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모는 왜 무심할까?

곧 사라질 운명, 가장 작은 술집에서....

등록 2007.04.16 14:24수정 2007.04.1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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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도 없다. 세사람이 들어 앉으면 꽉 차는 집, 맛객이 알고 있는 술집 중에 가작 작은 규모다. 안 그래도 고독한 현대인, 비닐창으로 보이는 도시인의 모습이 비에 젓은 가을 낙엽을 닮았다
상호도 없다. 세사람이 들어 앉으면 꽉 차는 집, 맛객이 알고 있는 술집 중에 가작 작은 규모다. 안 그래도 고독한 현대인, 비닐창으로 보이는 도시인의 모습이 비에 젓은 가을 낙엽을 닮았다맛객
서울 중구 황학동에서 곱창을 구웠다. 느끼함은 쓴 소주가 있어 덜하다. 전작은 막걸리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분과 홍어찜을 앞에 놓고 막걸리를 서너 주전자 비웠나 보다. 홍어도 홍어지만 할머니가 누룩과 찹쌀고드밥, 소금만 넣고 빚은 막걸리가 기막히게 좋은 집이다. 곱창에 소주를 마시는 지금은 2차인 셈이다. 갓 구운 곱창은 부드럽고 쫄깃하다. 그게 딱딱해질 때쯤이면 소주도 바닥을 보인다.


취기가 오른다. 길을 걷는다. 그 이름 없는 술집은 그때 눈에 들어왔다. 청계천을 따라 신당역으로 걸어오다 보면 옛날 포장마차보다 작은 술집이 눈에 띈다. 언뜻 보면 술집인지도 모른다. 하도 작아서 무슨 토스트 파는 곳쯤으로도 오해받기 딱이겠다.

세상사람 누군들 가슴에 사연 한 가지씩 품고 살지 않을까마는....
세상사람 누군들 가슴에 사연 한 가지씩 품고 살지 않을까마는....맛객
긴 나무의자 한 개가 전부이니 광화문 김치찌개 집 바로 옆에 있는 소우(小雨)보다 작은 규모다. 이런 분위기에 열광하는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닐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안은 만원이다. 그래 봤자 3명의 손님이 전부지만….

마침 술자리가 끝나 일어서지 않았다면 우리는 유명한 맛집처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니 다시 만원이나 다름없다.

"어! 갈매기살이 있네. 이거 어떻게 해요?"
"떨이해서 만오천원에 드세요."


갈매기살, 1만5천원에 떨었다
갈매기살, 1만5천원에 떨었다맛객
배가 부른 우리가, 더군다나 돼지곱창 먹고 온 우리가 또 다시 갈매기살을 안주로 택한 데는 주인장의 한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상당한 양인데 만오천원이면 우리로선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기도 했다.


청주를 데우고 있다
청주를 데우고 있다맛객
눈앞에 큰 청주병이 보인다. 정종 두 잔을 주문했다. 술을 데울 때 주전자를 가스불 위에 올리는 게 아니라 끓는 물에 담그는 것을 본 그분이 좋아한다.

"아주머니 정종에 대해 아시네요."
"이야 진짜네! 정종은 저렇게 데워야죠."



취기가 오른 우리는 별것 아닌 것에도 감동 받아 호들갑을 떤다. 아주머니는 칭찬에도 여타 질문에도 짧은 대답 한마디씩만 할 뿐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다. 가끔 슬픈 미소만 짧게 지을 뿐이다. 하지만 친절하지도 않는데 이런 집에서 술 마셔야 하나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저런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그 어떤 아픔이 있기에 무심한 사람이 되었을까.

겨우 얻어낸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이곳도 곧 문을 닫아야 한단다. 개발되기 때문이다. 청계천의 개발은 이제 그 주위로 이어지고 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 당장 개발의 불똥은 소시민에게 떨어진다. 그만큼 혜택도 소시민에게 돌아간다면 좋으련만. 아니면 한잔 술에 위안을 얻게 이런 술집 하나 남겨두던가.

쓴 소주에 안주는 주모 사연으로 대신할까?
쓴 소주에 안주는 주모 사연으로 대신할까?맛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 정보는 http://blog.daum.net/cartoonist/10013150 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 정보는 http://blog.daum.net/cartoonist/10013150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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