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국가 경영과 21세기 신문명” 학술대회 모습김영조
5월 14일에 있었던 국립국어원과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주최의 “세종의 국가 경영과 21세기 신문명” 학술대회에서 작은 다툼이 있었다. 그것은 동북아시대위원회 배기찬 기획실장이 “세종은 외교안보정책을 어떻게 펼쳤나?”란 제목의 발표에서 “세종임금은 명에 지성사대(至誠事大)를 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몇몇 토론자와 청중이 반발을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아는 세종은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리고 자주적인 임금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명에 지성으로 사대했다니 모두가 깜짝 놀랐던 것이다. 정말 배 실장은 세종을 사대주의로 본 것인가?
지성사대로 볼 수 있는 예를 그는 여러 가지를 들고 있다. 먼저, 세종실록 25권, 6년(1424년) 9월 2일자 기록을 보면 “임금이 상복을 사흘 만에 벗지 않고 27일의 제도를 실행하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신하들이 홍무제의 유조에 “천하의 신민들은 3일 만에 복을 벗으라”라고 했다며, 반대했지만 세종은 군신의 의리를 내세워 27일 동안이나 상복을 입었다.
또 명은 여러 차례 1만에서 3만 마리의 진헌마(進獻馬, 중국 황제에게 바치던 말)를 바치라고 요구한다. 이에 국방력 약화를 우려한 신하들의 반대에도 “지금 만일 칙서를 따르지 아니하고, 말의 숫자를 채우지 못한다면 오해할 우려가 있다. 조선은 예부터 예의의 나라라고 하여 정성껏 사대하였다”라며 명에 말을 보냈다. 그뿐만 아니다. 세종 14년에는 농업국가의 중요한 자산인 소 1만 마리를 달라는 명의 요구를 수용하기도 했다.
단순히 이런 세종의 행적만 보면 분명 ‘지성사대’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과연 세종이 명을 끔찍이 사대하여 그렇게 했을까? 물론 배 실장은 세종을 단순 사대주의자로 본 것은 아니다. 그는 지성사대의 효과로 선진문물을 수입할 수 있었고,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명에 복속한 여진족을 정벌할 때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성사대는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일까?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위한 고도의 전술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