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서 승려들에게 차를 얻어 마시다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 3] 공주 계룡산

등록 2007.05.03 18:08수정 2007.05.04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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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학사 입구에서 바라본 구름덮인 계룡산

동학사 입구에서 바라본 구름덮인 계룡산 ⓒ 이승철

"나는 이 산 이름만 들어도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더군."

전에도 몇 번인가 이 산에 올랐었다는 일행의 말이다. 많은 전설과 정감록의 예언, 그리고 한 때는 온갖 유사종교와 무속인들로 들끓었던 이 산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충남 공주와 논산, 그리고 대전시에 걸쳐 있는 계룡산을 찾은 날은 날씨가 화창한 5월 2일이었다. 전날인 화요일이 약속된 날이었지만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하루를 늦춘 것이다.

우리 일행 4명이 동학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자 미리 와있던 친구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는다. 대전에 거주하는 이 친구가 이날 산행을 안내할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너무 힘을 빼면 욕먹을 것 같고. 올라갈 때는 완만한 경사로를 타고 올랐다가 내려올 때 동학사에 들르는 코스로 하는 게 좋겠지?"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보는 계룡산은 높은 봉우리에 하얀 구름이 덮여 있어서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는 풍경이다. 산행은 동학사로 오르지 않고 입구에서 오른편 등산로를 택했다. 조금 올라가자 나뭇가지마다 새순들이 돋아나고 잎이 피어나는 싱그러움이 온몸을 상쾌하게 감싸는 느낌이다.

남매탑에 얽힌 전설


a 특이한 모습의 음식점(위)과 남매탑

특이한 모습의 음식점(위)과 남매탑 ⓒ 이승철

길은 경사도 완만하고 좋은 편이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오르는 산길은 평화로움이 넘친다. 산행에서도 성질 급한 사람들은 발 빠르게 먼저 올라간다. 느릿느릿 걷는 것이 답답한 것이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일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 일인가. 체력이 약하거나 초보인 사람은 다리도 팍팍하고 숨이 차오르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것이다.

"잠깐 쉬어가는 게 어때?"


헐떡거리며 오르던 일행 한 명이 쉬어가자고 한다. 처음 함께한 일행은 어디쯤 올라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생각보다 등산 실력이 월등한 것 같았다. 반대로 우리들의 실력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수준이리라.

잠깐 쉬면서 땀을 식히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능선 3거리에 도착했다. '큰배재'라는 능선 위의 갈림길이었다. 먼저 올라간 일행도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잠깐 땀을 들인 후 우리들은 첫 번째 목표지인 남매탑을 향하여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능선길이어서 그리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앞쪽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소풍이라도 온 듯한 중학교 학생들이었다. 200~300여명의 남녀학생들이 남매탑 주변에서 점심도시락을 먹으며 쉬고 있었는데 그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a 삼불봉

삼불봉 ⓒ 이승철

'남매탑' 또는 '오누이탑'이라고 불리는 이 탑의 본래 이름은 청량사지 5층 석탑이다. 매끄러운 아름다움이나 웅장함은 없었지만 투박하면서도 날렵한 모습이 이제 막 연녹색으로 피어나는 나뭇잎들을 배경으로 여느 탑보다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탑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으니 이 전설이 바로 남매탑이라는 이름의 유래이기도 하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패망하자 백제의 왕족이었던 한 사람이 바로 이 터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한 칸의 초막을 짓고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이 중이 좌선을 하며 삼매에 들어 있는데 밖에서 큰 동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중이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보니 송아지만 한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린 채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고 있었다.

중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호랑이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다가 그 동물의 갈비뼈가 목에 걸려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은 호랑이에게 "네가 살생한 까닭으로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이다"라고 훈계하며 호랑이 목에 손을 넣어 갈비뼈를 빼주었다. 호랑이는 고맙다는 듯 몇 번인가 머리를 조아리다가 숲 속으로 사라졌다.

a 능선 길의 꽃들과 계룡산 산줄기

능선 길의 꽃들과 계룡산 산줄기 ⓒ 이승철

그런 일이 있은 후 호랑이는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간혹 나타나 산돼지나 노루를 물어다 놓기도 했다. 중은 호랑이가 동물들을 물어다 놓을 때면 "내가 그토록 살생을 하지 말라고 했거늘 또 살생을 했단 말이냐?"고 꾸짖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중이 불공을 드리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중이 밖으로 나가 살펴보니 이게 웬일인가.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아리따운 묘령의 여인이 문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중은 여인을 초막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정성으로 보살피자 여인이 곧 깨어났다. 사연을 물어보니. "소저는 경상도 상주 땅에 사는 처자이온데 혼기가 되어 이웃 마을 양반댁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밤에 들기 전에 소피가 마려워 잠깐 밖으로 나왔다가 송아지만큼이나 커다란 호랑이가 앞에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바로 이곳이옵니다."

"관음봉을 두고 그냥 내려가다뇨"

a 천황봉과 관음봉 철계단

천황봉과 관음봉 철계단 ⓒ 이승철

중은 여인을 상주 본가로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여인은 이곳에 남아 중과 인연을 맺어 살기를 간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은 이미 출가한 몸으로 그럴 수 없다 하고 그럼 오누이로 함께 살기로 하였는데 그들은 수행 끝에 결국 같은 날 똑같은 시간에 죽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죽은 후 그들의 사연을 아는 인근에 살던 사람들이 두 사람의 아름다운 행적을 후세까지 기리고자 석탑 두 개를 쌓고 남매탑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역시 계룡산은 전설과 사연이 많은 산이야."

우리들은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목표는 삼불봉이었다. 능선길을 오르내리며 걷다가 가파른 바위봉우리를 허위허위 올라서니 삼불봉이다.

삼불봉에 오르니 시야가 시원하게 열리며 계룡산의 진면목이 두루 펼쳐진다. 멀리 바라보이는 천황봉과 함께 갑사 쪽의 골짜기, 그리고 줄기줄기 이어진 능선과 봉우리들이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계룡산의 각 봉우리 사이에는 7개의 계곡과 3개의 폭포가 있어 운치를 더해주는 산이다. 자연경관이 빼어나 일찍이 1968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계룡산을 대표하는 계룡팔경은, 제1경은 천황봉의 일출, 제2경은 삼불봉의 설화, 제3경은 연천봉의 낙조, 제4경은 관음봉의 한운, 제5경은 동학사 계곡의 숲, 제6경은 갑사 계곡의 단풍, 제7경은 은선폭포, 제8경은 오누이탑의 명월을 가리킨다.

a 관음봉 표지석과 정자안에서 차끓이는 승려들

관음봉 표지석과 정자안에서 차끓이는 승려들 ⓒ 이승철


우리들은 잠깐 앉아 쉬며 과일 등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계룡8경 중 제2경인 삼불봉은 해발 775m로 천황봉이나 동학사 부근에서 멀리 바라보면 산의 형상이 마치 세 개의 부처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 삼불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추운 겨울철에 눈이 내리면 눈꽃이 일품이라는 봉우리다.

"어때? 오늘은 이쯤에서 접고 내려가는 것이."

힘들어하던 일행이 이만 내려가자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조금은 아쉬운 표정이다. 아직은 산행시간도 너무 짧았고 조금은 더 오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까지 오셨다가 그냥 내려가시다니요. 저기 한 번 보세요. 능선을 쭉 따라가다 보면 정자가 하나 보이지요. 그 봉우리가 관음봉입니다. 거기까지만 가시면 됩니다. 관음봉에 오르지 않고 그냥 가시면 계룡산에 오셨다 가는 보람이 하나도 없을 겁니다."

우리들의 옆자리에서 쉬고 있던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등산객이 우리들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그녀가 손을 들어 가리키는 관음봉은 능선으로 연결된 봉우리였는데 우리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삼불봉에서는 상당히 멀어 보인다.

a 삼은각과 동학사 마당가의 봄부터 붉은 단풍

삼은각과 동학사 마당가의 봄부터 붉은 단풍 ⓒ 이승철


"상당히 멀고 험해 보이는데 괜찮을까? 그래도 아주머니가 저렇게 권하는데 한 번 가보도록 하지 뭘."

그 아주머니의 권유가 큰 힘을 발휘했다. 힘들어하던 친구에게 용기를 심어준 것이다. 우리들은 다시 능선길을 따라 관음봉으로 향했다.

능선길은 결코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 어느 곳은 한쪽이 깎아지른 바위절벽 길이었고 작은 봉우리를 몇 개나 오르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보니 조금 전에 않아 쉬던 바위봉우리 삼불봉의 위용이 새삼스럽다.

그래도 능선길에는 늦게 핀 진달래며 이제 봉오리가 커진 철쭉과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 여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어, 바로 저 앞이 관음봉이잖아!"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일행이 놀란 듯 걸음을 멈춘다. 정말 바로 가까운 눈앞에 그렇게 멀어 보이던 관음봉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가까워 보이는 관음봉을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급경사에 설치된 철제계단을 밟고 오르기가 힘겨웠기 때문이다. 몇 번을 멈춰 서서 숨을 고른 후에야 어렵사리 관음봉을 밟고 설 수 있었다.

산꼭대기서 느끼는 녹차의 향

a 젊은 여승들의 산책

젊은 여승들의 산책 ⓒ 이승철

관음봉은 해발 816m로 연천봉과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3거리 한복판에 있는 봉우리였다. 봉우리 표지석 아래 평지에는 정자까지 세워져 있어서 여러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봉우리 표지석에서 사진을 몇 컷 찍고 내려오자 향긋한 녹차향기가 콧속으로 파고든다.

다가가 보니 건장한 승려들 네 명이 가스버너를 이용하여 녹차를 끓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맹물로 목을 축이며 올라왔는데 산꼭대기의 가까운 곳에서 향기 진한 녹차가 끓고 있다니, 이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스님들! 이 높은 곳까지 와서 차를 끓여 드시는군요. 향기가 정말 그만입니다,"
"한 잔 드릴까요?"

나의 너스레 한 마디에 차를 따르던 젊은 승려가 당장 내게 찻잔을 내민다. 곁에서 군침을 삼키던 일행들도 슬금슬금 다가오자 승려들이 모두에게 한 잔씩 따라주는 것이었다.

승려들에게 어느 절에서 이곳까지 올라왔느냐고 물으니 절 이름은 대지 않고 동학사 아래의 절이라고만 한다.

"어, 오늘은 스님들 덕분에 높은 산꼭대기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정말 향기롭고 맛있는 차를 얻어 마셨네,"

일행들은 정말 생각지 못했던 차 한 잔으로 기분들이 몹시 좋아진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기분으로 저 천황봉까지 마저 올랐다가 내려갈까?"

누군가 엉뚱한 제안을 했지만 일행들의 하산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관음봉에서 동학사로 내려가는 길은 정말 가파른 돌밭길이었다.

a 오줌줄기 같은 은선폭포와 신기하게 생긴 고목

오줌줄기 같은 은선폭포와 신기하게 생긴 고목 ⓒ 이승철


관절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조심조심 내려오는 길에서는 계룡8경 중 제7경인 은선폭포를 만났지만 봄 가뭄으로 오줌줄기 같은 폭포가 조금은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여승들만 수도하는 동학사는 찾아온 사람들도 별로 없는지 매점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독경소리만 저 홀로 낭랑하다.

고려시절의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 그리고 야은 길재를 모신 사찰 옆의 삼은각은 대문이 굳게 잠긴 채 역시 깊은 정적에 잠들어 있었다. 다만 개울 건너 화사하게 꽃이 핀 화단 옆을 걷는 젊은 비구니 두 명의 모습이 하릴없는 나그네의 눈길을 붙잡는다.

입구로 나오는 길가에는 양옆으로 매달아 놓은 연등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이곳이 바로 계룡8경 중 제5경인 동학사입구의 숲이다.

"어이! 그 유명한 신도안은 어느 쪽이지?"

정감록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 즉 큰 변란을 피할 수 있는 장소라 했으며 도참사상에서 정씨왕을 예언한 바로 그 장소를 묻는 것이다.

이 계룡산은 통일신라 시절의 5악(五嶽) 가운데 하나로 백제 때 이미 계룡 또는 계람산, 옹산, 중악 등의 이름으로 바다 건너 당나라까지 알려진 산이다. 풍수지리상으로도 조선의 4대 명산으로 꼽혀 조선시대에는 이 산의 골짜기 한곳이 새로운 도읍지로 물색되었다는 말도 전한다.

a 동학사 입구길 양편에 걸린 연등

동학사 입구길 양편에 걸린 연등 ⓒ 이승철


"오늘 덕분에 계룡산 등산 잘했네 그려. 요즘 대권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못 이룬다는데 자네도 한 번 나서보지 그래. 그 신도안에 들어가 기도라도 좀 해 보던가, 잘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자네도 성이 정씨잖아 하하하."

예언과 전설의 산 계룡산에 들면 너나없이 실없는 예언가가 되는 모양이다. 봄빛이 무르익어가는 계룡산을 내려와 서울로 돌아오는 길가에는 모내기 준비가 한창인 들녘이 판판하고 가지런하게 정리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계룡산 #동학사 #계룡팔경 #남매탑 #관음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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