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월급 모아야 한국행, 전파는 한순간

[자전거세계여행 쿠바 6편] 7월 1일~3일 쿠바에서 산다는 것

등록 2007.07.23 14:10수정 2007.07.2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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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자전거여행 지도(그림을 클릭하시면 지도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7년 7월 1일 일요일 맑고 더움. 저녁 비.

이 지역 집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물과 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집 뒤 마당에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호수가 있는 집, 졸~ 졸~ 시원한 소리를 내며 앞마당 쪽을 가로질러 가는 개울가가 있는 집, 큰 아름드리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집 등. 자연을 다른 모습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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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나무와 함께 사는 사람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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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야쿠아자이(YAGUAJAY)라는 소도시에 도착했다. 일요일이라서 교회에 가기 위해서 인근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위치를 가르쳐 준다. 십자가도 보이지 않는 페인트칠을 기다리고 있는 집 문을 두드렸다. 아이가 나오고 잠시 후 카를로스 목사님이 나왔다. 여기는 오순절세례교회(Pentecostal)라고 한다. 1956년에 쿠바에 들어왔고 80개의 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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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을 알리는 표지판. 너무 간단하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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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건물 같지 않는 교회 외부 모습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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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한 교회 내부 모습 ⓒ 박정규


소나기가 제대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금 정전이 되었다가 다시 들어왔다. 카를로스가 스페인어 회화 책을 보고 있고 사모님은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 중이다. 카를로스의 아들에게 대금 부는 법을 가르쳐 주자 신기해하며 재미있어한다. 30분도 안 되어서 소리를 낸다. 역시 아이들이 빨리 배운다.

다들 플루트가 아니냐고 한다. 이건 한국 대나무로 만든 "대금"이라고 말해주었다. 사전에는 "large transverse bamboo flute(가로로 부는 큰 대나무 피리)"라고 나와있고 "속이 빈 대롱에 구멍을 뚫고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의 총칭"이라고 하니까 플루트가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에서 왔나요? 아니요! 서울에서 왔어요! 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다."

카를로스가 또 스페인 회화 책을 한참 보더니 숨은 그림 찾기에서 마지막 그림을 찾은 것처럼 흐뭇해하며 한 문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는다.

"여기에 잘 왔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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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목사 가족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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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위해 특별히 고기 반찬이 올라왔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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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이 즐겨먹는 딱딱하고 푸석푸석한 빵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7월 1일

1. 이동경로
SANTI SPIRITUS SAN Jose Del Lago-SANTI SPIRITUS SAN YAGUAJAY

2. 주행거리
50km / 4시간

3. 사용경비: 14페소 / 환율 1$=1CUC=24페소
Perro caliente1개: 2페소, Pan Tortilla 1개: 2페소
캔 콜라 1개: 10페소

4. 음식
점심: 햄이 들어있는 빵 1개, 계란이 들어있는 빵 1개, 캔 콜라 1개
저녁: 밥, 돼지고기 요리, 고기스프, 음료수, 튀김 등
간식: 물 3리터


2007년 7월 2일 월요일 맑고 더움. 저녁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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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나무가 있는 길은 너무 좋다. ⓒ 박정규


휴우… 오르막길이 제법 많았다. 그래도 산 내리막길이 한번에 시원하게 뻗어있어 신나게 내달렸다. 1시간만 더 가면 산타 클라라에 도착할 것 같다. 얼굴이 조금 화끈거리고 조금 지친다.

할아버지 라이더의 리듬에 맞춰서 함께 쉬고 있다. 쌀집 자전거에 하얀 마대를 2개나 매달고 하얀 머리카락 위에 둥그런 챙이 있는 하얀 모자를 쓰고 연한 푸른빛이 맴도는 하얀 와이셔츠를 풀어헤치고 하얀 바람 속을 향해 내 달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맴돌고 할아버지를 쫓아가는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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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할아버지 라이더.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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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1페소, 1.5페소, 2페소 아이스크림 ⓒ 박정규


나는 할아버지를 쫓아가고 먹구름은 허락도 받지 않고 날 쫓아왔나 보다. 산타 클라라에 도착하자마자 소나기를 뿌려대고 있다. 잠시 주유소에서 비를 피하다가 그칠 것 같지 않아 빗속을 뚫고 시가지로 들어갔는데 길을 못 찾겠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인근의 교회 위치를 물어보고 그리로 갔더니 옆에 서 있던 청년 라이더가 문을 닫았다고 알려준다. 갑자기 "방~"이라고 말하며 작은 명함을 보여주는데 민박집 그림이 있다. '민박집 홍보요원'인가 보다.

먼저 인터넷을 하고 싶다고 하자 인근의 텔레푼토(TELEPUNTO; 인터넷카페)로 안내했는데 역시나 노트북 사용, USB사용이 되지 않는다. 직원이 인근의 큰 호텔로 가보라고 했다. 그 호텔에서는 다시 텔레푼토로 가보라고… 400~500km를 달리고 달려 마침내 인터넷을 하나 했더니…. 그냥 하바나에 가서 하기로 하고 이제 생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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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볼 수 있는 홍보용 벽화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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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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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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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민박집 가격 문의를 하니 20페소라고 해서 15페소로 하자니까 여기는 그 가격대가 없다고 한다. 계속 15페소를 부르자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홍보요원이 "있다!"고 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난 민박집으로 안내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결국 다음날 눈을 떴다.

희망일지 현장수첩-7월 2일

1. 이동경로
SANTI SPIRITUS SAN YAGUAJAY‐SANTA CLARA

2. 주행거리
90km / 7시간

3. 사용경비: 7.50페소 / 환율 1$=1CUC=24페소
아이스크림 3개: 4.50페소, 피자 1개: 3페소

4. 음식
아침: 다진 고기 들어간 빵 2개, 망고주스 2잔
점심: 피자 1개
간식: 물 4.5리터, 아이스크림 3개

5. 신체상태
얼굴이 화끈거리고 오른쪽 발바닥이 조금 아프다.


2007년 7월 3일 화요일 맑고 더움. 저녁 비.

희망일지가 뜨겁다. 파란 와이셔츠 입은 라이더가 서툰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2km 가면 자기 집이 있는데 물이나 한 잔 하고 가라고, 당연히 대답은 OK. Noel이 집 마당에 20m는 될 것 같은 큰 안테나를 보여주면서 '라디오'라고 말했다. 방 안의 라디오 방송장비를 보여주며 CO6TY 채널을 방송하고 있다고 한다. '충남 서산시' 주소가 적힌 카드를 보여주며 여기서 방송을 하면 그쪽으로 방송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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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 집 가는 길 ⓒ 박정규


우-웅- 잡음 소리와 함께 '양키- 양키-' 여러 번 말하니 상대방에서 대답을 하고 무슨 번호를 불러주자 Noel이 부지런히 받아 적는다. 짧게 방송을 마치고 방송을 내보낸 나라들의 카드를 보여주는데 40~50개국은 되겠다. 내가 한국에 방송을 좀 해보면 안 되겠냐고 하니까 벽에 자격증을 가리키며 저게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고 웃으며 거절했다. 알고 보니 10년 전에 Noel 부부는 '아마추어 무선사(radio ham)' 시험에 합격해서 방송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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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방송장비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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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카드 ⓒ 박정규


직업이 전기기술자라 그런지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았다. 여기는 팬티엄4가 1200CUC, 팬티엄2, 3는 600~700CUC, 선풍기는 40CUC, 작은 냉장고는 300CUC, 칼라TV는 250CUC, 흑백은 70CUC, 큰 거는 600~700CUC라고 하며 한 숨을 짓는다. 자기는 하루에 50페소를 벌고 경찰은 한 달에 300~400페소, 농부는 하루에 10~30페소, 작가, 공증인, 연예인, 의사, 변호사는 많이 번다는 점은 한국이랑 비슷한 것 같다.

한국에서 쿠바까지 오는 항공료 가격을 물어본다. 조금 줄여서 1000CUC라고 했다니 "불가능"이라며 아쉬워한다. 일반인의 월급이 300~500페소(20~30CUC)인데 3년 동안 돈을 모아야 대한민국 하늘 위로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1년만 부지런히 일하면 쿠바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로든지 날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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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계를 고쳐주는 Noel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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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하는 척 하고 있는 필자 ⓒ 박정규



희망일지 현장수첩-7월 3일

1. 이동경로
SANTA CLARA‐ SANTA CLARA Santo Domingo

2. 주행거리 40km / 5시간

3. 사용경비: 372.75페소 / 환율 1$=1CUC=24페소
어제 숙박료: 360페소, 햄 들어간 빵 1개: 3페소, 아이스크림 4개: 4페소
FRITURA DE HARINA 2개: 2페소, 음료수 1잔: 1페소

4. 음식
아침: 커피, 우유 1잔, 햄 들어 있는 빵 1개
점심: FRITURA DE HARINA 2개, 음료수 1잔
저녁: 콩 요리와 밥, 고구마 삶은 요리, 고기 다진 요리, 바나나 튀김
간식: 물 3리터, 아이스크림 4개, 커피 1잔, 마디드(망고,우유,설탕)3잔, 오렌지 1개

5. 신체상태
여전히 모기자국이 가렵다.
#자전거여행 #쿠바 #산타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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