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란 노무사가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백혈병이 발병해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사진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10.01.05
이민우
동해의 푸른 물결을 보고 자란 유미는 속초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며 3년 개근상을 탈 정도로 건강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졸업을 앞둔 유미는 어려운 집안 환경을 생각해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취직을 결심했고, 학교의 추천으로 2003년 10월 동기생 10여 명과 함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취업도 취업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알아 준다'는 삼성에 입사했다는 사실만으로 유미의 가슴이 뛰었다. 아버지 황상기는 먼 곳으로 일하러 떠나는 딸을 위해 직접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나와 수원행 버스표를 끊어주었다. 유미는 자신이 돈을 벌어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친구들과 함께 떠났다.
그러나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 된 2005년 5월 말 유미의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속초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구토와 어지럼증 등의 증세를 호소할 때만 해도 큰 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지만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결국 회사 근처의 작은 병원을 거쳐 수원에 있는 아주대학교병원에 가서야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오퍼레이터(반도체 공장에서 자동화 기계를 운용하고 생산품을 검사하는 직원)로 일한 지 1년 8개월 만이었다. 유미는 바로 휴직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2005년 12월 6일에는 골수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에 들어갔다. 2006년 9월 휴직 기간이 끝났지만 복직할 만큼은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2006년 10월 초에 삼성반도체 과장이 유미가 일하던 3라인 관리자와 함께 속초 집에 찾아왔다. 과장은 더는 휴직 기간을 연장해 줄 수가 없어 사표를 써야 한다며 회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아버지 황상기는 유미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해 치료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관리자는 "아버님이 이 큰 회사를 상대로 해서 이길 수 있으면 한번 이겨보세요"라고 말하며 산재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황상기가 "이제까지 들어간 병원비를 물어내라"고 했더니 회사는 사직서를 쓰는 조건으로 치료비 4000만 원을 모두 물어주겠다고 했다. 과장은 건넛방에 있던 유미를 불러 백지 한 장을 꺼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쓰게 한 뒤 '백지 사표'를 받아 갔다.
회사 사람들이 돌아가고 며칠 뒤에 유미의 눈빛이 이상해져 다시 병원을 찾았다. 골수 이식 수술을 받았건만 불행히 백혈병 재발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입원 치료를 받던 11월의 어느 날, 두 달 전 집을 방문한 과장이 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황상기에게 100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을 주면서 "이것밖에 없으니 이것으로 끝내자"라고 말했다. 사직서를 쓰면 4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한 약속을 어긴 것이다.
2007년 1월 말에도 회사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번엔 차장이라는 사람이 함께 왔다. 그들은 유미의 병이 개인 질병이라고 말했다. 황상기는 산재 처리를 해 달라며 이야기하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한 달여 병마를 이기지 못한 유미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버지가 운전하던 택시 뒷좌석에서 숨을 거뒀다. 막 새봄이 시작하던 2007년 3월에 부부는 딸을 영원히 잃었다. 삼성에 취직해 기숙사로 향하는 딸을 기쁜 마음으로 배웅한 지 3년 5개월 만이었다.
그사이 가족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택시를 운전하던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백혈병 치료비를 감당하기가 벅차 평생 모아둔 재산을 고스란히 치료비로 썼다. 딸의 죽음에 망연자실한 어머니는 우울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회사 사람들은 유미가 죽은 뒤에 장례식장에 찾아와 모든 치료비는 물론 보상금까지 지급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른 뒤에 "황유미의 죽음은 개인적 질병에 의한 것이므로 회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며 발을 빼기 시작했다.
유미의 병원비로 들어간 돈은 8000만 원 정도였다. 병이 재발하기 전에 회사에서 4000만 원을 받았는데 이 돈은 회사에서 지급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모은 성금이었다. 사직의 대가로 받기로 한 4000만 원은 유미가 사망하자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삼성이 4000만 원을 아끼려고 했다기보다는 유미의 죽음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한 싸움
유미의 아버지는 딸이 죽은 원인을 찾고자 했다. 그는 몇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딸의 죽음이 직업병에 의한 산재임을 확신했다. 백혈병은 유전이 아니면 환경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병이다. 유미의 집안에는 백혈병은 물론 혈액과 관련한 질병을 앓은 사람이 없었다.
유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해 삼성반도체 공장과 기숙사만을 왔다 갔다 했다. 백혈병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얻은 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미가 아주대학교병원에 입원했을 때 같은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황민웅(2005년 7월 사망) 또한 그 병원에서 백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유미와 함께 2인 1조로 일하던 오퍼레이터는 임신했다 유산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이숙영은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2006년 8월 사망).
2007년 11월 20일 수원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정문에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출범했다. 대책위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활동을 병행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라는 카페를 개설했고 이후 반올림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삼성은 반올림이 자료를 수집하고 제보를 받아 밝힌 백혈병 피해자 현황 중 일부를 인정했다. 삼성반도체에 근무한 직원 중에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며 그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백혈병과 업무의 연관성은 부인하였다. 또 백혈병 문제가 점차 사회적인 쟁점이 될 조짐을 보이자 외부에 회사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직원들을 교육하였다.
삼성은 유미가 일하던 기흥공장 3라인을 새롭게 보수했다. 3라인의 시설이 매우 오래되고 낡아서 가스 누출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알려지자 서둘러 시설을 보수함으로써 문제를 덮으려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반올림은 피해 사례를 모아 언론에 알리는 한편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었다. 그러고는 역학조사를 해 결과를 받아본 다음 판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산재 신청 승인 여부가 확정되지 않고 대책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치료비며 생활비 등은 피해자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다.
반올림은 또 반도체 사업장마다 안전 방지책을 세우도록 촉구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2008년 1월 31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반도체 제조업체 근로자 건강실태를 일제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부는 반올림의 조사 참여 요구를 거부한 데 이어 "조사 결과에 법인이나 단체 등이 보유하고 있는 생산기술 또는 영업상의 정보가 포함돼 있어 당사자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라며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반올림은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몇 명인지와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목록이라도 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노동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미는 기흥공장에서 디퓨전(diffusion) 공정 및 세척(Wet Clean) 공정을 담당했다. 불화수소산(HF), 이온화수(DI), 과산화수소, 황산암모늄 등의 화학물질 혼합액이 담긴 수조 앞에서 수동으로 반도체를 담갔다 빼 세척하는 작업이었다.
일하는 동안 방독 기능이 없는 천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작업자의 얼굴 위쪽에 설치된 국소 배기장치가 공기 중의 화학물질을 흡입함에 따라 오히려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정도가 배가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작업을 하는 클린룸(Clean Room)의 실내 공기는 순환 공조로 인한 급속 확산 때문에 약품 냄새가 발생하면 60초 이내에 퍼질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취급한 화학물질 외에 다른 공정에서 사용한 화학물질 중 잠재적 백혈병 원인 물질에 유미가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황상기는 노동안전보건단체의 도움을 받아 2007년 6월 1일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기흥공장 담당)에 산재보험 유족보상을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유미의 백혈병이 업무상 질병인지를 평가하기 위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조사를 의뢰했으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07년 7월부터 11월까지 역학조사를 했다. 그러나 유미가 휴직한 날로부터 이미 2년이 흘렀고, 3라인의 시설이 그대로 보전된 상태가 아니라 정확한 조사를 할 수 없었다.
유미는 근무 중에 너무 더워서 고글 등을 가끔 벗었고 그때마다 주의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황상기가 2007년 9월 작업환경 측정조사에 직접 가보니 유미가 일한 3라인의 작업환경은 쾌적했다. 그는 역학조사에 앞서 삼성이 안전조치를 강화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2007년 12월 28일 백혈병과 업무 연관성에 대한 역학조사평가위원회가 열렸지만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평가위원회는 "이번 역학조사만으로는 업무 연관성을 판정할 수 없다"라며 추후 역학조사를 다시 한 후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이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08년 3월부터 12월까지 6개 회사의 9개 반도체 사업장 및 그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림프 조혈기계 암에 관한 역학조사를 했다. 2008년 12월 29일에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 건강실태 역학조사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을 잇달아 숨지게 했던 백혈병의 발생·사망 위험도는 통계적으로 볼 때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유가족들과 반올림은 곧바로 "통계상 의미 없다는 내용만 모호하게 단순히 나열한 보고서를 인정할 수 없다"라고 역학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미를 비롯한 다른 백혈병 피해자들에 대한 개별역학조사도 이 기간에 이루어졌다. 본인과 유족의 진술, 회사 제공 자료, 현장 방문, 과거 기록 등을 바탕으로 직업력·작업내용·유해요인에 대한 과거 및 현재 노출 평가 등의 자료를 검토했다. 피해자 측은 과거 작업환경에 관한 상세한 정보와 신뢰할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회사가 제시하는 정보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개별역학조사로도 유미의 백혈병이 업무상 질병인지 아닌지를 결론지을 수 없었다. 개별역학조사 결과는 당사자들에게 통보되지 않았다. 반올림과 유가족들이 수차례에 걸쳐 결과를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 영업기밀 등이 담겨 있다며 당사자들에게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2009년 3월 6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개별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조사결과를 근로복지공단으로 송부하면서 유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과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3월 17일에 진행된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와 한 면담에서 평택지사 측은 개별역학조사평가위원회의 결과 보고서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기구(자문의사협의회)를 소집해서 다시 판단을 구해보겠다고 말했다.
피해자 측은 자문의사협의회에서 최후 진술을 했다. 피해자의 절규에 가까운 호소에도 근로복지공단은 자문의사협의회를 마지막 절차 삼아 유미를 포함한 5명 모두에게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삼성의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