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초 미확인 급성 폐질환으로 잇따라 임신부가 사망했다. 이 현상에 대해 SBS는 '사망자 느는데 원인조차 몰라…불안한 임산부'라는 제목의 뉴스를 내보냈다. 2011.05.28
SBS 화면 캡처
2011년 상반기 서울아산병원에는 원인 미상의 급성 폐 질환을 겪는 임신부 환자 7명이 입원했다. 6월엔 이들 중 네 명이 사망한 상태였다. 언론은 '원인 미상 폐질환'을 집중 보도하였고 병의 원인으로 바이러스, 방사능 등이 꼽혔다.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처럼 새로운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 의료진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 역학조사를 요청했다. 미생물 검사에서는 특별한 원인균이나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조사 도중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2006년에 원인 미상의 급성 간질성 폐렴을 앓는 어린이 환자 수십 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그 중 상당수가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역학조사관은 또 2008년 7월까지 급성 간질성 폐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만 78명이었고 그중 36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어린이와 임신부 환자에게서 발견된 이 폐 질환은 공통으로 늦겨울에서 초봄에 주로 발병했다. 의료진과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은 겨울철 실내 환경 요인에 주목했고 그 결과 유력한 병인(病因)으로 떠오른 것이 가습기 살균제였다. 이어진 가습기 살균제 독성 실험에서 실험 대상 제품 4종류(가습기메이트, 세퓨, 옥시싹싹, 와이즐렉)의 용량 의존적인 독성이 드러났다.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미상 폐 손상'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고 가습기 살균제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갑작스럽게 사망한 곽현주의 사인이 반년이 지나서 밝혀진 것이다. 곽현주는 2010년 10월경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2021년 3월 현재 정부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국내 피해자는 총 7372명이며 이중 사망자는 1647명이다(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 하지만 제품 판매 기간이 18여 년이었고, 정부가 규정한 피해자 기준이 엄격했으며,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피해 사이의 역학관계를 피해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공식적인 통계 외에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 대학 연구진의 202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실제 건강 피해 경험자는 약 95만여 명, 사망자는 약 2만여 명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이경무 외 <가습기 살균제 노출 실태와 피해 규모 추산>, 한국환경보건학회지 46권 4호, 한국환경보건학회, 2020, 457-469).