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학생들한테 '땅투기 전설' 가르치려나

[주장] 최중경 전 장관, 동국대 석좌교수 임용... 당장 철회하라

등록 2012.02.23 18:17수정 2012.02.23 18:17
0
원고료로 응원
a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2011년 9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 참석해 지난 15일 발생한 전국적인 정전사태에 대한 의원들의 질책이 이어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얼마 전부터 탈도 많고 말도 많던 대학교가 있다. '미래지향적 학문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소위 '돈 안 되는' 학과들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해당 학과 학생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끝내 이 학생들을 진압하고 퇴학이라는 중징계를 내린 학교. 바로 서울의 심장인 중구 필동에 위치한 동국대학교다.

한동안 뜸하다 했더니, 지난 1월 27일 충격적인 소식을 언론 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동국대학교 국제통상학과 석좌교수로 임용됐다는 것. 그리 비중 있게 다뤄진 소식은 아니었지만, 최중경이라는 사람이 그동안 해왔던 것을 생각해볼 때 과연 이 사람이 '석좌교수'라는 중책을 맡을 자격이 되는지 크게 의심스럽다.

기사에 의하면, 최중경 전 장관은 "30년간 경제부처와 청와대 핵심 보직을 맡으면서 터득한 현장경험과 전문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계획"이라고 했다는데, 과연 최 전 장관에게 학생에게 가르쳐줄 현장경험과 전문지식이 있는지 의문이다.

최중경, 그의 파란만장한 '삽질 역사'

a

전국 곳곳에 정전사태가 벌어진 2011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오장동 사거리에 신호등의 불이 꺼져 있고 경찰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돌이켜보면 최중경 전 장관은 한국 경제를 파탄낸 주범이다. IMF 당시에는 강만수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 휘하에서 원화 강세를 주도하며 외환 보유고를 급격히 소진시켰고, 그 결과 한국은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았다. 이 정도는 본인이 높은 자리에서 저지른 일이 아니니 덮어주고 갈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노무현 정권 이후 그가 경제 부처 요직에 있을 때 저지른 일들은 덮어주고 갈 수가 없을 정도다.

2003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을 맡았을 때 그는 섣불리 외환보유고 확충을 위해 환율 방어에 나섰다. '환율 주권론'을 부르짖으며 오늘날 그의 별명인 '최틀러'를 탄생시킨 이때 그의 행보는 결국 불과 며칠 만에 1조8000억 원의 외평기금(외국환평형기금)을 날려 어마어마한 국부 유출을 일으켰다. 그러고도 환율은 지키지 못하였고, 당시 외국인 투기자본은 막대한 환차익을 실현하고 돌아가버렸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전 세계가 경제 공황 속에 빠져있을 때는 어땠나. 그는 기획재정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강만수 당시 장관과 함께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리려했고, 그 결과 수입 물가 상승을 초래해 7년 만에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서민 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불합리한 환율 정책으로 인해 키코(KIKO,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손 위험을 줄이기 위한 파생상품)를 비롯한 환율 파생상품에서 중소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막대한 외환 보유고가 유출됐다. 가히 IMF사태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이렇게 번번이 '사고'를 치고도 2004년에는 IBRD(국제개발부흥은행) 이사로, 또 2008년에는 주필리핀 대사로 전보하면서 문책 아닌 문책을 당한 그는 2010년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복귀했다가 2011년에는 지식경제부 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지없이 여기서도 대형 사고를 터뜨리고 만다. 2011년 9월에 사상 최악의 정전 사태가 벌어졌을 때, 주무부처 장관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만찬에 참석하느라 현장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태가 벌어진 지 5시간이 지나서야 대국민 사과를, 그것도 '달랑' 서면으로 했다. 그는 결국 이 일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못하고 장관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고아 3남매' 땅 빼앗아서 시세차익 얻은 도덕성이란?

a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2011년 4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긴급현안 질의에 출석해 의원들에게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국제회의 참석을 이유로 4월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에 불참했던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나홀로 국회에 출석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국회를 경시한 태도에 대해 질책을 받았다. ⓒ 유성호

한때 외국 헤지펀드들 사이에서 '최중경이 정책 결정을 맡으면 수익률이 올라간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최 전 장관은 손대는 것마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의 각료답게 그는 도덕적이지도 못했다. 탈세, 고의적 세금 미납 등 놀라울 것도 없는 비리들은 다 제쳐두더라도, 최 전 장관의 도덕성이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하나 있다.

최 전 장관의 부인인 김아무개씨가 충북 청원군에서 구입한 임야는 구입한 지 3개월 만에 국토계획변경 허가구역으로 지정되었다. 4년 뒤 이 땅의 대부분이 정부에 수용되어 최초 매입가의 600%에 달하는 이득을 남기게 된 재테크계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이 땅의 원주인은 1988년 매입 당시 각각 10세, 8세, 5세에 불과한 고아 3남매였다. 이들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아버지로부터 유일하게 이 땅을 물려받았으나, 이들 모르게 할아버지가 이 땅을 팔았고 3남매는 단 1원도 받지 못한 채 살다가 20~30대가 되어서야 알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임야에 있던 아버지의 묘자리까지 파헤쳐졌다고 한다. 같은 땅 때문에 누군가는 큰 시세차익을 얻었고, 누군가는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최 전 장관은 지난해 1월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모르는 일이었다. 매물이 나와야 매수가 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으나, 이 문제를 청문회에서 제기했던 당시 민주당 노영민 의원실 관계자들은 "당시 등기 이전과 매매 정황상 최 후보가 모를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본인은 몰랐다는 최 후보자의 청문회 해명은 어불성설" 이라고 주장했다.

설사 몰랐다고 하더라도, 최 전 장관은 유감의 뜻을 표했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국민을 대하는 공직자로서 자신이 직접적으로 저지른 피해는 아니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누군가가
매도인으로 나서서 팔았을 것"이라며 '나 몰라라'식 대답을 내놓았다. 이런 사람에게 과연 대학생들에게 설파할 만한 인생의 깊이가 있는지 학교측에 되묻고 싶다.

학생들에게 보인 모습, 교수 임용에도 보여야

a

2011년 12월 13일 오후 학과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을 벌이던 도중 교직원들에 강제해산에 쫓겨난 동국대 학생들이 규탄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최지용



동국대학교가 어떠한 경위로 최 전 장관을 석좌교수로 임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총장실을 점거했던 학생들에게는 '학생의 의무와 품위를 지키지 않'았고, '학칙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행동을 했다며 중징계를 내린 그 서릿발 같은 잣대가 왜 교수 임용에는 적용되지 않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동국대학교가 국제통상학과 학생들에게 경제 파탄 내는 방법과 땅 투기해서 돈 버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지금에라도 최중경 전 장관의 석좌교수 임용을 조속히 철회하고 진정으로 동국대학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명사를 섭외하는 것이 학교 발전에 더욱 도움이 되는 길일 것이다.
#최중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광주 찾는 합천 사람들 "전두환 공원, 국민이 거부권 행사해달라"
  2. 2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3. 3 "개발도상국 대통령 기념사인가"... 윤 대통령 5·18기념사, 쏟아지는 혹평
  4. 4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5. 5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