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생을 대체 누가 시켜서 하는 거야?"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2] 연초록색으로 물드는 관악산

등록 2007.04.25 08:28수정 2007.04.25 08:28
0
원고료로 응원
a 능선길의 진달래와 멀리 뒤에 보이는 연주대

능선길의 진달래와 멀리 뒤에 보이는 연주대 ⓒ 이승철

“어! 다 져버린 줄 알았던 벚꽃이 여긴 한창이네.”

산골짜기로 접어들자 연분홍빛 벚꽃이 흐드러진 풍경이 새삼스럽다. 평지의 벚꽃들은 이미 거의 다 져버린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골짜기는 이제 새순과 새잎이 피어나기 시작한 나무들로 싱그러움이 소록소록 피어나고 있었다. 그 연초록빛 나무들 사이에 활짝 꽃피운 산 벚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모습도 여간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이 정도 골짜기는 시내나 별 차이가 없는데 이 벚나무들은 왜 이제야 꽃을 피울까?”

정말 그랬다. 산 벚나무는 종자가 다른 것인지는 몰라도 겉으로 보기엔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꽃을 피우는 시기는 일반 벚나무들보다 한참이나 늦은 요즘에야 피우고 있으니 정말 모를 일이었다.

4월 24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관악산을 오르는 길이었다. 서울지하철 사당역에서 내려 관악산 쪽 골목길을 걷다가 산골짜기로 접어든 것이다. 며칠 사이에 산의 빛깔은 완연한 봄빛을 띠고 있었다. 그동안 죽은 듯 말라 있던 나뭇가지들 마다 연초록빛 잎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움과 함께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다가온다.

한참을 올라가자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왼편 길은 곧장 바위능선을 타고 오르는 가파른 길이고, 오른편 길은 산자락을 휘감고 돌아가는 완만한 길이었다. 일주일 만에 오르는 산길이어서 일단 완만한 길을 택했다.

a 철조망 옆에 핀 산벚꽃

철조망 옆에 핀 산벚꽃 ⓒ 이승철


a 골짜기에 핀 하얀 산벚꽃

골짜기에 핀 하얀 산벚꽃 ⓒ 이승철

산길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이었지만 간혹 30~40대들도 보인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여유도 즐기고 건강관리도 하려는 알뜰한 서민들일 것이다.


“산에만 오면 왜 이렇게 기분이 상쾌하고 좋을까?”

일행뿐만 아니라 산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답답하고 숨 막히는 도시생활에서 잠시나마 탈출하여 자연 속에 하나가 되는 느낌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갖는 공통적인 감성일 것이다.


“아! 정말 좋다. 이 싱그러운 냄새”

우리들 보다 조금 앞서 걷던 여성이 감탄사를 터뜨린다. 숲이 풍기는 향기가 가장 좋을 때가 바로 이맘때다. 새순과 새잎이 돋아나고 나무줄기를 통하여 수분을 뽑아 올려 가지와 잎으로 공급하는 이 시기의 나무들이 왕성한 생육을 하면서 뿜어내는 향기다.

골짜기 나무 밑에서는 청설모 한 마리가 무엇인가를 오물오물 먹고 있는 모습도 귀엽기 짝이 없다. 우리들이 약수터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는 동안 녀석은 어느새 나무줄기를 타고 다가와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사람들이 쉬었다가 떠난 자리에는 무언가 먹을 것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녀석일 것이다. 누군가 먹다만 오이를 휙 던지자 잽싸게 내려와 물고 달아난다. 도시 근처의 산에 사는 야생동물들은 어느새 사람들과 너무 많이 가까워져 있는 것이다.

a 산 중턱의 진달래와 산 아래 풍경

산 중턱의 진달래와 산 아래 풍경 ⓒ 이승철


a 관악문

관악문 ⓒ 이승철

완만한 능선을 타고 계속 올라갈수록 꽃피운 벚나무는 보이지 않고 대신 예쁜 진달래꽃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진달래도 골짜기는 이미 져버린 모습이었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한창 피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같은 산이라고 해도 높이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시기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어이! 좀 쉬어 가자고. 이거 너무 힘들구먼.”

어느새 등산을 시작한 지 2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완만한 길을 빙 둘러 오는 길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더구나 정상 못 미쳐 뾰족한 봉우리를 오르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길이었다.

“이 봉우리를 넘으면 연주대로 오르는 길만 남은 셈이니까, 힘을 내라고.”

일행들의 격려를 들으며 다시 힘든 오르막길에 나섰다. 우리들의 앞과 뒤에도 다른 등산객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어 하는 모습이다.

드디어 첫 번째 관문인 뾰족 봉우리 한 개를 넘었다. 내리막길에는 관악문이라는 자연 바위문이 지키고 있었다.

“자! 이곳에서 저 관악문을 배경으로 사진 한 번 찍고,”

이쪽으로는 처음 오른다는 친구는 관악문이 상당히 신기해 보이는 모양이다.

“이 바위 모양은 어때? 무엇처럼 보이나 살펴보라고?”

봉우리에서 연주대로 가는 내리막길에는 두 개의 특이한 모습을 한 바위들이 서 있었다.

“이건 마치 사람의 하체 모양이구먼. 저 위쪽은 허리, 아래쪽은 두 다리 같잖아?”

정말 그렇게 보인다. 바위 이름을 모르니 그냥 하체바위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럼 이 바위는 어때?”

하체 바위 아래쪽에 서있는 바위를 가리켰다. 이 바위도 상당히 신기하게 생긴 바위다.

“그 바위는 마치 장승처럼 생겼구먼.”

그럼 됐다. 장승바위. 하체바위와 장승바위라. 누가 이미 먼저 다른 이름을 붙여 놓았으면 시비거리가 되겠지만 이름이 없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이름인 것 같다.

a 하체바위

하체바위 ⓒ 이승철


a 장승바위

장승바위 ⓒ 이승철

장승바위 옆에는 진달래 한 그루가 고운 모습으로 피어 있어서 장승바위를 더욱 멋진 모습으로 받쳐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진달래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바위 사이와 바위 절벽에 피어 있는 진달래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아무리 식물이라지만 도저히 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예쁜 꽃을 피운 모습이 정말 놀라울 뿐이다. 그런 진달래들은 바위절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진달래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이에 일행들은 어느새 연주대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산길에서 혼자서만 뒤처지는 곳은 곤란하다. 부지런히 일행들의 뒤를 좇았다. 깎아지른 것 같은 바위절벽은 아슬아슬한 모습이었지만 다행히 밧줄과 쇠줄이 설치되어 있어서 올라가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연주대 바위 절벽 위에는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한쪽에는 막걸리를 파는 좌판을 벌여놓아서 술 냄새가 진동한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산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연거푸 몇 주발의 막걸리를 들이키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산 위에서 그것도 관악산 같은 바위산에서 과음을 하는 것은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다. 한두 잔으로 목만 축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차! 하면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잠깐 쉬었다가 하산길로 나섰다.

a 태극기가 보이지 않는 국기봉

태극기가 보이지 않는 국기봉 ⓒ 이승철


a 바위절벽의 진달래

바위절벽의 진달래 ⓒ 이승철

하산은 서울대학교 쪽으로 하기로 했다. 그쪽으로 내려가려면 곧장 골짜기로 내려가 계곡을 따라 가는 길과 국기봉이 있는 바위능선길이 있다. 그런데 맨 앞장을 선 일행이 능선길로 방향을 잡는다.

일행들이 조심조심 그 뒤를 따라 내려가지 시작했다. 바위능선 길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길이었다. 한 발짝만 잘못 내딛으면 큰일이 날 수 있는 길이 대부분이었다. 아직 등산에 익숙하지 않은 두 명의 일행들은 몹시 힘들어 한다. 더듬더듬 내려오자 저만큼 국기봉이 바라보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항상 게양되어 있던 태국기자 보이지 않는다.

“웬일이지? 태극기가 보이지 않네.”

가까이 다가가보니 국기 게양을 해놓았던 장대가 부러져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요즘 잦은 강풍에 부러지고 만 모양이었다. 국기봉을 넘어서자 다시 뾰족한 바위길이다.

“아! 힘들다. 이 고생을 도대체 누가 시켜서 하는 거야?”

일행 한 명이 너무 힘들다는 표정으로 주저앉는다. 익숙하지 않은 바위길이 정말 힘든 모양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스스로 좋아서 하는 고생이니 힘들어도 기분은 좋은 모양이다.

“그래도 산에 오르면 이런 길을 조금은 걸어야 등산 하는 맛이 나는 것 아냐?”

등산에는 어쩔 수 없이 체력과 경륜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너무 쉬운 산만 찾아다니면 실력의 향상이 되지 않는다.

a 연초록빛 골짜기 풍경

연초록빛 골짜기 풍경 ⓒ 이승철

“자! 다음에는 좀 쉬운 산으로 가자고.”

조금은 위험하기도 하고 힘든 코스를 거쳐 내려오자 산 아래 넓은 골짜기가 연초록색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예의 산 벚나무들이 듬성듬성 연분홍과 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 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4. 4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