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올해 들어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후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교정에서 한 학생이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읽고 있다. 2011.4.13
유성호
카이스트는 이공계 연구중심의 특수대학이다. 2010년 7월 카이스트 최초로 총장직 연임에 성공한 총장 서남표는 '카이스트 사태' 당시 두 번째 임기를 3년가량 남기고 있었다. 서남표가 총장으로 부임한 이후 카이스트는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다. 2008년 세계대학평가 공학·IT 분야 순위에서 34위였던 것과 비교해 이듬해에 13위나 오른 21위를 차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언론은 카이스트가 내보인 결과에 환호했고 공은 총장에게 돌아갔다. 일부 언론은 그가 추진한 차등 수업료(등록금), 100% 영어 강의 제도를 대학 개혁의 모범이라 치켜세웠다.
카이스트 학생은 '대한민국의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 목표하에 수업료와 기숙사 비용을 전액 지원받았다. 그러다 카이스트는 2006년 서남표 총장 취임 다음 해부터 일정 성적 이하의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일부 또는 전액 내도록 하는 차등 등록금제를 실시했다. 그가 실시한 '대학 개혁'으로 성적이 낮은 학생은 수업료를 지원받지 못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징벌적 제도에 따라 학점이 3.0 이상 3.3 미만이면 기성회비 157만 5000원을 내고, 3.0 미만이면 0.01학점당 6만 3000원을 내야 했다. 학점이 2.0 이하가 되면 한 학기에 787만 5000원 하는 등록금을 냈다.
언론은 카이스트 학생들의 죽음이 차등 수업료 제도로 인한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연쇄적인 자살은 과도한 경쟁 스트레스를 유발한 서남표식 '개혁'의 부작용이라는 지적이었다.
카이스트 재학생들의 생각은 언론과 제삼자의 의견과는 결이 달랐다. 수업료와 영어 강의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닌 '잘하는' 공부를 할 것을 간접적으로 강요당했다는 점이다. 학점이 수업료와 직결되면서 호기심만으로 수강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학생들은 듣고 싶은 과목 대신 성적이 잘 나올 만한 과목을 수강했다.
100% 영어 강의도 상황 악화에 한몫했다.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자 학생들은 기초지식이 있는 전공과목을 주로 듣고 생소한 인문학 교양과목은 피했다. 그렇게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할 자유'를 박탈당했다.
성적에 따른 차등 수업료 제도는 수업료를 면제받지 못한 학생에게 패배자,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장학금 잘림'이라는 뜻의 '장짤'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장짤' 당하면 낙오자가 된 것 같아 친구들에게 말도 꺼내지 않는다"는 당시 재학생의 고백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학점에만 몰두해야 하는 시스템은 교우 관계를 삭막하게 만들 뿐 아니라 동아리 등 다양한 교내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학생들은 두 제도의 장점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개선을 원했다. 학구열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쟁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면서도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남표식 '개혁'에 대한 학생과 교수의 부정적인 평가는 서남표의 총장 연임이 확정되기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교수협의회 또한 총장의 개혁이 '단기적이고 외형적인 팽창에만 주목'하는 형식이라며 비판했다.
대학교는 사회에 나가기 전 준비 단계에 있는 청년을 돕는 울타리다. 서남표의 카이스트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보여주기식의 대학 개혁으로 청년들을 낭떠러지로 내몰았다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011년 비극적인 '카이스트 사태' 이후 기존 학사 제도의 폐해가 드러나며 폐지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학교 측은 차등 수업료 제도와 100% 영어 강의 제도를 완화했다.
그러나 이듬해에도 김철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자유를 박탈당한 채 좋은 성적 내기만을 강요받은 학생들이 벼랑 끝에 내몰린 듯한 절망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심각한 청년 자살 문제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2003년부터 2019년까지 한 해를 제외한 16년간 자살률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 당 26.9명으로 전년 대비 0.3명이 증가했다. OECD 평균은 11.3명이었다. 자살 사망자는 1만 3799명이었다.
'자살 사망률 1위' 고착과 함께 주목할 부분은 청년 자살 문제이다. 2019년 자살률이 70대와 80세 이상 연령대에서 각각 5.6%, 3.4% 감소했지만 10대와 20대의 자살률은 각각 2.7%, 9.6% 증가했다. 10대~3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청년층의 자해 시도 비율 또한 전 연령에서 가장 높았다. 다른 연령대의 자해 시도 비율이 3~16%인 데 비해 '19~29세'의 자해 시도 비율은 42.5%로 가장 높았고 '29~39세'가 21.5%로 뒤를 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20여 년 OECD 회원국의 25~34세 자살률이 감소세에 접어든 반면 한국의 25~34세 자살률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청년의 자살은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심각한 사회 문제다. 우리 사회는 자살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지만, 상대적으로 청년의 죽음에 대해서는 덜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자살은 한순간의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자살 관념으로 시작해 자살 시도, 자살 사망으로 연결되는 연속적인 '자살성(suicidality)'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따라서 자살과 관련한 행동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자살을 유발한 원인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살 관념을 생성하는 요인부터 강화 및 지속 원인, 약화 요인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이유로 끝내 자살을 선택할 수도 혹은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 청년의 자살 관념 또한 개인에 따라 생성과 강화·약화 요인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나 특정한 인구 집단으로서 청년층이 공유하는 어려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 안전장치의 부재와 불확실한 미래
청년은 사회적인 불안전성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함께 진로 선택의 부담을 경험한다. 연령 특성상 진로와 직업, 장래 희망의 불확실성은 거의 모든 청년이 경험하는 삶의 요소이다. 특히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게 진로를 설정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일은 청년기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런데 청년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지지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면 자살 충동을 느끼기 쉽다. 카이스트 사태가 대표적인 예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당연하다. 따라서 사회는 그들이 정체성을 탐색할 자유를 침해받지 않도록 역할을 다해야 한다. 청년이라면 누구든 사회가 그들을 위해 마련한 제도적 안전장치하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보다 벼랑 끝에 내몰린 듯한 불안에 더 자주 노출된다. 사회에 대한 불신, 회복되지 않는 피로 속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두려움은 그들의 불안을 훨씬 가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