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의원님, 기륭 노동자들 살려주십시오

[공개서한] 단식 52일 넘긴 여성들, 내치실 겁니까

등록 2008.08.02 18:11수정 2008.08.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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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와 종교, 사회단체 대표단이 1일 오후 여의도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앞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 농성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와 종교, 사회단체 대표단이 1일 오후 여의도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앞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 농성을 하고 있다. ⓒ 유성호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님,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이 죽어갑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입니다. 오늘 8월 1일,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이 3당 원내대표를 만나러왔다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다 만났는데 홍 대표님만 만나지 못하고 삼엄한 경비에 가로막혀 방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국회 본회의장 복도에서 홍 대표님을 기다렸습니다. 

 

홍 대표님, 지난 5월 말 원내대표 되시고 처음 뵈었을 때, 제가 드린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17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으로서 코스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청문회 하신 기록을 인상 깊게 보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진심이었습니다. 청문회 속기록에 매우 정확하게 문제의 실상이 밝혀져 있었습니다. 특별히 홍 대표님께서 환경노동위원장으로서 사측의 불법파견을 지적하고 대표이사를 위증죄로 고발까지 하신 것에 감탄했습니다.

 

그만큼 관심과 식견을 가지고 계신 분이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되신 만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홍 대표님께선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 때 제가 환경노동위원장으로서 국회가 할 수 있는 권한을 모두 행사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천영세 대표님을 비롯한 민주노동당 선배 의원님들도 홍 대표님이 환경노동위원회를 합리적으로 운영하셨다고 말씀하셨고, 기대를 표하셨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겠다는 연설, 기억합니다

 

홍 대표님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는 코스콤 문제보다 더 오래 끌어온 일입니다. 이분들이 한뎃잠을 자기 시작한 지 이미 1000날 밤이 지난 지 오래입니다. 대표님께서도 사정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리 말해도 사측이 교섭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말로 해서 안되니 두 차례나 고공농성을 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회사측이 교섭자리에 나왔고 6월 7일, 자회사를 만들어 교육 후 1년 뒤에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대표이사와 이야기가 잘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직원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대표이사는 다 된 밥에 코를 풀어버렸습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애써도 교섭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자, 이분들이 7월 10일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을 찾아왔습니다. 홍 대표님은 6월 7일 교섭에 기초해서 노사간에 교섭해나가겠다고 서명한 바로 그 순간에 원내대표실로 들어와 기륭 여성노동자들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7월 14일, 홍 대표님의 원내대표연설을 기억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기대했습니다. 기륭문제 중재도 시작하셨고 일시 노사간 교섭에 부침이 있더라도 홍 대표님께서 손을 잡아주신 만큼 계속 원만히 중재해나가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지난 7월10일 오후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기륭전자 노사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단식 30일째인 오석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원, 배영훈 기륭전자 대표이사,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 김성태 한나라당 국회의원. ⓒ 선대식

지난 7월10일 오후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기륭전자 노사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단식 30일째인 오석순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원, 배영훈 기륭전자 대표이사,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 김성태 한나라당 국회의원. ⓒ 선대식

 

7월 23일 내놓은 후퇴한 교섭안, 실망입니다

 

부럽기도 했습니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한 번 나서니까 회사도 오고 서울지방노동청장도 오고 도장 찍는구나, 진짜 힘이 있기는 있네' 생각했습니다. 지난 번 인사차 오셨을 때는 스스로 해낸 일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한편, 코스콤 기륭 문제 실제로 해결되도록 노력해달라는 제 이야기에, "위증 고발한 것 말고 문제 자체를 해결할 권한은 국회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으시더니, 실제로 원내대표가 되고 나니 전의 말씀과는 달리 힘을 쓰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7월 23일, 저는 다시 놀랐습니다. 홍준표 원내대표님이 노동자들은 배제한 채 기륭전자 최동렬 회장과 서울지방노동청장만을 따로 만나 안을 만들어내셨는데, 자회사를 세워 1년간 교육한 뒤 간담회를 해서 정규직 고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합의수준에서 크게 후퇴한 안입니다. 홍 대표님은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을 날리신 법률가이십니다. 법조계에서 10년 일한 저보다 경륜이 높으십니다. "1년 뒤 정규직으로 고용한다"와 "1년 뒤 간담회를 해서 정규직 고용 여부를 결정한다"의 차이가 무엇인지 법률가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압니다. 1년 뒤 간담회를 해서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 아닙니까.

 

교섭하다가 교섭안이 후퇴하는 경우도 있답니까. 조정과 중재는 법률가의 기본 업무입니다. 한 번 내놓은 안은 철회하지 않도록, 오히려 조금씩 당사자가 더 양보하도록 하는 것이 조정의 기술입니다. 조정의 원칙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결코 한 쪽 이야기만 듣고 그 안을 상대방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조정하시려면 따로 따로 이야기하더라도 양쪽을 다 불러다놓고 의견을 들어가며 조정안을 만드셔야 맞습니다. 법률가에게 이것은 상식입니다.

 

원내대표님이 노동자들 만나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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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와 종교, 사회단체 대표단이 1일 오후 여의도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앞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 농성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와 종교, 사회단체 대표단이 1일 오후 여의도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앞에서 홍준표 원내대표의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 농성을 하고 있다. ⓒ 유성호

7월 23일 이후 일어난 일을 알고 계십니까? 노동청장과 사측은 바로 홍 대표님이 만들어준 안, 정규직 고용이 약속되지 않은 안을 노동자들에게 내놓으면서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교섭은 끝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사측은 경찰에 쫓아가 50일 동안 단식중인 여성노동자들을 빨리 사법처리하라고 요구했고, 경찰은 건조물침입죄로 체포영장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이 밥을 굶은 지 벌써 52일째입니다. 양쪽으로 이분들은 사지에 내몰려있습니다.

 

급기야 어제는 검은 관을 옆 자리에 가져다놓았습니다. 저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어쩌자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절규를 끝내 거절하고 몰아세우는 것입니까.

 

파견근로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기륭전자같은 일반 전자제품 제조업은 불법파견이어도 사용자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만 내면 아무 책임 없도록 되어 있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관악지방노동사무소가 불법파견이니 개선계획을 내라고 시정명령했지만, 사측은 "불법파견이 문제되면 모두 진성도급화하겠다"고 깔아뭉갰습니다.

 

실질적인 개선계획이 끝내 나오지 않자 최후에 사측에게 돌아온 형벌이 고작 벌금 500만원입니다. 참 대단합니다. 불법파견이면 바로 정규직으로 본다고 법에 똑똑히 써넣었어야지요. 이런 규정도 없이 구멍이 숭숭 뚫린 법으로 불법파견을 어찌 없앤답니까? 정말 답답한 법입니다.

 

기왕에 사측을 만나셨던 홍준표 원내대표님이 이번에는 노동자들을 만나서 공정하게 중재해주시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입니다. 교섭이 꼬여버렸습니다. 손을 잡아달라고 온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에게 칼을 들이댄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한 발 물러나버린 사측을 원래의 교섭 수준으로 돌아오게 해서 도장을 찍으려면, 홍 대표님이 나서주셔야 합니다. 조정에 나서서 사측 안까지 만들어주셨으니, 그 과정에서 잘못을 바로잡을 책임도 권한도 홍 대표님에게 있습니다.

 

기륭 여성노동자들을 살려주십시오

 

홍 대표님, 그런데 어제 7월 31일 오후, 기륭전자에 다녀온 조배숙 의원님, 김상희 의원님과 저와의 짧은 면담에서 하신 말씀은, 더 이상 할 것이 없고 하지도 않겠다는 것이셨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해줄 것 다 해줬는데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노조를 탓하셨습니다. 이런 냉정하고 차가운 말로 단식 52일을 넘긴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을 내치실 것입니까?

 

저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께 큰 빚을 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분들이 행여나 의식을 놓아버리기라도 하면, 영영 못 돌아올 길로 가버리기라도 하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때, 나머지 삶이 이 순간의 단식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무너져버릴 수도 있는 이 순간에, 누구라도 손을 잡고 옆에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굳이, 이 밤에 급히 홍 대표님께 이 편지를 씁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이 여성노동자들이 미우세요? 귀찮으세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홍 대표님은 바로 20일 전에, 이분들의 손을 웃는 얼굴로 잡아주시지 않았습니까. 문을 열고 이분들을 만나주십시오. 그래서 제대로 된 조정을 시도해주십시오. 아무 것도 안하고 손놓고 있어도, 사측 입장만 대변해도 질타 한 번 받지 않는 서울지방노동청장도 다시 불러주십시오.

 

노동자들이 집권여당 원내대표실 몰려오기 전에 노동청에서 알아서 제 때 조정해야할 것 아니냐고 호통도 쳐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늘 한나라당과 맞서는 민주노동당 의원의 편지라서 거북하십니까? 홍준표 대표님 낯 깍아내리려고 이러는 것 아닙니다. 기륭 여성노동자들을 살려주십시오. 죽게 버려두지 마십시오. 홍 대표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2008.08.02 18:11 ⓒ 2008 OhmyNews
#기륭전자 #비정규직 #이정희의원 #단식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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