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기고 허름한 꽃병에 쓰여진 아버지의 사랑.김혜원
“이참에 다 버리자. 두 집이 한 집으로 합치려면 물건을 줄여야 해. 꼭 필요하지 않은 건 과감히 버리라구. 이거 봐라. 여기도 한 짐이다. 꽃병이랑 그릇들인데 사용하지 않으면 누굴 주지 왜 끌어안고 있나?”
“그래 버리자구. 당신이 내 놔. 내 놓으면 누군가 가져가더라구. 깨진 건 없으니까 누가 가져다 쓰겠지 뭐.”
못 쓰거나 안 쓰는 소형가전제품이 한 박스, 안 입는 옷들이 두 박스, 그리고 안 쓰는 그릇과 이런저런 소품들이 또 한 박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사를 다닐 때마다 구석 구석 끼워 두었던 묵은 짐들을 버리고 오는데도 여전히 버릴 것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버릴 물건과 그렇치 않은 물건을 구분하느라 온통 뒤집어쓴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찜질방을 다녀오는 길. 우리가 내다 버린 물건이 가득했던 쓰레기장으로 눈길이 갑니다. 어느새 누군가 우리가 내다 놓은 물건 중에 필요한 물건을 골라 가져간 듯 아까와는 달리 주변이 썰렁해져 있습니다.
“벌써 다 가져갔네. 빠르다.”
“거봐 버리기 전에 누굴 주었더라면 더 좋았잖아. 그럼 고맙다는 소리나 듣지.”
@BRI@남편과 이야기를 하며 남아 있는 물건이 뭐가 있나 궁금해 쓰레기장을 들여다보니 플라스틱 그릇 몇 개와 못 생겨 보이는 꽃병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저 꽃병도 우리집에서 나온 거야? 저런 것도 있었나?”
“당신이 신문지에 잘 쌓아 두었던데. 애들이 도예촌 견학 가서 만든 꽃병 아니야?”
“애들이 만든 거라고? 언제 저런 걸 만들었지?”
플라스틱 그릇들 속에 함부로 나뒹굴고 있는 허름한 꽃병. 꽃병에는 정말 삐뚤빼뚤 서툰 솜씨의 붓글씨가 써 있습니다.
‘우리 딸... 우리 딸?’
“여보, 저 꽃병 꺼내줘. 저거 버리면 안돼. 얼른.”
쓰레기 통 속의 꽃병을 바라보던 저는 잊었던 꽃병의 의미를 기억하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