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창조하는 울주군 간절곶

영화처럼 재미있는 동해안 문화기행(34)

등록 2007.06.05 20:02수정 2007.06.0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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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에는 저마다 자기네가 가장 좋은 일출장소라고 자랑하는 곳이 많다. 드라마 <모래시계>를 촬영한 정동진은 드라마의 후광을 살려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장소라고 주장한다. 동해시의 추암해수욕장도 드라마 <겨울연가>를 찍은 곳이라고 자랑하면서 촛대바위와 만물상 등 볼거리가 많다고 호들갑을 떤다.

여기에 덩달아 포항의 호미곶은 연오랑 세오녀의 전설을 들먹이며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일출장소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출명소들의 소란스러움을 그저 말없이 지켜보면서 빙그레 미소 짓는 명소가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울주군에 있는 간절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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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탁 트인 간절곶 앞바다 ⓒ 김대갑

간절곶은 말이 필요 없이 숫자 하나를 제시한다. 2006년 해돋이 시각 오전 7시 31분 26초! 간절곶은 이 숫자 하나로 정동진과 호미곶을 간단히 제압한다. 그러면 다른 일출 명소들은 빠르다는 이야기는 쏙 빼고 경관이 아름답다는 쪽으로 슬며시 방향을 돌린다.

그러나 간절곶은 여기에도 지지 않는다. 일출이면 일출, 경관이면 경관, 어느 하나에도 뒤지지 않는다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 앞에서 나열한 일출명소들은 저마다 다른 특색이 있을 뿐, 어느 하나가 특별히 아름답다거나 빼어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동소이하다. 다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 느끼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평가를 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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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 야경 ⓒ 김대갑

어쨌든, 간절곶은 명확한 숫자를 제시했으니 분명 동해안에서 가장 빠른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그러나 해운대에서나 호미곶에서도 불과 수십 초 사이로 해가 떠오르니 가장 빠른 일출장소라고 주장하는 것도 별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저 은색 옥쟁반에 굴러가는 붉은 구슬로 동일하게 보일 테니까.

간절곶은 우선 그 이름의 유래가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곶이라 하면 육지가 뾰족하게 바다 속으로 돌출한 부분을 말하는데, 간절곶을 멀리서 보면 긴 간짓대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부들이 간절끝이라고 불렀으며 그 명칭을 한자로 표기해서 간절곶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 초에는 이길곶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넓다는 뜻이며 ‘길’은 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간절곶은 넓고도 긴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걸맞게 간절곶은 등대를 중심으로 서남의 넓은 땅과 동북의 긴 해안가를 두루 포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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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가득 안고 ⓒ 김대갑

일출의 명소답게 간절곶은 새해 초마다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엄청나게 북적거린다. 울주군에서는 이런 관광객들을 위해 해돋이 축제를 웅장하게 개최한다. 유명 가수의 공연과 갖가지 퍼포먼스, 불씨 채화 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여 관광객들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특히 2007년 새해에는 황금돼지상과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을 설치하여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이 두 개의 조형물은 철거된 상태다. 실제로 이 우체통은 편지를 배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뒤로 돌아가서 우체통 안으로 들어가면 전용 엽서가 무료로 비치되어 있는데, 이 엽서에 아름답고 소중한 사연을 담아 놓아두면 집까지 고스란히 배달해주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간절곶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바다와 아주 가까운 곳에는 동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세 모녀상이 하얀 몸매를 드러낸 채 소박하게 서 있다. 세 모녀의 눈동자를 가만 쳐다보니 바다 너머 미지의 세계로 간 어떤 이를 기다리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옆의 안내판을 보니 신라시대 박제상을 기다리다 돌이 되고 만 부인의 흉내를 낸 것이다. 조금 안 어울리는 조각상이긴 하지만 동해의 끝없는 심연을 바라보는 가여운 몸짓에서는 연민이 절로 올라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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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 등대 ⓒ 김대갑

세 모녀상이 연민을 불러일으킨다면 바로 그 옆에 있는 어부상은 해학적이면서 유쾌한 기분을 안겨준다.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어부 하나가 굳센 팔뚝을 힘차게 앞으로 내지르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마님을 사랑하는 돌쇠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일 잘하는 머슴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힘차고 쾌활한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도 유쾌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외에도 간절곶에는 웅장하게 생긴 철조각 작품이 감청색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거대한 화강석 거북상이 바다를 향한 모습도 있다. 또한 희고 고운 몸체를 의연히 드러내는 간절곶 등대도 있다. 재미있게도 등대 앞마당에는 고대 희랍의 등대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등대 옆에 있는 작고 귀여운 전시관에 들어가서 앙증맞게 전시된 등대 모형을 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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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따란 잔디밭에서 ⓒ 김대갑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간절곶의 백미는 언덕배기에 널따랗게 자리 잡은 잔디밭이다. 비스듬하면서도 수평지게 자리 잡은 잔디밭은 간절곶의 한적한 여유를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이다. 그 넓은 잔디밭에 우람한 자태로 서 있는 철조각품의 기품은 어찌 그리 의젓한지. 바다를 바라보며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안겨준 배려가 새삼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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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장승이라 ⓒ 김대갑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새해를 보겠다는 것은 새해에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그 희망에는 그리움도 있고, 안타까움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새해를 단순히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기를 창조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자신 앞에 닥친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개척하고 변화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일 것이다. 간절곶은 그 결연한 의지를 다지기에 더 없이 좋은 일출의 명소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의지를 보여주고,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간절곶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간절곶 #울주군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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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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