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브라를 꿈꾼다, 나는 음란하지 않다

[설리의 노브라 셀카 논란] '노브라'는 '음란한 것'이라는 지독한 편견

등록 2016.05.11 12:25수정 2016.05.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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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는 지난 7일 찍은 한 장의 사진만으로 다시 화제에 올랐다. ⓒ @jin_ri_sul


설리가 지난 7일 SNS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이 파문을 일으켰다. 아이돌 그룹 f(x)를 탈퇴하고 연예계 활동이 뜸해진 이래로 SNS를 통해 종종 근황을 알렸던 설리였던 만큼, 그가 셀카를 올린 건 사실 그 자체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가 된 것은 설리의 옷차림이었다. 몇몇 네티즌이 얇은 니트 티셔츠를 입은 설리가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평범한 셀카가 '음란 사진'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제 설리가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불쾌감을 토로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몸 관리 잘하라", "여자 연예인이 이러는 건 아닌 것 같다", "좀 더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훈수를 덧붙인 채.

정작 당사자인 설리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한쪽에선 '사진이 그렇게 보이는 거다, 노브라가 아니다'라는 식의 '해명'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어느 쪽이나 '노브라'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같았다. 한 장의 사진으로 촉발된 때아닌 노브라 논쟁은, 우리 사회에서 노브라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불편한 브래지어,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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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으로 촉발된 때아닌 노브라 논쟁은, 우리 사회에서 노브라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 pixabay


지난해 8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며 동기들과 함께 '시선'을 주제로 기획기사를 썼다. 당시 내가 냈던 취재 아이템은 노브라 체험기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에서 나온 주제였다. (관련 기사 : 호기롭게 '노브라'로 출근, 한나절 만에 집으로)

10년. 초등학교 6학년, 2차 성징이 시작되고 내 몸에 변화가 생길 무렵부터 브래지어를 입고 다녔다. 처음엔 그저 설렜다. 그 낯선 속옷이 '진짜 어른'이 됐다는 징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설렘이 불편함으로 변하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목이 넓은 옷을 입을 때마다 브래지어 끈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고, 동작이 큰 활동을 할 때면 브래지어 후크가 풀릴 것을 걱정해야 했다. 불현듯 후크가 풀릴 땐 그야말로 '멘붕' 상태가 되어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

더운 여름엔 몸에 딱 붙는 브래지어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속옷 모양이 비치지 않도록 나시까지 챙겨 입어야 했다. 아무리 입어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브래지어는 살갗에 와이어 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브래지어는 그저 '불편한 속옷',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브래지어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들과 수다 떨며 이런 불편함을 공유한 적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브래지어를 벗고 다니는 이는 없었다. 우리에게 '노브라'는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영역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사회에서 노브라는 늘 '음란한 것'과 엮였다. 노브라는 삶의 방식이나 건강의 문제라기보다 성,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 논의됐다. 설리 사진 논란은 이런 기류를 여실히 보여준다.

당장 국내 포털사이트에 '노브라'를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적합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연령확인 절차를 거쳐 제공되고 있습니다'는 안내 문구가 뜬다. 한국 사회에서 노브라는 청소년에게 위해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말이다. 묻고 싶다. 노브라는 정말 위험한 것일까. 노브라를 '음란'이라는 단어에 묶어 놓은 채, 그저 막연히 금기시하고, 불편해하는 시선이 더 위험한 것은 아닐까.

노브라를 음란하게 보는 시선이 더 음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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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포털사이트 두 곳에서 '노브라'를 검색해봤다. 검색 결과가 필터링 되어 나온다. 노브라는 청소년에게 위해한 것이라는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 김예지


굳이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커진다'는, 검증되지 않은 의학적 가설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브래지어 때문에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만으로 이를 포기하거나 거부할 이유는 충분하다. '노브라'라는 생활 방식은 결코 '음란'하지 않으며, '처신을 잘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생활 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노브라를 불편해하는 우리는, 좀 더 관대해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 그 우리엔 결국 나도 포함된다. 지난해 여름 기사를 쓰기 위해 한나절 동안 노브라 상태로 일상생활을 해본 경험은 그야말로 '흑역사'였다. 노브라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브래지어를 그토록 싫어했던 나조차 막상 티셔츠 한 장 덜렁 입은 채 거리에 나서니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노브라는 음란하다'는 고정 관념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던 탓이다. '누군가 날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하는 내면의 편견을 넘어서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뻔뻔하게' 노브라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노브라 체험기를 다룬 그 기사처럼, 악성 댓글이 달릴까 두렵다. 아는 사람이 이 기사를 보고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건, 결국 나를 위해서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직 완벽한 노브라로 나설 용기가 없는 나는, 대안을 찾았다. 패드가 들어간 민소매 나시다. 브래지어 끈이 보일까 봐 염려하는 일도, 후크가 풀어져 당황하는 일도, 답답함을 느끼는 일도 사라졌다. 물론 나시와 함께 입을 수 없는 옷을 입을 때는 하는 수없이 브래지어를 입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것 또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시선'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도 극복하지 못했다.

언젠가 이 두꺼운 편견을 깰 수 있길 바란다. 비단 노브라에만 국한되는 바람이 아니다. 타인의 생활 방식에 보다 관대해질 때, 당신도 나도 한 뼘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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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두꺼운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단 노브라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타인의 생활 방식에 보다 관대해질 때, 당신도 나도 한 뼘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 pixabay


#노브라 #브래지어 #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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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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