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새로운 패러다임, '내러티브'

<기막힌 이야기 기막힌 글쓰기>의 저자 최수묵 기자 강연회

등록 2011.04.18 12:21수정 2011.04.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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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새로운 뉴스장르인 내러티브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최수묵 기자.

새로운 뉴스장르인 내러티브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최수묵 기자. ⓒ 최정애

새로운 뉴스장르인 내러티브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최수묵 기자. ⓒ 최정애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삽화 속 으스스한 폭발처럼 공포가 다가왔다. 전조는 바닥의 울림, 날카로운 폭발, 산산 조각난 창문이었다. 첫 번째 고층빌딩에서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균열과 불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잠시 후 쌍둥이 빌딩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다음 날 <뉴욕타임즈>가 선보인 톱기사의 서두다. 육하원칙 보도 기사에 익숙한 국내언론과는 단연 차별화된 형식이다. 1면 톱기사를 정보가 아닌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향후 뉴스의 중심이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고 한다. 정보에 치중하느라 이야기를 문학에게 넘겨주었던 신문이 그 이야기를 돌려받는 순간이라고 정의한 자리가 마련됐다.

 

15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배움아카데미에 열린 <기막힌 이야기 기막힌 글쓰기>의 저자 강연회에서 저자 최수묵씨는 내러티브(narrative)라는 새로운 뉴스 장르를 소개했다.

 

25년 경력의 기자 출신인 최씨는 "내러티브란 이야기를 통해 지혜를 전해주는 글쓰기다. 엄격히 사실만 전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소설과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뉴스는 정보와 통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는 서열과 숫자를 중시하는 결과지상주의에 빠져 과정이나 절차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야기에 간과했던 그동안의 기자생활에 대한 일종의 반성문"이라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

 

'퓰리처상 작가들에게 배우는 놀라운 글쓰기의 비밀'이라는 주제 강연에서 최씨는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 수상자들의 작품을 예문으로 제시하며 이해를 도왔다. 글의 본질은 결국 사람 그 자체로, 글에는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고 말하며 글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글을 멋들어지게 쓰고 싶다면 인생을 멋들어지게 살면 된다고 했다.

 

a  이야기가 있는 세상을 꿈꾸는 최수묵 기자

이야기가 있는 세상을 꿈꾸는 최수묵 기자 ⓒ 최정애

이야기가 있는 세상을 꿈꾸는 최수묵 기자 ⓒ 최정애
이야기가 있는 글과 정보형 글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최 기자가 제시한 다섯 가지 차이점을 소개한다.

 

첫째, 이야기가 있는 글의 주어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신문은 사람으로 시작하지 않고 거의 통계나 수치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핵심은 사람이어야 한다. 육하원칙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항상 인물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한마디로 '갈등에 빠진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해쳐나가는가'를 지켜보는 것이다. 아무리 엄청난 사건이라 해도 사람이 없다면 이야기를 전개할 수 없다

 

둘째, 구성이다.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쓰는 차별화 전략을 써야 한다. 신문이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확인된 사실만을 보도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행동과 행동, 소재와 소재 간의 인과 관계를 보여줘야 비로소 이야기가 생겨난다. 

 

셋째, 글의 도입부 리드(Lead)의 중요성이다. 리더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뒤 그것이 식지 않도록 하면서 최종 결말까지 독자를 이끌어가야 한다. <월밍턴 뉴스저널> 공동편집장 존 스위니는 "내러티브의 리드는 일반 역삼각형 리더와는 달리 대개는 결말을 암시하는 일화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넷째, 디테일이다. 이야기는 줄거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디테일은 무시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디테일은 사소하거나 작은 게 아니라 오히려 줄거리보다 큰 역할을 하는 것이며 주제와도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AP통신>의 쥘로 기자는 미국의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취임 프로필을 쓰면서 디테일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었다. 많은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12자루의 연필을 인용해 대통령의 일에 대한 열정을 소개했다. 그러나 쥘로 기자는 닳은 지우개를 인용해 많은 내용을 썼다 지운 실무형 대통령임을 알렸다.

 

다섯째,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것(Don't tell. Just show.). "그녀는 예뻤다"라고 말하지 말고, 코는 어떻게 생겼는지 눈매는 어떤지 읽는 이가 상상할 수 있도록 보여주라는 것.

 

'창안의 소녀'라는 기사에서 <세인트피터스 버그 타임즈>의 레인 디그레고리 기자는 "아이는 낡고 찢어진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었다. 여위고 긴 다리를 가슴에 웅크리고. 벌레에 물린 상처와 뾰루지들로 피부는 엉망이었다"로 묘사했다. 오감을 살린 글은 '비위행적인 환경' 등으로 해설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흔히 정보를 단순 나열하는 역삼각형 문체를 더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관점과 구성방식을 차용하는 내러티브는 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내러티브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가치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므로 오히려 객관적이라고 말하며 2시간여 강의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질의응답.

 

- 이야기 글 형태는 외국 사례이다. 한국 신문방식에 적용해도 되나.

 "우리사회는 '빨리빨리주의'와 성과에 집착한 경향이 있었다. 2009년부터 국내 신문에도 내러티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러티브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이제 점차 이야기 글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내러티브를 많이 쓰는 기자도 이 자리에 와 있다."

 

- 신문기사는 글쓰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는데 칼럼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기사는 정보 제공 위주라 그렇다. 칼럼은 주장을 펼쳐나가는 데 정반합의 논리적인 구조가 담긴다."

 

- 경영학 전공한 대학생으로 기자를 지망하고 있다. 조언을 한다면.

"영문학자가 영어만 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다방면에서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체육, 경제, 경영 등 자신의 전공을 발휘한 분야가 많다. 나도 이공계 출신이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머리에 든 게 있어야 한다. 글을 잘 쓰는 것은 두 번째다."

덧붙이는 글 <기막힌 이야기 기막힌 글쓰기>(최수묵 씀, 교보문고 펴냄, 2011년, 13000원)

기막힌 이야기 기막힌 글쓰기 - 퓰리처상 작가들에게 배우는 놀라운 글쓰기의 비밀

최수묵 지음,
교보문고(단행본), 2011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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