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에다 막걸리 한 잔 하자"

[맛객의 맛있는 이야기] 음식은 나눌수록 맛있는 법

등록 2007.04.12 11:19수정 2007.04.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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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들나물, 개망초 한각구(엉겅퀴) 냉이 자운영 쑥
여러가지 들나물, 개망초 한각구(엉겅퀴) 냉이 자운영 쑥맛객

자연식 선호하는 맛객의 식성을 파악했나 봅니다. 시골에 살면서 땅과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지인이 나물을 보내왔습니다. 박스를 열어보니 쑥과 자운영이 보이고, 개망초와 한각구(엉겅퀴) 냉이줄기가 들어 있습니다. 소박한 나물이지만 일일이 다듬어 정성을 다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비록 이름난 나물은 아니지만 직접 들로 나가 채취한 나물이라 하니 그 가치는 고급나물에 비할 바 아닙니다.


음식은 나눌수록 줄어들지만 맛은 더욱 늘어납니다. 이번엔 후배를 불러 골고루 챙겨주고, 나머지는 나물을 무치기 시작합니다. 나물은 당장 먹지 않더라도 일단 데쳐놓기라도 해야 합니다. 계속 성장하고 시들기 때문에 그 만큼 맛과 영양은 줄어들게 되니까요.

"나물에다 막걸리 한 잔 하자."

같은 건물에 있는 후배 두 놈에게는 미리 얘기를 해두었습니다. 나물은 우아하게 폼 잡고 먹는 서양식과 달리 여럿이 어울릴 때 맛이 배가 됩니다. 쌈을 쌀 때도, 밥을 비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엔 식구가 많았고 공동체의식도 강해 자연스레 어울림의 식문화가 자리 잡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소금을 넣고 자운영을 데치고 있다
소금을 넣고 자운영을 데치고 있다맛객

나물은 소금을 넣은 물에 데치는데 변색을 막을 뿐 아니라 비타민 파괴도 줄여준다고 합니다. 녹색의 자운영이 뜨거운 물에 들어가니 금세 보드라운 연녹색으로 변합니다. 나머지 나물들도 데칩니다.

간장, 마늘, 파, 깨소금, 들기름을 넣고 자운영을 무치고 있다
간장, 마늘, 파, 깨소금, 들기름을 넣고 자운영을 무치고 있다맛객

자운영은 간장과 된장 두 가지 방법으로 무쳐봅니다. 간장에 무치는 나물은 시금치와 넘나물처럼 단맛을 지닌 것들입니다. 자운영 역시 콩과 식물이라 단맛이 있습니다. 껍질째 삶은 콩 껍질을 맛보면 단맛이 납니다. 그런 맛입니다.


왼쪽이 자운영간장무침, 뒷쪽이 자운영된장무침, 오른쪽은 한각구 개망초 냉이를 된장과 고추장에 무쳤다
왼쪽이 자운영간장무침, 뒷쪽이 자운영된장무침, 오른쪽은 한각구 개망초 냉이를 된장과 고추장에 무쳤다맛객

나머지 나물은 한데 넣고 된장에 조물조물 버무립니다. 고추장도 약간 넣었습니다. 된장의 텁텁함을 덜어주게 되겠지요. 세 가지 나물을 한 접시에 담았습니다. 자연에서 얻은 나물에 최소한의 조미를 더했으니 이만하면 자연을 느끼는데 손색없겠지요.

나물과 막걸리는 잘 어울린다
나물과 막걸리는 잘 어울린다맛객

여기에 막걸 리가 곁들여 집니다. 쓰고 시고 달고 텁텁한 막걸리 맛이 어쩜 나물의 맛과 똑 같을까요? 그래서 나물과 막걸리는 연인처럼 잘 어울리는 술입니다.


나물과 잘 어울리는 막걸리

나물비빔밥에 가자미식해와 청란젓을 넣었더니 맛이 한층 살아난다. 별식이 따로 없습니다
나물비빔밥에 가자미식해와 청란젓을 넣었더니 맛이 한층 살아난다. 별식이 따로 없습니다맛객

나물을 어느 정도 먹고 나면 필수코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나물 비빔밥인데요. 여러 가지 나물을 밥에 털어 넣고 비벼먹는 맛은 꿀맛이란 표현과 정말로 잘 들어맞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나물에 두 가지 재료를 더 넣었습니다. 지난 맛 기행길에 주문진에서 구입해 온 청어알젓과 가자미식해를 넣고 비벼 봅니다.

남은 나물에 밥을 비비고 있다
남은 나물에 밥을 비비고 있다맛객

밥 쟁탈전, 수저들이 달려든다
밥 쟁탈전, 수저들이 달려든다맛객

잘 삭은 가자미에서는 시큼한 맛이 납니다. 이 맛과 톡톡 터지는 청란젓이 나물과 더해지니 꿀맛에 꿀맛을 더한 듯합니다. 세상에 이런 별식이 또 있을까요? 배불러 안 먹겠다는 후배 놈들이 갑자기 걸신이라도 들었나 봅니다. 숟가락질 열심히 합니다. 졸지에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막걸리만 초라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나물 덕분에 오늘 하루만큼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 고민에서 해방감을 맛봤습니다. 식탁위에 맛의 즐거움을 선사해준 지인에게 감사드립니다.

"정말 맛있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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