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오랑 세오녀의 포항 도구해수욕장

영화처럼 재미있는 동해안 문화기행 (30)

등록 2007.05.08 09:29수정 2007.05.0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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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해수욕장 전경 ⓒ 김대갑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에는 태양계의 신비가 숨어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익히 아는 이 설화에 일식과 월식의 조화가 담겨 있다는 말이다. 일식과 월식의 조화라…. 일식은 태양이 달에 가려 일시적으로 빛을 잃는 현상이고, 월식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갇혀 빛을 잃는 현상이다. 이는 지구와 달이 태양의 인력권 안에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고대인들은 이런 만유인력의 법칙을 몰랐기 때문에 일식과 월식을 아주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식과 월식이 발생하면 하늘에 제사를 바치면서 태양과 달이 다시 빛나기를 바랐다. 혹자는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는 것은 바로 일식과 월식 현상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참 재미있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경북 포항시 동해면에 가면 이름도 특이한 도구해수욕장이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한적하다 못해 썰렁한 느낌마저 주는 이 해수욕장은 조개의 서식지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피서객들이 해수욕을 하다가 발 밑 10cm를 파서 조개를 잡기도 했다. 지금은 이상 기온과 어민들의 싹쓸이 포획으로 모래사장에서 조개를 캐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구해수욕장은 일견 썰렁하지만 그 속에는 고대 한일 관계를 둘러싼 이야기가 복잡하고도 풍부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순박한 부부의 이별과 재회, 사랑 이야기가 모래 알갱이 속에 애틋하게 묻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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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해수욕장에 흐르는 담수 ⓒ 김대갑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는 우리나라 고대 문헌에서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천체신화이자 일월신화이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일월신화도 있지만 <삼국유사>와 같은 역사서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일월신화이기에 그 의미와 역사성은 각별하다. 더군다나 이 설화는 고대 일본의 형성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학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의 한 부분을 통치한 한반도 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설화의 내용에서도 분명히 확인되며, 연오와 세오의 이름에 나오는 '까마귀 오'에서도 확인된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신화나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보면 '삼족오'라는 신비의 동물이 등장한다. 세발 달린 까마귀란 뜻인데, 고대인들은 까마귀를 태양 속에 사는 새라고 생각했다.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이자 생명 창조의 새인 것이다. 그래서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는 태양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오와 세오가 바로 태양과 달의 현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일본의 태양 숭배 문화와도 많은 연관이 있다.

일본의 초대 천황은 신무천황으로서 서기 660년에 즉위했다고 일본인들은 주장한다.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한 주장인데, 한일고대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일본서기의 진정성을 별로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서기가 오기와 날조, 허점투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무천황의 증조할머니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가 연오랑 세오녀 설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어 우리에게 흥미를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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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 세오녀 청동상(호미곶 소재) ⓒ 김대갑


연오랑이 먼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갔을 때는 해와 달이 괜찮았다. 그런데 아내인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는 것은 바로 아내가 태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태양신은 거의 여성신이다. 일본의 태양신인 아마테라스도 여성신인데, 이는 바로 세오녀로 대표되는 태양신화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승된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연오랑 세오녀 설화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태양 숭배집단이 일본의 통치계급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확인된 바도 없으며 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도 연구 중이며, 앞으로도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할 부분이다. 참 재미있으면서도 신비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도대체 고대 한반도와 일본 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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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들의 담화 ⓒ 김대갑


도구해수욕장에는 빈 조개껍데기들이 많이 뒹굴고 있다. 그리고 붉은 부리 갈매기들이 생선대가리를 놓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흰 갈매기들이 떼 지어 바다 위를 돌아다닌다. 간간히 그들 사이로 비오리와 물오리들이 작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바다 위로 날고 있다. 가만히 조개껍데기들을 관찰하니 몇 개의 조개들이 입을 벌린 채 열심히 무언가를 토론하고 있다. 혹시 수 천 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연오랑과 세오녀의 진실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는 것은 아닐까? 그들도 연오랑 세오녀 설화와 고대 한일 간의 연관성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구 해수욕장의 가장 큰 장점은 조용함이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해수욕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주변에 건물이나 상가가 없다. 해수욕장 진입로 입구에 작은 슈퍼 몇 개와 식당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도구해수욕장은 번잡함과 시끄러움을 피해 조용하면서도 안락한 피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밤이 되면 저 멀리 있는 포항제철의 현란한 불빛이 수평선을 물들이고, 머리 위로는 순결한 별빛들이 세오녀의 비단처럼 화려하게 펼쳐져 있다. 그 옛날, 연오랑과 세오녀가 살았던 그 시대처럼 태고의 한적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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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떠나간 연오랑과 세오녀 ⓒ 김대갑


동해안의 작은 바닷가에서 해조류을 채취하고 낚시를 하며 정겹게 살아가던 연오랑과 세오녀. 하늘의 뜻에 따라 일본의 왕이 된 후, 고국의 일월이 빛을 잃었다는 이야기에 세오녀가 짠 비단 한 필을 신라에 전해줘서 빛을 되찾게 해준 그들. 그때 세오녀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낸 곳이 지금의 영일이라고 했던가. '해를 영접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영일. 아름답고 신비한 부부의 이야기는 이렇듯 현존하는 지명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도구 해수욕장에 태양이 떠오른다. 그 태양의 신비로운 궤적을 눈으로 따라가며 일본을 향해 외쳐본다.

"일본은 고대 한반도인이 세운 나라임에 분명하다. 일본은 역사를 결코 왜곡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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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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