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독학으로 배우기 2

등록 2006.10.29 12:46수정 2006.10.29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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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피아노를 알게 해준 낡은 피아노
나에게 피아노를 알게 해준 낡은 피아노이선희
내가 피아노를 작년 12월에 집으로 들이게 된 것은 딸과 배려 깊은 이웃 덕분이다. 딸이 학교에 입학할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딸 또래 아이들의 어머니들처럼 딸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려 했다.


당시에는 나도 딸이 왜 피아노를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악기 하나 배워서 나쁠 것 없고, 다들 7세 전후로 피아노를 시작하니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주변의 친절한 이웃들이 '딸 피아노는 어디 학원에서 시켜라, 개인 레슨 시키려면 내가 선생님도 소개해 주겠다. 그 선생님이 진도도 빠르더라' 등등 나에게 당연히 딸이 피아노를 배워야한다는 것을 기정 사실로 만들어 주입해 주고 있었다. 나 역시 친절한 이웃이 되어 주변에 내가 주입받은 바를 주입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딸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피아노 학원에 보내든지, 레슨을 받게 하든지 해야 겠다고 맘속으로 생각하던 차에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앞동에 사시는 분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분은 이삿짐 목록에 있던 10년이 훨씬 넘은 피아노를 내게 헐값에 주고 가셨다.

앞동의 이웃이 이사를 가던 날, 딸 방을 떡 하니 차지한 커다란 피아노를 뿌듯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때마침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일층에 사시는 분은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한다.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돈에 피아노를 장만한 것에 고무 되어 딸에게 일층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아니 솔직하게 피아노를 배우라고 권했다.


그러나 딸의 대답은 뜻밖에도 "싫어요"였다. 피아노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피아노를 부러워하던 아이였다. 그래서 일층에서 배우기 싫다는 말인 줄 알고 우리 라인 십 몇층에도 레슨을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도 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친구들과 학원에 가고 싶어하나 하는 생각에 '주변 상가에 있는 학원에 보내주랴'하고 말해 보았다. 그래도 딸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아이들은 피아노 배우기를 좋아한다던데.


나는 딸에게 싫다는 것을 강제로 시킨 일은 아직까지 거의 없다. 특히 돈 들이는 일은 딸이 싫다고 하면 절대로 안 한다. 그래서 딸 피아노 레슨을 포기하고 한동안 피아노를 바라만 보았다. 딸을 위하여 장만한 피아노인데 딸이 피아노 배우기를 거부하니 피아노가 무용지물로 변해버린 순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그래도 돈 들인 피아노인데 나라도 배워봐!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그때 바로 옆에서 그때만 해도 20개월이 채 안된 둘째가 사랑스러운(?)표정으로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어린 아이를 두고 어떻게 집에서 레슨을 받을 건가? 학원은 또 무슨 재주로 다닐 것인가?

집에서 레슨 받다 둘째가 울며 나에게 엉겨 붙으면 어쩌나? 학원 갔는데 기저귀에 응가를 하면 어쩌나? 울지도 않고, 응가도 안 한다 해도 피아노 앞에 앉은 나를 20개월도 안된 아이가 그냥 두고 볼 것인가? 아들이 만약 피아노 앞에 앉은 나의 우아한 모습에 반해 봐준다면 몇 분이나 반할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자 나는 곧 피아노 배우기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아니 지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집이 그렇게 넓지는 않은지라 책을 읽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딸 방을 정리해주다가도 피아노는 내 눈에 계속 들어왔다. '그래 이렇게 놔두면 뭐하냐? 나라도 배우자. 단, 다른 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둘째로 인해 불가능하니 나 홀로 배우자' 하는 지금 생각하면 충격적일 정도로 경이적인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친하게 지냈던 딸의 친구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그이는 부전공이 피아노다.

"나 피아노 혼자 배우려고."
"피아노는 독학이 안 될 걸, 치는 소리를 누가 들어줘야지."

이 대답을 듣자 갑자기 강렬히 피아노를 혼자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반골기질이 불끈 일어선 것이다.

그래서 일단 인터넷 서점을 통해 남들이 다들 피아노를 배울 때 교재로 사용한다는 바이엘이라는 상하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는 유서 깊은 책을 샀다. 이 책은 내가 얼마 전에 본 <호로비츠를 위하여>라는 영화에도 피아노 입문서로 나온다. 며칠 후 바이엘 책을 내 손에 들었을 때 나는 기가 막혔다. 일단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있었던 그 모양 그대로의 고색창연한 책의 모습도 그러했지만 내용은 더욱 기가 막혔다.

'이건 암호로구나!'

사실 나도 학교를 나름대로 정상적으로 다녀서 음표나 쉼표, 박자, 자리표 등 악보에 있는 기본적인 것들은 안다. 그런데도 책을 손에 들고 펼쳐 본 순간 이 책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책을 사기로 했다. '나같이 평균적인(?) 사람이 당기지 않는 책은 나 홀로 교재로 적당하지 않아' 대충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음악에 관한 한 평균엔 한참 못 미칠 것이다. 그래도 자신에게 세뇌를 했다. 나는 평균이야. 아니 평균일거야.

다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글자가 많은, 즉 설명이 자세한 책을 구입했다. 그런데 글자가 많은 책이긴 해도 하도 음악시험 안본 지가 오래 되서 그런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 앞부분에 나오는 리듬치기가 뭔지 아주 기본적인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수없이 했던 박자 맞춰 박수치기였다. 아~ 중요한 언어의 사회성이여. 내가 대한민국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긴 한 건지.

나는 절망을 해가면서 아는 말이 나올 때까지 책을 넘기고 넘겨서 아는 말이 나오는 곳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펼친 곳에 나오는 말은 피아노 건반 이름이었다. '도레미파솔파시도' 읽으면서 스스로 위로했다. 시작은 이미 반이야!

덧붙이는 글 | 제 네이버 블로그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네이버 블로그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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