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나물로 아홉가지를 채웠다
김정아
사정이 이러니 안 할 수가 없었다. 검은콩, 강낭콩, 흰콩이 있었고, 팥도 있고, 기장도 있고, 찹쌀도 있고, 안 할 핑계를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부럼 삼아 호두와 땅콩만 좀 사 왔더니 보름 준비가 되고 말았다.
전날 밤, 남편에게 대보름을 다시금 소개를 해주고, 내일 하루 종일 9번 밥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껄껄 웃었다. 원래 오곡밥, 아홉 가지 나물을 하루동안 아홉 번에 걸쳐서 먹는 것이라던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 비비고 방에서 나오면, 벌써 나물과 오곡밥 다 지어놓으시고, 부스스한 우리에게 오곡밥을 퍼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나물을 가짓수 맞춰서 꼭 만들던 것은 결국 어머니한테 온 것인데, 나중에 우리 딸도 이렇게 해 먹으려나? 그건 잘 모르겠다.
일요일인 대보름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서 게으른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9번 먹는 대신 3번만 먹자 했다. 어차피 아침은 안 먹으니까, 점심, 간식, 저녁 이렇게 먹자고...
전부 한주먹씩, 양은 얼마 안 되지만, 아홉 가지를 다 하려니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보니 남편이 돕지 않아도 되느냐고 계속 물어봤다. 그래서 김을 재서 구우라고 했다.
먹고 싶은 것 보다는, 한국인의 정서를 잊고 싶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