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의 '섹시'한 분석 간직한 여근곡

영화처럼 재미있는 동해안 문화기행(32)

등록 2007.05.13 10:02수정 2007.05.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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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

"옥문은 여성의 음부를 말함이니 그 색은 희다. 흰 곳은 서쪽을 말함이니 백제군이 서쪽에 있는 것을 알았다. 또한 남근은 여성의 몸 안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니 백제군을 쉽사리 물리칠 줄 알았다." - 삼국유사 기이편 지기삼사(知機三事) 중에서.

참 에로틱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고대의 역사서 중에서 이렇게 섹시하게 전투상황을 분석한 대목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인체해부학과 음양오행설, 풍수지리학, 전술 지휘학이 총 망라되어 있다.

여성의 음부가 희다고 한 것은 그곳에서 나오는 체액이 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통상 인간의 국부는 붉은 색을 띠게 마련이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희다고 표현했다. 그것은 외형보다는 내면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흰 것은 서쪽이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풍수지리상 서쪽을 희다고 하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의 중앙에 '黃'이 있으며 동·서·남·북에 각각 청·백·주·현이 있다고 생각했다. 동서남북에 각각 청룡·백호·주작·현무라는 네 신이 있어 하늘을 지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사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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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본 여근곡 ⓒ 김대갑

백제군이 서쪽에 있다고 생각한 것은 옥문지에 개구리가 우는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개구리는 병사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남근을 상징한다. 그래서 백제군이 발기한 남성처럼 여성의 음부에 들어가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남근이 여성의 몸 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것은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사상이다. 양이 음에게 정기를 쏟으면 그 기운이 다한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마디로 선덕여왕의 분석은 전통 건축물의 목구조처럼 아귀가 딱 들어맞는 분석인 셈이다.

신성한 곳 혹은 불경스러운 곳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동시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 설화는 후대에 윤색된 흔적이 많이 보인다. 그 일례로 <삼국사기>에는 여근곡 전투가 5월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겨울에 옥문지에서 개구리가 울었다는 것과 맞지 않는 셈이다. 실제로 겨울에 개구리가 운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 이야기다. 결국 여근곡 설화는 선덕여왕을 신령스럽게 표현하기 위한 허구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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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에 볼 수 있는 뚜렷한 여근곡 ⓒ 김대갑

허구든 아니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근곡이 선덕여왕 이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 생김새의 묘함 때문에 시대에 따라 신성한 곳으로 혹은 불경스러운 곳으로 치부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를 이용하여 건천 IC로 나오면 건천읍에서 영천 가는 국도가 나타난다. 이 국도를 타고 조금만 가면 여근곡이라는 팻말이 나온다. 거기에서 좌회전하여 쭉 들어가면 여근곡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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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근곡 유학사 ⓒ 김대갑

여근곡은 가까이에서는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또 성하의 계절에는 뚜렷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제대로 된 여근곡을 보고 싶으면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가는 것이 가장 좋다. 여러 가지 나무와 계곡의 능선이 우연히 만들어낸 자연의 신비! 어쩜 저리도 여근을 닮았는지. 처녀의 귓불을 붉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총각의 마음을 민망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기하게도 이곳의 중앙에는 맑고 고운 샘이 있다. 물의 주성분이 알칼리성이라 마시면 시원하고 달다. 이 샘은 현재 여근곡 아래에 있는 신평리 주민들이 상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60년 전에 생겼다는 여근곡 유학사에서도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이곳 주민들은 여근곡의 정기를 그대로 마시고 있는 셈이다. 이 샘은 유학사에서 오솔길을 따라 5분만 걸으면 바로 만날 수 있다.

여성미 나타내는 산 많아

그런데 사실 여근곡은 건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은 노령기의 완만한 곡선인지라 그 능선 주변에는 물 흐르는 계곡이 많으며 여성미를 나타내는 곳도 군데군데 있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겹쳐져 있는 산골짜기들이 여성의 국부나 엉덩이, 가슴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우리나라 산의 특성인데, 여근곡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너무 노골적으로 여성의 국부를 닮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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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근곡 옥문 샘 ⓒ 김대갑

동해안에는 성기를 숭배하거나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마을이 몇 군데 있다. 삼척의 해신당이 그 대표적인데, 대개의 경우 남자의 성기를 모시거나 여서낭당에게 봉납하는 제의를 한다.

그런데 내륙지방에서는 여성기를 제의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충북 제천의 송학면 무도리에 가면 '공알바위'라고 불리는 특이한 자연물이 하나 있다. 공알은 음핵의 속된 이름인데, 공알 바위는 그 생김새가 여성 국부의 음핵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 약 150*100cm 크기의 알과 같은 바위가 커다란 돌 속에 있는데, 마을에서는 이 바위에 제의를 지내면서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한다고 한다.

또 경기 안양의 삼막사에 가면 여자의 성기를 그대로 닮은 바위가 야외에 전시되어 있어 보는 사람들의 낯을 뜨겁게 한다. 이밖에도 강릉시 위촌리에 가면 세 개의 바위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여자의 성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음양 조화 고려한 상징물 배치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 여자 성기 상징물 주변에는 반드시 그에 걸맞은 남자 성기 상징물이 있다는 사실이다. 공알 바위 옆에는 남근석인 선돌이 우람하게 서 있고, 삼막사의 여근석 주변에도 남자 성기가 버티고 있다.

강릉시 위촌리도 마찬가지여서 그 맞은편에는 개의 성기 모양을 닮은 숫바위가 힘차게 고개를 들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근곡에도 남자 성기가 하나 있다. 여근곡으로 인해 음기가 너무 센 것을 우려한 마을 주민들이 맞은 편 산을 남성 산으로 정해 여근곡과 짝을 맺어준 것이다.

이 모든 행위들은 결국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토속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풍요한 생산을 기대하는 민초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모든 생명의 창조는 음과 양의 결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민중들은 생활 속에서 터득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근곡은 생명을 잉태하는 귀중한 포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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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근곡 전망대 안에 있는 옥문지 모형 ⓒ 김대갑

신라 특유의 골품제도에 의해 여성으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 모란꽃의 향기가 없음을 파악하고, 자신의 장례지가 사천왕사 위에 있으리라고 예언한 그녀의 예지는 전설과 설화에서 신비롭게 그려지고 있다. 정작 그녀 자신은 여왕이라는 신분 때문에 일생을 고독하게 살았다는 사실이 묘하기도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뒤돌아 본 여근곡에서 포근한 기운이 퍼져 나온다. 복사꽃 향기가 여근곡 전망대 앞 불심지를 희미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박용이란 분이 사재를 털어 만든 여근곡 전망대에 가서 옥문지 모형과 재미있는 수석을 보는 것은 여근곡 여행의 또 다른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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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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