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인턴은 '핑크색 티셔츠'다

발칙하게 상상하고 거침없이 취재한 6주간의 활동기

등록 2007.08.13 16:56수정 2007.08.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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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인턴기간 동안 '분홍색 티셔츠'를 즐겨입었던 나.(맨 오른쪽) 옆으로 김귀자 인턴기자, 김미정 인턴기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 최재인

대학생 시민기자로 활동하던 2007년 6월 27일. '뉴스게릴라본부'로부터 부름이 떨어졌다. 7월 2일까지 본부로 모이라는 소집통보였다. 본부에서 내게 부여한 새로운 역할은 <오마이뉴스> 6기 인턴기자였다. 갑작스런 소식에 세상을 향한 내 가슴은 더욱 '쿵쾅쿵쾅' 요동쳤다.

하지만 본부로의 출근 첫날, 생활현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니던 것이 익숙했던지라, 6주간 새로운 정착생활은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어색함을 달래보고자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즐겨 입었던 '핑크색 티셔츠'를 끄집어 들었다. 색깔이 워낙 튀고 밝아서 자칫 모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지만,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세상을 향한 톡톡 튀는 감수성을 소중히 간직하고자 조금 고집을 부렸다.

걱정과는 달리 뉴스게릴라본부 사람들은 '정장'을 입지 않았다. 나 같이 밝은 색상의 옷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정형적인 유니폼을 벗어던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입고 간 '핑크색 티셔츠'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그곳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뉴스게릴라본부에서 내린 지령은 '창의'와 '도전'

"형식을 파괴하라. 더 쉽게, 더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발칙하게 상상하고 거침없이 취재한 도발적인(sexy) 기사에 도전하라."

6기 인턴기자들에게 게릴라본부에서 내린 지령은 파격적이었다. 그동안 기사라고 하면 신문에서 보던 정형적인 것에 익숙해 있던 터라, 형식 파괴하고 새로운 상상으로 무장하라는 본부의 지령을 몸소 숙지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2주간의 지령숙지 교육은 기자에 대한 가치관을 재설정하고 참신한 기사를 위한 기본기를 다져야 했기에, 조금은 고달픈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후 인턴기자들은 세상 속으로 보내졌다.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각종 이슈의 중심에 서서 본부로부터 그동안 교육받은 '지령'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정치부로 배치 받아 한동안 국회출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나와 같이 '핑크색 티셔츠'를 즐겨 입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핑크색의 모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회색빛 정장, 정형적인 말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만 반짝반짝 빛나던 '금색 배지'만이 무거운 색깔의 정적으로 깨고 있었다.

인턴생활의 느낌? 발칙한 도발+핑크빛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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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인턴기자 시절 항상 가지고 다니던 '국회출입기자증'. ⓒ 손기영

'창의'가 가로막힌 공간에서 답답해 하던 내게 정치부장은 새로운 지령 하나를 내렸다. 바로 항상 목에 걸고 다녔던 '국회출입기자증'을 잠시 벗어버리고 다시 대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딱딱한 정치적 현실을 '핑크빛 감수성'으로 취재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정치부 선배기자들과 함께 난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지역 한나라당 후보 합동연설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곳곳에는 열성당원들의 모습과 함께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이날도 어김없이 '핑크색 티셔츠'를 입고 취재를 나갔다. 난 연설회에 참여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보수적인 대학생의 감수성과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기자의 직함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방법의 취재에 도전한 것이다.

처음에는 난관이 많았다. 초면인 사람이 자꾸 다가와서 말을 거니깐 나를 '선관위 감시단'으로 오해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연설회에 참여한 한나라당 지지 대학생들은 내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자신이 한나라당 모 후보를 지지하게 된 사연부터 학교생활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까지 2~3시간 가량 연설회를 함께 지켜보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대학생들의 생각과 감수성을 잘 담은 기사도 쓸 수 있게 되었다. 형식을 파괴한 취재에 작은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부서 생활을 마치고 다시 뉴스게릴라본부로 돌아 온 뒤부터는 인턴동기들과 '기획취재'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발칙한 상상과 이를 통한 거침없는 취재가 더욱 가속을 붙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기획취재가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상 최초로 시도한 왕년의 복싱스타 문성길· 백인철씨와의 '링 위 취중토크'였다.

"이종격투기 난 좋다, 난 싫다"로부터 시작해 "이종격투기 도대체 왜 인기일까"를 지나 "우리나라도 과거엔 투기종목 강국이었는데…, 특히 권투는…"으로 전개된 생각은 갑자기 백열전구를 번쩍이며, 왕년의 권투스타 문성길씨와 백인철씨를 링 위로 다시 초대하자는 발칙한 상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왕년의 두 복싱스타의 기쁨과 환호 그리고 아픔이 서려 있던 '사각의 링'은 상징적인 장소였고, 함께 곁들여진 소주 한잔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준 소도구였다. 문성길씨와 백인철씨는 전성기 이야기를 꺼내면 철없는 아이처럼 마냥 좋아했고, 은퇴 후에 아픔과 한국복싱의 현실을 이야기할 때는 벌컥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과의 솔직 담백한 '링 위 취중토크'는 평생 잊지 못할 인턴시절의 소중한 추억이었다.

앞으로도 핑크색 티셔츠는 '뽀빠이의 시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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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왕년의 복싱스타 문성길, 백인철씨와의 '링 위 취중토크'. ⓒ 한서형

보통 인턴활동하면 그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필요한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형식이 필요하고 그 형식 안에 사람들의 생각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과 도전의식은 무뎌지게 된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활동을 하면서 이 같은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형식'과 '방법'의 안락함에 기대려다 질책당한 적이 더 많은 것 같다.

뉴스게릴라본부에서 있었던 6주 동안 내 '핑크색 티셔츠'는 두 벌이 되었다. 처음에 산 핑크색보다 더 진한 '진분홍 티셔츠'를 샀기 때문이다. 모난 핑크색 옷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 그리고 이러한 독특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의 엉뚱한 생각을 환영하는 곳이 바로 <오마이뉴스>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인턴 시절과 같이 다시 시민기자로 돌아가서도 '분홍색 티셔츠'를 즐겨 입을 것이다. 발칙한 상상과 거침없는 도전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꺼내 들 '뽀빠이의 시금치'처럼….

덧붙이는 글 | 손기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입니다.

덧붙이는 글 손기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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