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강찬호(왼쪽) 대표와 안성우 운영위원이 지난 5월 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앞에서 옥시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교수들을 처벌하라는 내용의 항의서한문 전달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억울한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편에 서서 전문성과 학문의 양심을 써야 할 교수가 기업의 편에서 연구를 대행하고 잘못한 행태를 묵인했다"며 대학 차원에서 윤리위원회나 인사위원회를 열어 진상을 파악하고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5.4
연합뉴스
비슷한 시기 옥시가 호서대 유 아무개 교수에게 의뢰한 가습기 살균제의 공기 중 노출 실험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이 실험에서는 130번 중 3번꼴로 심각한 고농도가 관찰되었다. 그런데 교수는 데이터를 분석할 때 관측된 농도들의 평균을 내서 고농도 수치가 티 나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적합한 근거 없이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라 실내 곰팡이가 폐 손상의 원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옥시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에 의뢰한 실험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쥐가 사망하는 등 강한 유독성이 발견되었는데, 이 역시 옥시의 지시로 실험이 중단되었다.
옥시는 이렇게 데이터를 누락하고 조작한 실험 결과들을 근거로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라며 "폐 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라 곰팡이 등 미세입자에 의한 것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 결과들 때문에 안 그래도 스스로 피해를 입증해야 했던 많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기업의 압력에 눌려 터무니없는 합의를 진행했다.
유 교수는 2017년 9월에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1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 교수는 2016년 검찰 수사로 용역연구 비리가 드러나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는 일부 무죄를 선고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제도의 구멍
이렇게 위험한 제품이 대체 어떻게 허가되어 시중에 판매될 수 있었을까.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의 안전성 관리는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이하 품공법),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약사법 등에 따른다. 이렇게 법은 있지만 정부가 제대로 검사하는 제품은 얼마 안 됐다. 제품이 법에 따른 관리대상에 지정되지 않는 이상 따로 감시하는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품공법의 안전성 검증 대상이 되려면 '안전인증 대상 공산품'에 속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안전인증 대상 공산품은 시중의 수많은 제품 중 13개 품목에 불과했고 가습기 살균제는 이 품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 안전성 검사는 제조기업이 '스스로' 진행하고 보고하면 완료 처리되었다. 또한 가습기 살균제는 의약외품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사법의 관리대상이 아니었다. 사건이 터지고 난 뒤인 2013년에야 뒤늦게 의약외품으로 지정되었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안전인증 품목 심사를 직접 진행한 딱 한 번의 사례는 2007년 코스트코 코리아가 '가습기클린업'이라는 제품을 만들었을 때다. 기업이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살균제가 아니라 안전인증 대상 공산품인 세정제 품목으로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산업통상자원부는 흡입독성 실험 없이 모니터링 후 KC 인증을 해주었다. 정부의 직접적인 심사 대상으로 선정되었는데도 미비한 감독으로 인해 안전 인증을 받은 것이다. 이렇듯 품공법과 약사법은 생산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검증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에 대한 관리와 규제는 없었을까. 당시 화학물질을 감독하는 법안은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이었는데, 이 법의 세부 규정에 따르면 신규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할 때는 의무적으로 유해성 심사를 신청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