아 온다. 아이는 피아노 가방에 책을 넣고 피아노 학원을 왔다갔다 한다. 그러다 고학년이 되면 피아노 가방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내 주변의 아이들을 보건대, 아이들은 피아노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처음 접하고, 결국엔 미완의 과제로 그만두게 된다.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로 피아노를 만나게 되면 피아노를 즐기기가 어렵게 된다. 피아노가 '내겐 너무 어려운 당신'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스스로 즐기며 터득하는 피아노

이제부터 내가 왜 피아노를 배우기로 결심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배웠는지를 상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어렸을 때 피아노를 사고,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교육을 위해 산 피아노를 중고로 팔아 버리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어떻게 배우는 것이 정도인가? 나는 아직도 이 의문에 바른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나이 35세가 넘어서 나홀로 책을 스승삼아 배운 피아노를 밑천으로 나는 이 의문에 내 식대로 한 가지 답을 하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에도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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