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챙겨준 '화이트데이'

건강한 모습으로 옆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등록 2007.03.15 09:06수정 2007.03.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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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사들고 온 사탕봉지
남편이 사들고 온 사탕봉지정현순
"자 이거"하면서 남편이 포장도 하지 않은 사탕봉지 몇 개를 내놓는다.


"이거 사러 나갔었어?"
"이거면 됐지?"
"누가 사탕 사달랬나?"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싫지 않았다. 14일, 저녁을 먹은 후 난 남편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고 있었다. 그 시트콤에서 나문희 친구가 남편한테 받았다면서 예쁜 사탕바구니를 들고 그 집에 놀러왔다. 나문희는 그런 친구를 내심 부러워 했다.

등이 가렵다고 해도 긁어주지도 않고 문고리에 대고 긁으라고 하는 무심한 남편 이순재다. 거기에 밖에서 돌아 온 남편은 쇼핑가방을 내놓으면서 풀러 보라고 한다. 은근히 기대를 걸고 풀러 본 가방 안에는 양말 등 빨래거리만 가득이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아들(정준하)은 며느리(박해미)한테 사탕을 주어야 한다면서 뛰어나간다.

나문희가 계속 툴툴거리자 이순재는 "뭐야 사탕사 줘?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거 챙기고 살았다고"한다. 그 장면에서 난 "그렇게 물어보지 말고 그냥 사다주면 돼지"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한 그 말을 남편은 나름대로 새겨들었나 보다. 이순재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가 사탕으로 욕조를 가득 채우고 분위기 있게 화려한 촛불로 장식했다. 나문희는 그것을 보자 "너무 행복하다"하면서 사탕 속으로 뛰어든다.


남편은 그 장면을 보더니 "저 많은 사탕대신 돈으로 주었으면 더 좋아했겠다"하더니 밖으로 슬며시 나간 것이다. 난 담배를 피러 나간 줄 알았다. 잠시 후 들어 온 남편 손에는 사탕 다섯 봉지가 들려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멋쩍은지 봉지를 벗기더니 사탕을 모두 꺼내어 놓는다. 그러더니 "이거 고급사탕이야. 한번 먹어 봐"하면서 사탕 껍질을 벗기고 하나를 내입에 쏘옥 넣어준다. 생각지도 않던 선물이라 기분은 정말 좋았다. 그리고 남편은 말했다.


"바로 마트 앞에서 아이들이 사탕을 파는데 그게 팔리나? 한번씩 쳐다보더니 가격이 비싸니깐 마트로 다 들어가더라."
"응. 아이들이 이 밤중에 사탕을 팔아? 드라마가 아주 없는 일을 꾸민 것이 아니라니깐." 그날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민호와 친구들이 사탕을 파는 장면이 나왔던 것이다.

풀어 놓은 사탕
풀어 놓은 사탕정현순
드라마의 힘이 크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사탕이 아니면 어떠리. 그 나이에 마누라 주려고 한밤중에 사탕을 사온 그 마음이 더 고마울 뿐이다. 지금보다 젊었을 땐 누구네 남편이 뭐 해줬다는 말만 들어도 부러웠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남편에게 말을 흘리고 기대도 했었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으면 괜스레 짜증과 신경질을 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 옆에 건강하게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맙다. 남편이 사온 고급 중에 고급 사탕(?), 며칠 동안은 사탕보다 더 달콤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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