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해변식당의 장어구이맛객
지난 2월 25일, 그간 음식기행을 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음식을 접했다. 여수에서 만난 지인을 따라 간 곳은 동네 치킨 집. 어느 동네에나 하나씩 자리 잡고 있는 평범한 치킨 집에서 바비큐치킨과 500cc 생맥주로 여수에서의 밤을 보냈던 것이다. 여수까지 와서 말이다.
맛객 체면이 있지. 명색이 음식기행인데 바비큐치킨과 맥주는 아니다 싶어 배낭에서 물김을 꺼냈다. 완도 시장에서 사온 김이다. 초고추장에 새콤하게 무쳐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무심한 말투로 고추장도 식초도 없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바비큐가 더욱 맛이 없어진다.
그렇게 밤은 지나고, 전날의 악몽도 달랠 겸 어시장으로 향했다. 여수 어시장으로는 남산시장을 알아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교동시장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새조개와 키조개가 참 많이도 보인다. 대야에는 살아 있는 물곰도 있고 붕장어도 있다.
근처에 집이 있다면 당장에 물곰 한 마리 가져다가 묵은 배추김치 송송 썰어 넣고 한소끔 끓였을 것이다. 흐물흐물한 살점과 함께 떠먹는 국물은 영하의 날씨가 울고 갈 정도로 시원하다. 2월말의 햇살치고는 제법 따사롭다. 덕분에 시장구경을 하는데 짐짓 여유도 부려본다.
칠공주냐? 해변식당이냐?
요기라도 할 요량으로 시장 상인에게 장어탕 잘하는 집을 물으니 칠공주집을 말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해변식당이 더 낫다고 한다.
칠공주냐? 해변식당이냐? 의견이 갈리는데 어디로 가란 말인가. 예전에는 칠공주가 나았는데 요즘은 주인이 탕을 끓이지 않고 종업원이 하기 때문에 해변식당이 더 낫다는 평이다. 해변식당을 추천하는 아주머니 말씀과 표정이 하도 진지해 해변식당으로 결정.
장어구이 먹으러 가기 전에 먼저 한 가지 밝혀둔다. 맛객은 장어구이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누가 장어 먹으러 가자 하면 마지못해 가긴 해도 먼저 가본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해변식당에서 먹은 며칠 후 구룡포 가서 또 장어를 먹었다. 그 얘긴 나중에 하기로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노래방도 당구장도 마찬가지다. 누가 등 떠밀지 않는다면 평생 갈 일 없으리라 본다.
그런데 여수까지 와서 웬 바람이 불었을까. 제 발로 장어집을 찾은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여수에 있는 식당치고 밖에다 장어탕과 서대회 써 붙여놓지 않았다면 중국집밖에 없다. 좀 과장해서 그렇다. 그 정도로 여수를 대표하는 음식이란 얘기다. 그러니 장어요리를 먹지 않으면 왠지 여수에 쓸데없이 온 듯한 기분이고 손해 입은 느낌이다.
"장어백반 주세요."
"1인분은 안 되는데요."
"헉!"
혼자서 다니는 음식기행의 서러움은 이럴 때다. 뿐만 아니라 몇 만원 넘어가는 음식도 혼자 먹기는 양과 가격 면에서 부담스러워 포기할 때가 많다. 다시 메뉴판을 보니 장어구이백반은 2인 기준이지만 장어구이 1만 원짜리는 1인 주문도 가능하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대로 장어를 그리 선호하지 않은 맛객, 장어구이만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굳이 백반을 원하는 이유는 반찬에서 우연하게 대박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 그래요? 어…제가 음식취재차 전국여행 중인데 장어구이백반을 꼭 맛보고 취재하고 싶은데요."
"네 그래요? 그럼 해드려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