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의 공백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군요"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1]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명지산

등록 2007.04.16 20:31수정 2007.04.1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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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명지산 정상 표지석

명지산 정상 표지석 ⓒ 이승철

"오늘 내가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닐까?"

태어나서 두 번째로 1천 미터 이상의 높은 산을 오른다는 친구가 걱정을 한다. 몸도 상당히 비대한 편이어서 지난번 월악산 등산 때도 많이 힘들어했던 친구는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걱정할 것 없어. 월악산보다 훨씬 높긴 하지만 올라가기는 어렵지 않을 거야."

다른 일행들은 전에 이미 한 번 오른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여유 있는 표정이다.

"그래도 이 산이 훨씬 더 높잖아?"

아무래도 이 친구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처음 오르는 친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걱정이었을 것이다.

명지산은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며 해발 1267m나 되는 산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오르기로 했다. 4월 11일. 승용차로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했기 때문에 명지산 등산로 입구인 익근리에서 등산을 시작한 시간이 오전 10시경이어서 시간도 넉넉했기 때문이다.


본래 오르려고 했던 산은 근처의 연인산이었다. 그런데 연인산 입구에 들어가 보니 5월 중순까지 산불예방을 위해 입산을 금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연인산은 철쭉제에 맞춰 다시 계획을 세우기로 하고 대신 근처에 있는 명지산을 오르기로 한 것이다.

우리들은 어차피 이번 달부터 전국의 100대 명산을 목표로 산행을 하기로 했다. 전에 올랐던 것은 무시하고 네 명이 새롭게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명지산도 그 100대 명산 중에 포함되기 때문에 명지산이 처음으로 오르는 산이 된 것이다.


a 등산로 입구의 물레방앗간

등산로 입구의 물레방앗간 ⓒ 이승철


a 승천사 천불전

승천사 천불전 ⓒ 이승철

익근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을 올랐다. 처음에는 아주 평탄했다. 계곡에는 전날 내린 비로 불어난 물소리가 청량하기 짝이 없다. 물소리만이 아니었다. 흐르는 물도 그렇게 맑고 깨끗할 수가 없었다. 승천사 일주문을 지나자 곧 승천사가 나타난다. 그런데 입구의 사천왕상들이 지키고 서있는 문은 사용하지 않고 그 뒤쪽으로는 밭을 일구어 놓았다.

거대한 불상이 있는 절 마당 뒤에 서있는 천불전의 팔각지붕이 날아갈 듯 멋지다. 승천사 담장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니 왼편 골짜기로 명지폭포가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러나 폭포구경은 내려올 때 하기로 하고 그냥 지나쳤다.

조금 더 올라가니 삼거리다. 왼편 다리를 건너 곧장 올라가면 바로 정상인 제1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편 길은 제4봉을 거쳐 오르는 길이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른편 길로 가지, 곧장 오르는 길은 너무 가파를 거야."

역시 등산 실력이 제일 좋은 친구가 힘들어 하는 친구를 배려한다. 그러나 제4봉으로 오르는 길이라고해서 결코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완만했지만 곧 급경사 길에 곳곳에 돌계단과 나무계단 길이 한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들이 한참 오르고 있을 때 뒤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몇 사람의 등산객들이 뒤쫓아 올라온다. 그들이 올라오는 속도를 보니 우리들이 앞을 막아서는 안될 만큼 상당히 빠르다.

우리들은 한쪽으로 비켜서서 그들을 먼저 보내기로 했다. 그들은 대부분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들이었다. 그런데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한 사람은 숨소리가 너무 거칠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한 사람만 유난스레 헐떡거리고 있었다.

a 등산로 나무계단

등산로 나무계단 ⓒ 이승철


a 정상부근 등산로 옆에 쌓여 있는 잔설

정상부근 등산로 옆에 쌓여 있는 잔설 ⓒ 이승철

그들을 앞세워 보내고 우리들은 예의 느린 속도로 천천히 걸었다. 속도가 너무 느려서 잘 걷는 한 친구는 조금 아쉬웠겠지만 할 수 없었다. 등산 속도는 제일 약한 멤버의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아쉽더라도 그렇게 해야 일행 모두가 함께 무리 없는 산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0여 미터쯤 더 올라갔을까. 길가에 한 사람이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내 옆을 스쳐 앞질러 갈 때 유난히 숨소리가 거칠었던 바로 그 사람.

"왜 힘드십니까? 얼굴이 창백한데 어디 아프지는 않습니까?"

그의 얼굴은 사실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땀에 흠뻑 젖은 머리와 얼굴이 상당히 창백해보였기 때문이다.

"네, 힘들어 못 올라 갈 것 같은데요. 다리가 완전히 풀렸습니다."

우리들도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그럼 무리하지 말고 잠시 쉬었다가 그냥 내려가세요. 일행들도 어차피 다시 익근리 주차장으로 내려올 것 아닙니까?"

그는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다행이 어디 아픈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 잠시 더 쉬었다가 내려가라고 당부하고 우리들은 다시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는 가파른 오르막에 계단 길이어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이! 잠깐 쉬어가자고!"

예의 친구 한 명은 수시로 쉬어가기를 요구했다. 앞서 걷던 친구들도 별수 없이 같이 쉬엄쉬엄 오를 수밖에.

"어, 저사람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올라오고 있는데."

그런데 조금 올라가다가 뒤돌아보니 주차장으로 내려간 줄 알았던 조금 전의 그 등산객이 저 만큼 아래에서 뒤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렇게 우리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 뒤따라 올라왔다.

a 저 능선 너머로 보이는 산이 연인산

저 능선 너머로 보이는 산이 연인산 ⓒ 이승철


a 산자락에 희끗희끗 보이는 것은 잔설

산자락에 희끗희끗 보이는 것은 잔설 ⓒ 이승철

우리들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따라오는데 무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 참 올라가다가 다시 잠시 쉬는 사이 그가 우리들이 쉬는 곳까지 올라와 옆자리에 앉았다. 그의 얼굴을 보니 혈색도 표정도 많이 좋아졌다. 괜찮겠느냐고 물으니 역시 괜찮다고 한다.

앞에 먼저 올라간 사람들은 같이 온 일행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일행들은 힘들어 뒤쳐진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모두 앞서 올라가버린 것이었다. 괜히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내려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그가 허탈하게 웃는다.

"앞서간 친구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만 못하던 애들이었거든요. 그런데 한 6개월 동안 일 때문에 등산과 운동을 하지 않았더니 오늘 이렇게 사람이 바보가 되고 말았네요."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리산을 종주등반까지 했던 실력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가 이날은 일행들을 따라가지 못해 처지고 말았으니 그로서는 자존심도 몹시 상하고 충격도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우리들과 함께 천천히 산을 올랐다.

산 중턱 위로 올라서자 나무들은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흔한 진달래 한 송이 피어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드디어 능선길에 올라서 간단한 간식을 먹으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우리들을 앞질러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어! 간식이나 같이 나누어 먹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네."

역시 그는 등산에 상당한 실력이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6개월 만에 모처럼의 산행에서 다른 친구들의 빠른 걸음을 뒤따르다가 무리를 했지만 우리들과 함께 천천히 걷는 동안 체력을 다시 회복한 모양이었다.

a 명지폭포

명지폭포 ⓒ 이승철


a 익근리 입구 계곡과 생강나무

익근리 입구 계곡과 생강나무 ⓒ 이승철

"아니 여긴 아직도 눈이 남아있네. 여긴 아직 겨울이잖아?"

제4봉을 거쳐 정상인 제1봉으로 가는 길가에는 여기저기 잔설이 있었다. 진달래와 철쭉나무들의 꽃망울도 아직은 너무 작았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질척질척 눈이 녹아 적시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제 오십니까?"

그 사람이었다. 그의 일행들이 정상에서 그를 기다고 있었던지 그는 일행들과 함께 한 쪽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가 우리들을 보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자! 100대 명산의 첫 번째 산을 등산한 기념사진을 찍어야지."

처음에 시작할 때 걱정했던 친구는 생각보다 힘들어하지 않고 정상에 오른 것이 몹시 기쁜 모양이었다.

"자! 보라고, 저 능선 너머 저 높은 산이 우리들이 오늘 오르려고 했던 연인산이야. 그리고 전에 올라왔던 코스는 저 봉우리 아래쪽에서부터였지. 그 능선 쑥 들어간 곳이 귀목고개지."

지난 가을에는 상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2봉 3봉과 정상인 1봉을 거쳐 4봉으로 해서 익근리로 내려갔었다.

"그땐 참 너무 힘들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한결 수월한 편이구먼."

가을 등산 때 몹시 힘들어했던 친구는 기억이 새로운 모양이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참으로 좋은 편이다. 부근에서 제일 높은 산이어서 막힘이 없기 때문이다.

멀리 서북쪽으로는 국망봉과 화악산까지 아스라하게 바라보인다. 정상에서 잠깐 쉬었다가 하산 길에 나섰다. 제1봉에서 익근리로 내려가는 길은 정말 가팔랐다. 하산 길은 근래에 설치한 것 같은 나무계단이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무릎관절에 상당한 무리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산 길 역시 쉬엄쉬엄 내려오는 사이 정상에서 만났던 40대 등산객들이 우리들을 지나쳐 앞서 내려간다. 그러나 우리들이 계곡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웃통을 벗어부치고 계곡물에 땀을 씻어내고 있었다.

a 골짜기 입구에서 만난 꽃 한 그루

골짜기 입구에서 만난 꽃 한 그루 ⓒ 이승철

계곡입구 근처에 있는 명지폭포는 봄비로 물이 불어 볼만한 풍경이었다. 폭포아래 파란 소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어 보이는데 전설에는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갈 만큼 깊어서 명주폭포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마누라에게 자랑 좀 해도 되겠는 걸.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을 거뜬하게 올랐다고 말이야, 하하하."

친구들의 농담에 처음에 걱정했던 친구도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4월 들어 새롭게 시작한 전국 100대 명산의 첫 등산은 이렇게 무리 없이 멋진 시작을 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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