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은 날마다 '죽은 자'들을 만난다

[서평]테스 게리첸의 <파견의사>

등록 2007.07.10 10:02수정 2007.07.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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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덤하우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세상에는 별의별 직업이 다 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이번에 읽은 <파견의사>는 부검의가 사건의 중심에 있다. 시체를 부검하는 직업이다. 거의 날마다 살인사건 현장으로 불려가서 시체를 들여다보고, 시체의 눈알에 주사바늘을 꽂아 체액을 뽑아내 사망시간을 추정해 내는 직업이 바로 부검의다.

'죽은 자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여자 부검의가 있었으니 바로 마우라 아일스 박사다. 늘 냉정하고 침착하고 흐트러지지 않은 태도로 죽은 자들과 은밀한 교감을 나눈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녀를 두려워한다.


부검대 위에 누운 시체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날 리도 없고, 가끔은 아주 처참한 몰골을 한 시체도 있기 때문에 부검에 입회하는 담력이 센 남자 형사들도 가끔은 속에 것을 죄다 게워내기도 하는데 아일스 박사는 조금도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파견의사>는 테스 게리첸의 의사시리즈 중의 하나다. 세 번째로 출간되었다. <외과의사>와 <견습의사>가 연쇄살인범의 엽기적인 연쇄살인을 다뤘다면 이번에 나온 <파견의사>는 좀더 스케일이 큰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전 소설들보다 더 짜임새가 있고, 이야기 전개도 흥미롭다.

보통 시리즈물의 경우 같은 주인공이 계속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테스 게리첸의 의사시리즈는 주요 등장인물은 같으나, 각 소설마다 포커스를 맞추는 주인공이 달라진다. 그래서 더 팽팽한 긴장감을 주면서 새로운 느낌을 안겨준다. <견습의사>에서는 여형사 라일리가 주인공이었다면 <파견의사>에서는 부검의인 마우라 아일스 박사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수녀들을 죽이려 했을까?

수녀원에서 수녀 두 사람이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다. 몽둥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20살의 젊은 수녀는 숨이 끊어졌고, 나이든 우르술라 수녀는 의식불명인 채 병원에서 질긴 목숨을 이어간다. 마우라 아일스 박사는 여형사 리즐리와 함께 사건 속으로 뛰어 든다.


젊은 수녀를 부검한 아일스 박사는 그녀가 사망하기 얼마 전에 출산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라일리 형사는 수녀원의 연못에서 사망한 아이를 찾아낸다. 누가 젊은 수녀에게 아이를 임신시켰으며,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처참한 꼴이 된 여자 시체 하나가 발견된다. 아일스 박사는 살해 현장에서 얼굴 가죽을 벗겨내고 손과 발이 잘린 시체를 확인한다. 시체는 얼굴과 손이 없기 때문에 신원 확인을 할 수 없다. 살인범은 왜 여자의 얼굴 가죽을 벗겨냈으며 손과 발을 잘라간 것일까?


여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면 손만 잘라가도 되는데 발은 왜 잘라간 것일까? 혹시 시체의 손과 발을 수집하는 엽기 살해범이 아닐까? 가끔 살인을 저지른 뒤 사체를 훼손해 '전리품'을 챙겨 가는 '또라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일스 박사는 부검을 통해서, 라일리 형사는 사건 추적을 통해서 살인사건의 중심으로 조금씩 다가간다. 그러면서 두 여자는 각기 연애사건에 휘말려든다.

<파견의사>에 등장하는 강철 이미지의 여주인공들은 어쩌면 하나 같이 연애는 젬병인지, 원. 아일스 박사는 바람을 펴서 이혼한 잘 생긴 전남편이 갑작스레 찾아오자 그냥 스르르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 일은 똑 부러지게 잘 하고 감정수습도 잘하는 여자가 어째 그 모양인지... 그 남자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깊이 따져볼 엄두는 내지도 않고 그냥 그 남자에게 푹 빠져 버리는 것이다.

그건 여형사 라일리도 마찬가지다. 남자형사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강철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남자 친구 앞에서는 사춘기 소녀처럼 감정 수습을 잘 못해 쩔쩔 맨다. 두 여자가 다 남자들에게 상처를 받을까봐 제대로 사랑도 못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리 강한 척 해도 여자는 별 수 없이 여자라는 건지, 아니면 그렇게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 건지, 그런 부분은 작가가 참 못마땅했다.

하지만 <파견의사>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의학추리소설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작가는 의사출신이다. 읽다보면 시체를 부검하는 대목이 가끔은 너무 적나라해서 몸서리가 쳐질지 모르지만, 실제로 보는 것이 아니니 현실감은 그다지 많이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내용도 많이 읽다보면 익숙해지기도 한다.

요즘 출간된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점점 내용이나 소재가 식상해져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테스 게리첸이 그런 생각을 바꿔 주었다.

파견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3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테스 게리첸 #파견의사 #견습의사 #마우라 아일스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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