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동양평화를 위하여 일본군 포로를 풀어주다

[영웅 안중근 6] 첫째마당 -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다

등록 2010.09.19 12:38수정 2010.10.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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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루비노 항

a 자루비노항 항구로 시설이 몹시 빈약했다.

자루비노항 항구로 시설이 몹시 빈약했다. ⓒ 박도


11:30 눈을 떠보니 밖은 환한 대낮이었다. 객실 창으로 보니까 육지가 보였다. 그 육지가 북한인지 러시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카메라 망원렌즈로 보니까 앵글에 잡힌 마을 풍경이 북한 같지는 않았다. 몇 해 전 평양에서 묘향산으로, 그리고 삼지연에서 백두산까지 차를 타고 가면서 북한 산하와 마을들을 유심히 살핀 적이 있기에 그로 미루어 보면 그곳은 이미 북한 땅은 지나친 듯했다.

멀리서나마 청진 나진항을 비롯하여 두만강 어귀도 보고 싶었는데 그만 모두 놓쳤다. 하지만 이곳을 자주 오가는 승객들의 말로는 최근에는 항로가 뭍에서 더 먼 공해상으로 변경하여 북녘 산하를 바라볼 수 없고 항로 시간도 한두 시간 더 걸린다고 했는데 그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이를 다 놓쳤다.

러시아령인 듯하여 손 전화를 꺼내 마중 나오기로 한 현지 안내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는 바다여행사 이우택 대표 소개로 알게 된 블라디보스토크 양정진 영사가 주선해준 조경제 씨다. 출국 전 한국에서 두어 번 통화한 적이 있었다. 공해상을 벗어난 듯 다행히 신호가 가고 곧바로 전화가 연결됐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답사 온 박도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조경제입니다."
"배가 곧 입항할 모양입니다."
"네, 저도 지금 자루비노항에서 배가 들어오는 걸 지켜보고 있습니다."
"거긴 몇 시입니까?"
"오후 1시입니다."

러시아 군인에게 겁먹다

한국과는 꼭 1시간 차였다.


"입항 후 봅시다."
"그럽시다. 그런데 제가 입국장에까지 갈 수 없으니까 수속 마친 뒤 좌측으로 걸어 부두 밖까지 나와 주세요."

a 자루비노항의 항만도로 포장도 안 된 진흙길이었다.

자루비노항의 항만도로 포장도 안 된 진흙길이었다. ⓒ 박도

폴더를 닫고 손목시계의 시침을 12시에서 1시로 돌렸다. 13시 20분 동춘호에서 내렸다. 지루비노 입국장은 허허벌판에 우중충한 창고 같은 건물이 세워져 있는 게 꼭 한국전쟁 직후의 모습이었다.


짙은 초록빛 군복을 입은 러시아 남녀 군인들이 근엄하게 서서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는데 그 제복에 나는 그만 겁을 먹고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하였다.

몇 해 전 조중 국경지대인 단동에서 압록강을 촬영하다가 중국공안에게 걸려 된통 혼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공안보다 더 무서운 러시아 군인들이 아닌가.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대부분 승객들은 입국장 정류장에 서 있는 훈춘행이나 블라디보스토크행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그곳에 조경제 씨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갑자기 내 손전화가 불통이었다. 무턱대고 차들이 빠져나가는 진흙길을 일 킬로미터 가량 무거운 짐을 들거나 끌고서 끙끙거리며 나가자 자루비노 항만 사무실이 나오고 거기 정문에서 10여 명의 사람이 배에서 내린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서 조경제 씨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때가 오후 1시 50분이었다. 날씨는 더 없이 쾌청했다. 그 일대를 둘러보자면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는 그의 차에다 짐을 싣고는 점심도 생략한 채 크라스키노 마을로 달렸다.

a 도로표지판 크라스키노를 알리는 도로표지판

도로표지판 크라스키노를 알리는 도로표지판 ⓒ 박도


a 도로표지판 국경도시임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

도로표지판 국경도시임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 ⓒ 박도


안중근 행장(5)

그해(1908년) 7월 안중근 참모중장은 의병 200여 명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경흥에서 일본 군경과 세 차례 교전 끝에 50여 명을 사살하고 일군 주요기지인 회령으로 진격하여 3,000여 명의 일본 수비군을 격퇴하는 등, 13일 동안 30여 차례 교전하기도 했다. 안중근은 이때 잡은 포로들을 국제공법과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석방하였으나 의병들 가운데 반론을 제기하여 곤욕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 여러 장교를 거느리고 부대를 나누어 출발하여 두만강을 건너니 때는 1908년 6월이었다.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 함경북도에 이르러 일본 군사와 몇 차례 충돌하여 피차간에 혹은 죽거나 상하고, 혹은 사로잡힌 자도 있었다. 그때 일본군인과 장사치로 사로잡힌 자들을 불러다가 물었다.

"너희들은 모두 일본국 신민들이다. 그런데 왜 천황의 거룩한 뜻을 받들지 않고, 또 일로전쟁(러일전쟁)을 시작할 때 선전 포고문에 동양 평화를 유지하고 대한독립을 굳건히 한다해 놓고는. 오늘에 와서 이렇게 다투고 침략하니 이것을 평화독립이라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역적 강도가 아니고 무엇이냐?"

그들이 눈물을 떨어뜨리며 대답하기를"우리들의 본심이 아니요,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온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한결같은 마음인데, 더구나 우리들이 만 리 바깥 싸움터에서 참혹하게도 주인 없는 원혼들이 되게 되었으니 어찌 통분치 않겠습니까?

오늘 이렇게 된 것은 다른 때문이 아니라, 이것은 모두 이토의 잘못 때문입니다. 이토는 천황의 거룩한 뜻을 받들지 않고, 제 마음대로 권세를 주물러서,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이에 귀중한 생명을 무수히 죽이고, 저는 편안히 누워 복을 누리고 있으므로, 우리들도 분개한 마음이 있건마는, 사세가 어찌할 수 없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옳고 그른 역사 판단이 어찌 없겠습니까? 더구나 농사짓고 장사하는 백성들로 한국에 건너온 사람들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같이 나라에 폐단이 생기고 사람들이 고달픈데, 전혀 동양 평화를 돌아보지 아니할뿐더러, 일본이 편안하기를 어찌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이 비록 죽기는 하나 통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하고 말을 마치고는 통곡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

내가 말하기를 "그대들의 말을 들으니 과연 충의로운 사람들이라 하겠다. 그대들을 놓아 보내 줄 것이니, 돌아가거든 그와 같은 난신적자(亂臣賊子, 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충한 무리)를 쓸어버려라. 만일 또 그와 같은 간사하고 음흉한 무리들이 까닭 없이 동족과 이웃나라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고 침해하는 말을 하는 자가 있거든 모조리 쫓아가 쓸어 없애라. 그렇게 하면 열 명이 되기 전에 동양 평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이 능히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a 한러 국경지대 지난날 독립지사와 의병들의 은신처였던 연해주로 핫산기념탑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한러 국경지대 지난날 독립지사와 의병들의 은신처였던 연해주로 핫산기념탑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 박도


그들은 기뻐 날뛰며 그렇게 하겠다고 하므로 곧 풀어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우리들이 군기 총포를 가지고 가지 않으면 군율을 면하기 어려울 것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므로 나는 "그러면 곧 총포를 돌려주마."하고는 다시 이르기를 "너희들은 속히 돌아가서, 뒷날에도 사로잡혔던 이야기를 결코 입 밖에 내지 말고 삼가 큰일을 꾀하라" 했더니 그들은 천번만번 감사하면서 돌아갔다.
 <안응칠 역사> 133~137쪽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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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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