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인턴은 '화려한 휴가'다

오마이뉴스와 함께 떠났기에 더욱 값졌던 한 여름, 6주간의 휴가

등록 2007.08.11 15:43수정 2007.08.1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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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6기 인턴 12명의 단체사진. ⓒ 최재인

이상하다. 어젯밤, 마지막 단체 회식을 할 때까지도 인턴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평소처럼 6시 30분께 눈이 떠진 오늘 아침에도 부랴부랴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한쪽 어깨에는 노트북 가방을 들쳐 매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준비를 마친 나는 책상에 걸터앉아 '마지막 숙제'를 하고 있다. 기분이 참 이상하다. '휴가'가 끝난 것이 아쉬워 휴가를 떠났던 그곳에 좀더 머무르고 싶어 하는 기분이랄까? 내일도, 모레도 휴가가 계속될 것 같고 또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지막 숙제'를 하는 이 순간에 휴가, '오마이뉴스 인턴'이 이제 끝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 '화려한 휴가'일까?

먼저 밝히자면, 이 글은 영화 <화려한 휴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렇지만 오마이뉴스 인턴을 '화려한 휴가'에 빗대어 표현하기에는 1980년 5월, '그 날'의 잔인했던 역사가 떠올라 경건해지고 조심스러워지는 면이 있다.

1980년 5월, '그 날'의 작전명이자 영화 제목이기도 한 '화려한 휴가'는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처럼 처절하고 비참했던 당시의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두 개의 제목은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국가가 겨눈 총부리에 죽어나가고 설렁탕을 먹고 싶다던 아픈 아내가 설렁탕을 사가지고 들어간 날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던 상황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나에게 오마이뉴스 인턴이 '화려한 휴가'인 이유는 말 그대로, 6주라는 시간이 그동안의 일상에서 벗어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로 떠났던 '여행' 같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와 함께 했기에 다른 어떤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오마이뉴스 인턴은 '화려한 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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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6기 인턴 12명이 함께 한 첫 회식 ⓒ 최재인

오마이뉴스와의 첫 단추

오마이뉴스 인턴을 시작하기 3개월 전부터 시민기자 활동을 했었다. 그래서 나에게 오마이뉴스는 '인턴기자'와 '시민기자'라는 말을 생략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언론사다. '인턴기자' 역시 '시민기자'라는 말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여백과 제목도 없이 A4용지 두 장을 줄줄이 채워서 쓴 '볼품없는'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도 인턴지원에서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민기자로 활동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형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두 페이지 자기소개서를 당당히 제출할 수 있었던 무모한 자신감이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2007년 4월 15일, 택시노동자 허세욱 열사가 돌아가시고 다음날 '또 하나의 전태일을 떠나보내며'라는 기사를 썼다. 일기를 쓰듯 써내려간 '기사'라고도 볼 수 없는 글이 잉걸에 채택되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핸드폰 문자를 보내서 내가 쓴 글이 기사가 됐다고 자랑했다. 비록 마우스 스크롤을 제일 아래까지 굴려야 볼 수 있고, 심지어 그것도 재빨리 보지 않으면 어느새 목록에서 사라져 버리고마는 '잉걸'이었지만 굉장한 보람이었다.

그리고 같은 날 민주노동당 노회찬 예비 후보의 '또 한 사람의 전태일을 보내며'라는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에 등재되었다. 제목이 거의 똑같았다. 기사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제목도 비슷한데 왜 내가 쓴 건 잉걸이고 노회찬이 쓴 건 메인톱이야?'는 생각을 했다. 바로 기자회원게시판에 기사배치에 관해서 의문이 든다는 글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나와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확신하건대, 시민기자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난 결코 오마이뉴스 인턴지원에서 합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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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이화여대 후문의 타워크레인 점거농성 현장. 인턴기자의 첫 현장취재였다. ⓒ 최재인

오마이뉴스가 준 잊을 수 없는 감동

시민기자 활동을 하던 3개월 동안 생나무를 제외하고 22개의 기사를 썼다. 거의 다 대학에서 생긴 일 혹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인터뷰와 취재를 하지 않고도 쓸 수가 있었다. 같은 과 후배, 동기들을 취재원으로 삼아 인터뷰를 짜내려고 했던 일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인턴 교육과정을 통해 기사 작성하는 요령과 인터뷰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 교육기간이 끝난 뒤에는 실제로 기사를 쓰면서 취재하는 법을 몸에 익혔다. 선배 기자들을 따라 현장에 나갔더라면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을 테지만 대신 동기들과 함께 기획하고 취재하면서 팀워크의 소중함을 알았다. 그리고 '리드'도 모르던 내가 이틀, 사흘 공들인 끝에 출고한 기사의 조회 수가 천 명, 이천 명 올라갈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과 감동을 느꼈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점거농성 현장을 취재하고 그 날 밤 바로 기사를 작성했다. 첫 현장 취재기사였다. 그런데 기사를 송고하기 직전, 건설노조와 사측과의 협상이 타결되었다. 파업 57일, 목숨 건 점거농성 끝에 이뤄낸 타결이었다. 기뻐해도 모자랄 그 순간 허탈감을 먼저 느꼈다.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져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결국 내가 쓴 기사는 '인턴기자 첫 현장 취재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쓰였다. 협상이 이뤄짐으로써 당연히 묻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사가 '나의 첫 메인톱 기사'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기자'에게 자기가 맡은 취재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느낄 수 있었던 최고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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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여 회의실 앞 복도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주현(22), 한내(23), 미정(26), 나(23) ⓒ 최재인

다시 찾은 꿈

'기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을 읽고나서부터 가져온 막연한 꿈에 불과했다. 대학에 와서는 사회와 연결된 끈을 놓지 않고 살기 위해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작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높은 토익 점수를 받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상식'을 줄줄이 꿰기 위해 스터디를 해야 하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다.

본격적으로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할 것인가, 전공을 살려서 임용시험을 치를 것인가…. 그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오마이뉴스를 만났다.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 '내가 쓴 글이 기사가 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인턴기자 활동을 하면서 '나도 노력하면 기자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찾게 되었다.

나의 꿈을 찾고, 그 꿈에 한 발 다가섰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얻은 기분이다. 같은 꿈을 향해 걸어가는 12명의 동기들을 만난 것도 정말 큰 힘이 된다. 사범대를 다니면서 취업문제를 얘기할 때면 언제나 외톨이였던 내게 꿈을 이야기하고 그 꿈을 향해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기자'라는 나의 꿈을 지켜주는 커다란 성이고, 선배 기자들은 길을 밝혀주는 불빛이 될 것이다. 그리고 6주간의 인턴 경험은 앞으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양식이 될 것이다. 미련과 아쉬움은 크게 없다. 대신 두고두고 돌아보며 기억하게 될 다시 없을 '화려한 휴가'로 남을 것이다. 언제가는 내 일상이 될 '화려한 휴가'.

덧붙이는 글 | 최재인은 오마이뉴스 6기 인턴기자 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최재인은 오마이뉴스 6기 인턴기자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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