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 익어 떨어진 사과, 선총원

진정한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로 숭앙

등록 2007.05.17 18:01수정 2007.05.17 18:01
0
원고료로 응원
a 설익어 땅에 떨어졌지만 점점 가치 있고 아름답게 농익어 가는 선총원

설익어 땅에 떨어졌지만 점점 가치 있고 아름답게 농익어 가는 선총원 ⓒ 김대오

1996년 홍콩의 '야저우저우칸(亞洲周刊)'이 선정한 20세기 중국 최고의 소설 100선에서 1위는 '광인일기', '아Q정전'이 포함된 루쉰(魯迅)의 소설집 '외침'이 차지했으며 2위를 한 것이 바로 선총원(沈從文, 1902.12.28~1988.5.10)의 '변성(邊城)'이었다.

루쉰이 정치적으로 다소 영웅화된 측면이 있다면 선총원은 그야말로 문학적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선총원은 흔히 80% 익어 떨어진 사과에 비유되는데 그 뒤에는 늘 비록 설익어 땅에 떨어졌지만 점점 가치 있고 아름답게 농익어 결국 가장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최고의 찬사가 뒤따른다.

90년대 초부터 중국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선총원열풍'은 2002년 탄생 100주년을 정점으로 수그러들었지만 선총원은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잔잔하게 인간 본연의 감수성을 자극하면서 약한 듯하면서도 강한, 진정한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중국현대문학에서 선총원의 재발견은 현대화는 곧 ‘서구화’ 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성과 전근대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문학적 인식의 확대로 해석되며 중국현대문학이 ‘근대’에 대한 다양한 문학적 스펙트럼을 흡수하기 시작했다는 하나의 증거로도 이해할 수 있다.

선총원은 비록 정치적 현실과는 거리가 먼 곳에 몸을 두지만 늘 그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본연의 깊은 상처와 내면을 가장 문학적으로 그려냈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고통 받으면서도 직접적으로 현실과 대결하지 않으면서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현실을 비판해 낸 보기 드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선총원은 묘족으로서 본명은 선위에환(沈岳煥)이다. 1902년 후난(湖南)성 샹시(湘西)에서 태어나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황량하고 외진 작은 마을'에서 시골사람으로 살다가 1922년 베이징으로 상경한다.


초등학교 정도의 문화수준을 가진 그는 베이징대학의 전신인 옌징(燕京)대학 국문과 입학시험에서 0점을 받아 떨어지고 베이징대학에서 유명교수들의 수업을 도강하며 문학수업을 하고 '좁고 곰팡이 핀 작은 방'에서 살며 생계를 위해 힘겹게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필명 '從文'은 글을 써서 살아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벌레 냄새나는(蟲聞)' 그의 방에 대한 자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총원의 글에는 규범화되지 않은 원초적인 대자연과 같이 아름답고 심오한 미학적 깊이가 흐르고 있으며 그 기반 위에서 1934년 불후의 명작 <변성>이 완성된다. 선총원은 일생동안 중국 현대문학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80여 편의 작품을 남기는데 1930년대 후반이 문학활동의 최고 전성기였다. 주로 고향 샹시의 민간풍습을 배경으로 한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작품들이 많은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1948년 궈모뤄어(郭末若)로부터 '의식이 있다는 자가 줄곧 반동파로 활동하고 있다'는 혹독한 비평을 받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역사박물관에 배치 받아 중국의 문화와 역사연구에 종사하다가 1957년 결국 문학활동을 완전 중단하고 만다. 그 이후 선총원은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원으로서의 민속문화와 역사박물 정리에 몰두하고, 문화대혁명 등 격동의 시대에서 한 걸음 떨어진 채 살다가 1988년 5월 10일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사망한다.

결국 문학이 정치를 위해 복무하던 혁명문학의 시대가 선총원의 문학적 재능을 압살하고 말았으며 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이뤄지게 된다. 선총원은 시대를 등지고 살면서도 "새로운 위대한 시대의 도래가 이렇게 연약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단 말인가?" 등의 문학적 표현을 통해 시대를 비판했으며 또한 늘 자신이 시대 밖으로 배척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에 대한 좌절감과 불안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중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가오싱지엔(高行健)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2000년 12월7일)부터 중국에서 끊임없이 전해오는 뜬소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떤 선배 작가가 거의 노벨 문학상을 받을 뻔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인 마위에란(馬悅然,Goran Malmqvist)은 루쉰과 라오서(老舍), 파진(巴金) 등이 후보에 올랐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면서도 선총원은 확실히 1987년과 1988년 2년 연속으로 노벨 문학상 최종심사에 올랐었으며, 만일 그가 1988년에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그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선총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